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권 분쟁을 겪고 있는 고려아연이 회사가 보유한 고유 기술 중 하나를 국가 핵심 기술로 지정해 달라고 정부에 신청했다. 국가 핵심 기술을 보유한 기업은 해외 인수·합병(M&A)이나 투자 유치 때 정부 승인을 받아야 한다. 또 국가의 경제 안보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판단되면 정부가 인수·합병을 중단시킬 수도 있다. 고려아연을 해외 매각이 어려운 ‘매물’로 만들어 기술 유출을 막고, 경영권 인수를 노리는 사모 펀드 MBK의 계획에 타격을 주려는 전략으로 분석된다.

고려아연은 25일 현재 보유 중인 ‘하이니켈 전구체 가공 특허 기술’을 국가 핵심 기술로 지정해 달라고 지난 24일 정부에 신청했다고 밝혔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이르면 다음 달 산업기술보호위원회를 열어 이 기술이 국가 핵심 기술에 해당하는지 심사할 계획이다.

전구체는 니켈, 코발트, 망간의 혼합물로 이차전지의 핵심 소재인 양극재 주원료다. 그러나 국내 배터리 기업의 중국 의존율이 90% 안팎에 이른다. 현재 고려아연은 독자적인 공급망을 마련하는 차원에서 니켈 함유량이 높아 성능이 우수한 ‘하이니켈 전구체’ 양산을 준비하고 있다.

고려아연은 이 기술이 탈중국 공급망 구축에 핵심 역할을 한다는 점을 강조할 계획이다. 국가 핵심 기술은 ‘산업 기술의 유출 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라 해외로 유출될 경우 국가 안보 및 국민 경제에 악영향을 줄 수 있는 기술이 지정된다. 현재 반도체·자동차·철강 등 13분야 76개가 지정돼 있다.

고려아연은 세계 1위 비철금속 제련 기업으로, 주요 산업에 원재료를 공급하는 기간 산업이다. 국가 핵심 기술 지정 신청은 고려아연이 해외 자본의 투자를 받는 사모펀드에 매각되면 안된다는 명분을 더 강화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해외 재매각을 어렵게 만들어 MBK가 공개 매수 가격을 더 높이지 못하게 할 의도가 반영됐다는 분석도 있다. 향후 투자금 회수를 어렵게 만들어, MBK의 추가 투자 의지를 꺾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MBK는 이날 영풍에서 공개 매수 자금 조달용으로 3000억원을 빌리기로 했다고 밝혔다. MBK가 공개 매수 가격을 높일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