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이철원

지난달 13일 사모 펀드 MBK가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을 시작할 때, 공격하는 MBK와 방어하는 고려아연 측이 동원하려는 자금 규모는 약 3조원이었다. 3주 만에 이 규모가 약 7조원으로 불어나며 분쟁이 급속도로 과열되고 있다.

MBK와 고려아연이 포커 게임처럼 주식 공개 매수 가격을 올리고 있는 여파다. MBK는 애초에 공개 매수 가격을 주당 66만원으로 잡았지만 지난달 26일 75만원으로 한 차례 올렸다. 지난 2일에는 고려아연 측이 경영권 방어를 위해 주당 83만원을 제시했다. 여기에 4일 MBK가 83만원으로 맞불을 놓으면서 분쟁 규모가 기하급수적으로 커진 것이다.

양측의 ‘치킨 게임’으로 기업 본래 가치와 무관하게 시장 전체가 왜곡되고 있다. 고려아연 주가가 최근 3주 새 39.6% 폭등했고, 지분 경쟁의 승부처로 꼽히는 핵심 자회사 영풍정밀의 시가총액도 이 기간 1500억원에서 5000억원으로 3.3배로 커졌다.

전례 없는 시장 과열에도 금융 당국은 시세조종 같은 명백한 불법행위가 드러나지 않는 한 관여할 방법은 없다는 입장이다. 재계에서는 누가 이겨도 막대한 비용 부담 탓에 ‘승자의 저주’에 빠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그래픽=이철원

고려아연 경영권 확보를 위해 지난달 13일 주식 공개 매수를 시작한 사모 펀드 MBK와 고려아연 최대 주주인 영풍이 4일 공개 매수 가격을 75만원에서 83만원으로 높였다. 지난 2일 고려아연 현 경영자인 최윤범 회장이 주당 83만원에 자사주를 사는 방어 전략을 발표하자, 같은 조건으로 맞선 것이다. 4일은 휴일을 제외하고 MBK 측의 공개 매수 종료일이었는데, 마지막 날 재반격에 나섰다.

이 분쟁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MBK가 이날 매수 가격을 바꾸면서 MBK 측 공개 매수 기간은 오는 14일까지로 연장됐다. 지난 2일 발표한 고려아연의 자사주 매입은 오는 23일까지다. 그때까지 양측이 또 매수 가격을 올리거나, 상호 비방전을 벌이는 등 고려아연을 둘러싼 혼란은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반격에 재반격 잇따라 나온 하루

지난 2일 주당 83만원에 최대 15.5% 자사주 매입을 발표한 고려아연은 4일 오전 매입 조건을 또 변경하며 공세를 폈다. 원래 자사주 매입 물량이 전체 지분의 5.87%를 밑돌면 자사주 매입을 아예 포기하기로 했는데, 신청이 들어오면 ‘1주’라도 무조건 사는 것으로 조건을 완화했다.

이에 질세라 MBK는 이날 오후 공개 매수 정정 공시를 내고, 공개 매수 가격은 기존 75만원에서 83만원으로 10.7% 인상하고, 고려아연과 똑같이 최소 매수 수량 조건을 없앴다. 일부 세금 문제를 제외하면 주주들 입장에선 양측 조건이 똑같아졌다.

영풍그룹 계열사 영풍정밀을 둘러싼 경쟁도 비슷하다. 최윤범 회장 측이 경영권을 쥐고 있지만, 이 회사가 고려아연 지분 1.85%를 갖고 있어 영풍정밀을 확보해야 전체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다. 그래서 MBK는 지난달 13일 고려아연과 함께 이 회사에 대해서도 주당 2만원에 주식 공개 매수를 시작했다. 그 후 주당 2만5000원으로 매수 가격을 높였고, 고려아연 측이 지난 2일 주당 3만원에 대항 공개 매수를 시작하자 MBK는 이날 다시 3만원으로 가격을 또 올렸다. 이 과정에서 영풍정밀 주가는 이날 하루에만 25% 급등하며 3만1850원까지 올랐다.

그래픽=이철원

◇7조원대 끝장 싸움 된 분쟁

지난달 13일 공개 매수가 시작되었을 때, 매수 가격 66만원을 기준으로 양측이 공격과 방어에 투입해야 하는 자금 규모는 MBK 약 2조원, 고려아연 최대 1조원으로 3조원 규모였다. MBK의 공개 매수 가격 인상으로 주당 75만원으로 판이 커지며 MBK 측 약 3조6000억원, 고려아연 약 1조1300억원으로 5조원에 육박하는 규모로 늘었다. 그리고 양측 매수 가격이 주당 83만원으로 맞춰지면서, 양쪽의 최대 필요 자금 규모는 총 7조원대로 올라섰다. 영풍정밀 지분 인수에 필요한 자금, 장형진 영풍 고문 등 장씨 가문이 소유한 지분 약 7%를 추후 MBK가 넘겨받는 것을 포함한 것이다.

대규모 자금 경쟁 속 시장은 이미 과열됐다. 양쪽이 제시한 1주당 83만원의 매입 가격은, 공개 매수 시작 전날인 지난달 12일 55만6000원과 비교하면 이미 49%나 오른 것이다. 4일 주가도 77만6000원까지 올라 고려아연 시가총액은 16조원을 돌파했다. 지분 경쟁의 승부처로 꼽히는 핵심 자회사 영풍정밀의 시가총액도 이 기간 1500억원에서 5000억원으로 3.3배 커졌다. 장기간 공개 매수 대결 이후 고려아연이나 영풍정밀의 주가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간다면 이 기간 투자에 나선 개인들의 피해도 커질 수 있다.

◇앞으로 변수는

양측이 사활을 걸고 경쟁을 벌이고 있어 승패가 갈리기까지 변수가 많다. 고려아연보다 공개 매수가 먼저 끝나는 MBK가 오는 14일 7% 미만 확보에 그쳐 경영권 확보에 실패해도, MBK 측이 “최 회장 경영권 방어 목적으로 비싼 가격에 자사주를 사는 건 배임”이라며 법원에 제기한 ‘고려아연 자사주 매입 절차 중지’ 가처분이 변수다. 결과가 이르면 21일 전후 나올 수 있어, 결과에 따라 국면이 바뀔 가능성이 크다. 확실한 승기를 잡기 위해 고려아연 측이 공개 매수 가격을 또 올릴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한편, 이날 오후 산업통상자원부는 고려아연이 앞서 제기한 ‘국가핵심기술’ 판정 안건을 심의했다. 고려아연이 보유한 이차전지 소재 전구체 기술이 국가핵심기술로 지정될 경우, MBK가 향후 매각할 때 산업부 승인을 받아야 해 엑싯(Exit·투자금 회수) 전략에 변수가 될 수 있고 경영권 분쟁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