이재용(가운데) 삼성전자 회장이 15일(현지 시각) 프랑스 리옹에서 열린 국제기능올림픽 폐회식에 참석해 한국 국가대표 선수들과 함께 셀피(selfie)를 찍고 있다. 이 회장이 글로벌 기술 인재들의 축제인 기능올림픽을 찾은 것은 이번이 세 번째다. /삼성전자

추석 연휴였던 지난 15일(현지 시각), 프랑스 리옹의 그루파마스타디움에서 열린 국제기능올림픽 폐회식. 종합 2위의 성적을 거둔 한국 대표단 선수들이 누군가를 보자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환호성을 질렀다. 한국 선수단을 격려하기 위해 방문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었다. 이 회장은 올림픽에 참가한 젊은 선수들의 어깨를 두드리며 악수를 나눴고 일부 선수들의 셀피(selfie·자신의 모습을 직접 찍은 사진) 요청에도 흔쾌히 응했다. 이어 국제기능올림픽 최상위 타이틀 후원사인 삼성전자 대표 자격으로 시상대에 올라 선수들에게 메달을 수여했다.

이 회장이 참석한 국제기능올림픽은 청년 숙련 기술인들이 2년마다 모여 직업 기능을 겨루는 국제 대회로, 제조업의 뿌리 기술인 금형·용접부터 IT·로봇 같은 첨단 기술까지 63개 종목을 다룬다. 대회 초창기엔 일본이 1위를 휩쓸었지만, 한국은 1977년부터 19차례 종합 우승을 차지하며 ‘기술 한국’의 위상을 떨쳤다. 하지만 2017년부터는 줄곧 중국에 1위를 내주고 있다. 한국은 이번 대회에서 금메달 10개, 은메달 13개, 동메달 9개, 우수상 11개 등 총 43개 종목에서 수상하며 중국의 뒤를 바짝 쫓았다. 선수들은 CNC(컴퓨터 수치제어)선반, 용접과 같은 전통 분야뿐 아니라 IT 소프트웨어, 웹기술, 클라우드 컴퓨팅, 모바일 앱 개발, 로보틱스 등 미래 기술 분야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폐회식에 참석한 이 회장은 선수들에게 “대학을 가지 않아도 기술인으로서 존중받고 성장할 수 있도록 아낌없이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최근 미국·유럽 등지에서 고소득 생산·기능 직종에 Z세대(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 출생)가 몰리는 ‘블루칼라 보난자(bonanza·노다지)’ 현상이 벌어지는 가운데, 이 회장이 한국의 젊은 기술 인재에게 힘을 실어주는 행보를 한 것이다. 삼성은 국내 유일의 기능올림픽 최상위 후원사로 2007년부터 현재까지 18년간 9개 대회를 연속 후원 중이다. 소비재 기업들이 대거 후원하는 하계올림픽과 달리 기능올림픽은 3M·지멘스·화낙과 같은 유수의 기술 기업들이 후원자로 나선다.

이 회장이 기술 인재에 각별한 애정을 갖게 된 것은 지난 2006년 일본의 한 기업 방문이 계기가 됐다고 한다. 당시 핵심 공정에서 일하는 인력 다수가 국제기능올림픽과 일본 기능대회 수상자 출신이라는 사실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는 것이다. 출장에서 돌아온 이 회장은 “한국은 제조업 기반으로 발전한 나라이고, 삼성도 제조업을 통해 성장했는데 기술 인력 육성과 사회적 관심은 약화되고 있는 것 같다”며 “삼성이 앞장서서 우수 기술 인력이 우대받고 존경받는 문화를 만들어보자”고 제안했다.

이후 삼성은 고졸 기술 인재를 적극 채용하고 있다. 이 회장은 지난 2010년 국내 공업고등학교 교장단을 본사에 초청해 ‘성실하고 능력 있는 기술 인재는 학력에 관계없이 우대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지난해엔 구미전자공업고등학교를 찾아 학생들을 격려하기도 했다. 이번 올림픽에도 삼성 관계사 소속 국가대표 선수 24명이 참가했는데 모두 고졸 출신이었다. 삼성 관계자는 “회사의 성장에 큰 역할을 했던 애니콜·갤럭시 스마트폰, 반도체 모두 젊은 기술 인재들의 힘으로 일궈낸 것”이라며 “기술 인재를 적극적으로 키워 산업 현장을 뒷받침하는 것이 기업의 중요한 사명”이라고 했다.

대회 참석 이후, 이 회장은 폴란드로 이동해 현지 가전 사업 현황을 살피고 임직원을 격려했다. 19일부터는 윤석열 대통령의 체코 공식 방문에 경제사절단으로 동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