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1위, 2위 조선사 간의 초대형 합병이 드디어 마무리된다. 지난달 말 중국선박공업그룹(CSSC)과 중국선박중공업그룹(CSIC)은 합병의 마지막 고비였던 7개의 자회사를 합치는 비율까지 합의를 마쳤다. 최종 합병이 성사되면 신설 조선소는 자산 규모 4000억위안(약 75조원)으로 국내 최대 조선사인 HD현대중공업(약 17조원)의 4배 수준이자, 세계 조선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조선사로 탄생한다. 그뿐만 아니다. 매출액, 선박 수주량 등 주요 지표에서 단연 세계 1위를 차지하는 독보적인 글로벌 1위 업체다. 연간 영업이익 전망도 1000억위안(약 18조원)에 달한다. 국내 조선 3사가 최대 호황 때 1년 동안 벌어들인 영업이익 총합(약 2조원)의 9배 수준이다.

지난 7월 중국 장쑤성 쑤저우에 있는 한 조선소에서 대형 선박들의 건조 작업이 이뤄지고 있는 모습. 저가 물량 공세 이미지가 강했던 중국 조선업계는 '조선 굴기 2.0'이란 기치 아래 국가 주도로 규모와 기술력을 빠르게 키우며 한국을 맹추격하고 있다. /게티이미지코리아

이번 합병은 중국 양대 조선사의 지나친 경쟁을 교통정리 하고 ‘공룡 조선사’로 몸집을 더 키워 친환경 선박 시장 등 조선업 새 국면에서 한국, 일본 등 경쟁국을 빠르게 추격한다는 전략이다. “조선·해운산업이 미중 무역전쟁의 새로운 전쟁터로 부상했다(지난 3월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평가와 함께 친환경 선박, 군함 시장까지 공세를 강화하는 중국의 ‘조선 굴기 2.0′이 본격화하는 것이다.

◇싼 배 만들던 中 조선사가 연이어 최초, 최대 기록

CSSC는 지난 4월 세계 ‘에너지 큰손’인 카타르에너지로부터 초대형(27만1000㎥급)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18척 건조 계약을 따냈다. 계약 기준 세계 최대 규모의 LNG 운반선이다. 그간 중국 조선업은 컨테이너선, 벌크선 등 기술력이 높지 않은 선종에서 ‘저가 물량 공세’가 대부분이었는데 이제는 위상이 바뀌었다. 높은 기술력이 필요해 컨테이너선 대비 3~5배나 비싼 크루즈선에서도 중국은 올해 1월 중국 최초 항해를 시작하면서 유럽과 경쟁하고 있다. 독자 설계하고 건조한 초대형 LNG 운반선도 성공적으로 인도했다. 작년 주요 선박 종류 18종 가운데 자동차 운반선, 유조선, 컨테이너선 등 14종에서 신규 수주량 1위가 중국이었다.

그래픽=김의균

중국 조선업은 ‘중국의 수출입 화물은 중국 해운사가 운반해야 하고, 중국 해운사의 선박은 중국 조선소가 지어야 한다(國輸國造)’는 기조 아래 법인세 감면 등 정부 지원을 바탕으로 빠르게 성장했다. 2013년 시진핑 주석이 제안한 중국의 장기 전략 ‘일대일로(一帶一路)’에 따라 중국 남부~동남아~중동~아프리카~유럽을 잇는 ‘21세기 해상 실크로드’ 건설 계획이 추진됐다. 세계 각국 항구를 잇는 해운 산업과 이를 뒷받침하는 조선 산업 육성이 필수였기 때문이다.

‘바다의 화약고’로 불리는 남중국해에서 미국, 필리핀 등과 영유권 분쟁을 벌이는 중국은 해군 군사력을 위해서라도 조선업에 힘을 쏟았다. 중국의 상선 건조 능력이 해군력을 뒷받침하고, 항공모함까지 자체 건조하는 중국의 내수가 조선업을 지원하는 모양새였다.

2010년대 글로벌 조선업 불황기를 국가 주도의 강한 구조조정으로 버텨낸 중국 조선업은 규모 면에선 독보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클락슨리서치 등에 따르면, 작년 중국의 선박 건조량, 신규 수주량, 건조 잔량은 중량톤수(DWT) 기준으로 각각 세계 50.2%, 66.6%, 55.0%를 차지했다.

◇내년엔 미래 선박인 친환경 선박 세계 시장 50% 목표

중국의 조선 굴기 2.0은 미래 선박인 친환경 선박으로 확장되고 있다. 친환경 선박, LNG 운반선 등 고부가가치 선박은 한국, 일본 조선소가 앞서는 시장이지만 중국의 추격이 매섭다. 중국은 제도·인프라·기술력 ‘3박자’ 모두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조선산업 친환경 발전 개요(2024~2030)’를 발표하고, LNG, 이중 연료 엔진 등 친환경 선박 건조를 대폭 늘려 내년까지 세계 친환경 선박의 50%를 자국에서 생산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선박 관련 기업만 약 36만 개에 달하는데, 작년 신규 등록 기업만 7만5300개로 빠르게 늘고 있다.

한 조선 업계 관계자는 “조선·해운 산업은 국제정치, 무역안보와 직결된 경제안보인데 국가 차원에서 주도하는 중국 조선업과 한국 개별 기업이 경쟁하는 건 한계가 있다”며 “중국은 경쟁력이 처지는 기업은 꾸준하게 구조조정하며 기술 개발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