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펀드 MBK와 회사 경영권을 놓고 분쟁 중인 고려아연 경영진이 오는 4일부터 약 3조1000억원 규모의 지분 매입을 시작한다고 2일 밝혔다. MBK는 지난달 13일부터 주식 공개 매수로 약 3조6000억원의 자금을 투입해 고려아연 지분의 과반 확보를 시도하고 있다. 주식 공개 매수란, 특정 회사의 주주가 경영권 확보를 목표로 불특정 주주를 대상으로 기간을 정해 정해진 가격으로 주식을 사는 것이다.
MBK 측은 공개 매수 가격을 지난달 26일 1주당 66만원에서 75만원으로 상향했다. 이에 고려아연 경영진이 이날 1주당 83만원으로 11% 더 비싸게 사주겠다고 밝힌 것이다. 이로써 오는 4일이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에 있어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4일까지 MBK 측은 최소 지분 7% 이상을 공개 매수로 사들여야 하며, 그러지 못하면 공개 매수는 무산 된다. 그런데 공개 매수 마감 직전에 고려아연 측이 “MBK보다 더 비싸게 주식을 사겠다”고 나선 것이다.
◇고려아연, 예상 넘은 3조원대 반격
고려아연 경영진은 4일부터 23일까지 최대 15.5% 규모 자사주 매입을 하고, 우호 세력인 베인캐피탈은 대항 공개 매수 방식으로 최대 2.5% 지분을 각각 확보하겠다고 2일 공시했다. 총 3조1000억원을 투입해, 많게는 18%를 추가로 확보한다는 전략이다. 고려아연은 이날 4000억원 규모 기업어음(CP)과 금융기관 차입 등으로 2조7000억원의 자금을 마련했다고 공시했다.
고려아연이 1주당 83만원이라는 시장 예상보다 높은 가격을 앞세운 것은, 4일 종료되는 MBK 측 공개 매수(1주당 75만원)를 무산시키기 위해서다. 이날까지 고려아연이 최소 6% 이상의 우호 지분을 추가로 확보하지 못하고 MBK 공개 매수가 성공하면 경영권이 넘어가는 상황이었다.
고려아연은 이날 또 공개 매수로 사들인 자사주를 모두 소각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자사주를 매입하는 것 자체가 주주들에게 배당 성격이 있는 데다 매입한 자사주를 소각하면 남은 주식들은 가치가 상대적으로 커지기 때문에 주주 친화적인 정책이란 게 고려아연 측 설명이다. 다만 고려아연은 주당 83만원으로 제시한 자사주 매수에 전체 지분의 5.87% 미만이 응할 경우 주식 매수를 아예 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이날 함께 공표했다.
◇MBK “고려아연 측 배임·시세조종 혐의” 반발
MBK와 영풍은 이날 고려아연 발표에 대해 법적 조치를 하겠다며 강력 반발했다. 이날 즉각 고려아연 측의 자사주 매입 절차를 중단시켜달라는 취지의 가처분 신청을 법원에 내고, 이를 결정한 고려아연 이사회 멤버들을 검찰에 배임 혐의로 고소했다. MBK는 “평소 고려아연 주가는 50만원 정도인데 이보다 더 비싸게 자사주를 사는 것은 회사의 자본을 줄여서 미래 경쟁력을 훼손하는 등 배임 혐의가 있다”면서 “공개 매수 기간에 이런 발표를 해서 투자자들이 MBK의 공개 매수에 응하지 않게 만드는 시세 조종에도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고려아연은 이날 재차 반박을 했다. 이날 서울중앙지법 민사50부(재판장 김상훈)가 MBK 측이 “고려아연 법인이 공개 매수 기간에 자사주 매수를 하지 못하게 해달라”며 낸 가처분 신청을 기각한 것이 근거였다. 법원 결정문에 “공개 매수 기간에 공개 매수 대상인 회사가 자사주를 사면 안 된다는 규정이 없기 때문에 이를 위법하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문구가 있다는 것이다.
최윤범 회장은 이날 직접 기자회견을 열고, “자사주 매입은 단기적으로 금융 부담이 있는 어려운 결정이지만 중장기적으로 기업 가치를 보존할 해법”이라고 말했다.
◇분쟁의 불씨는 남을 듯
MBK 측이 공개 매수 가격을 또다시 높이지 않는 한 오는 4일 MBK 측의 공개 매수가 성공했는지가 확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공시는 오는 10일쯤 나올 예정이지만, 자본시장 안팎에선 4일에 어느 정도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전망한다.
하지만 법적 변수도 많다. 우선 MBK가 2일 고려아연의 자사주 매입을 막아달라는 가처분을 다시 낸 것에 대해 법원이 MBK의 손을 들어주면 국면이 또 달라질 수 있다. 또 고려아연 측의 자사주 매입 및 대항 공개 매수 종료일이 23일까지인데 고려아연 측이 최소 지분 5.87%를 확보하지 못할 가능성도 일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