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뉴시스, 김지호기자, 연합뉴스 /그래픽=백형선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과 관련해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양측의 불공정 거래 여부를 조사하라”고 8일 지시했다. 주식 공개 매수를 통해 고려아연 경영권을 확보하려는 MBK·영풍 측과 방어에 나선 고려아연 현 경영진 사이의 경쟁이 지나치게 과열되자 정부가 처음으로 이 분쟁에 개입한 것이다.

금감원은 고려아연 공개 매수 과정에서 양측이 언제, 어떻게 공개 매수 가격을 정할지 등 핵심 정보가 공시 전에 외부에 노출된 것은 없는지 등을 집중적으로 점검할 것으로 알려졌다. 금감원은 또 고려아연 공개 매수에 대해 ‘소비자 경보’를 발령하고 “공개 매수 기간 또는 공개매수 종료 이후 관련 종목의 주가가 급격히 하락할 수 있다”고 했다.

정부의 경고에 MBK·영풍, 고려아연 양측은 이날 “법을 지키고 신중하게 공개 매수에 임하겠다”는 취지를 밝혔다. 주가도 이날 고려아연이 77만6000원으로 전날보다 0.5% 하락했고, 고려아연 지분 1.85%를 가진 계열사 영풍정밀 주가도 3만3800원으로 약 2.6% 떨어져 다소 진정된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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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물밑 경쟁은 계속될 전망이다. 현재 양측 공개 매수 가격이 1주당 83만원으로 똑같은 상황이라 우열을 가리기 어려운 상황이다. 양측이 공개 매수 가격을 올릴 수 있는 시한인 오는 11일과 14일 또 매수 가격이 오르면서 출혈경쟁이 계속될 것이란 우려는 여전히 남아 있다.

정부가 이 사건에 개입한 것은 개인 투자자들 피해가 커질 수 있다는 점을 의식했기 때문이다. MBK·영풍 측과 고려아연 현 경영진이 공개 매수 경쟁이 시작된 지난달 13일 이후 약 4주간 앞다퉈 포커 게임처럼 매수 가격을 높이면서 주가가 크게 요동쳤기 때문이다. 이 시기 고려아연의 경우 시가총액이 약 11조5110억원에서 16조657억원으로 불었고, 영풍정밀도 같은 기간 1475억원에서 5324억원으로 3.6배가 됐다. 금감원은 기업 가치와 무관하게 경쟁 속에서 주가에 거품이 크게 끼었다고 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엄정한 조사로 이를 바로잡겠다는 것이다.

◇”근거 없는 풍문으로 시장 왜곡”

금감원이 가장 먼저 점검할 부분은 MBK·영풍과 고려아연이 공개 매수 가격을 경쟁하는 과정에서 풍문이나 허위 사실을 유포해 시세에 영향을 미쳤는지 여부다. 이날 금감원은 “구체적인 근거나 사실이 확인되지 않고 법적 공방으로 이어지는 사례가 많다”면서 “합리적인 투자 의사 결정을 위해서는 공시 자료 등을 통해 정확한 내용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금감원은 이를 자본시장법상 시장 질서 교란 행위나 부정 거래 행위로 행정 제재를 가하거나 처벌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시장 질서 교란 행위와 부정 거래 행위는 풍문을 유포하는 등의 방식으로 주식 가격에 대해 오해를 일으키거나 왜곡할 우려가 있는 행위 등을 가리킨다. 시장 질서 교란 행위가 확인될 경우 금융위원회가 5억원 내에서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고, 부정 거래 행위는 최고 무기징역과 함께 주식 거래로 얻은 이익의 5배에 해당하는 벌금형을 받을 수 있다. 금감원은 조만간 양측에 공개 매수 관련 자료 제출을 요구하고 관련자 조사 등을 진행할 방침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5명 규모 조사 인력을 투입해 11월쯤까지 계속 조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금감원은 공개 매수 경쟁으로 주가가 오르지만, 공개 매수는 장내에서 주식 투자를 하는 경우와 다르다는 점도 경고했다. 공개 매수 종료일과 직전 영업일에는 주식을 사도 공개 매수에 응할 수 없다. 주식을 장내에서 사면 주식 소유권은 매수 이후 두 번째 영업일에 이전되기 때문이다. 주가가 요동칠 때 주식을 샀더라도 막상 공개 매수에 응할 수 없어 주가가 하락하면 크게 손실을 볼 수 있다는 뜻이다.

◇4주간의 끝장 경쟁, “출구 전략 필요”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으로 주식 공개 매수 대상이 된 고려아연과 계열사 영풍정밀의 주가가 크게 요동친 것이 금감원 개입의 결정적 요인이 됐다. MBK와 영풍 측이 1주당 66만원에서 시작한 공개 매수 가격은 주당 83만원으로 이 기간에만 26% 올랐다. 고려아연 지분 1.85%를 가진 영풍정밀은 공개 매수 가격이 주당 2만원에서 3만원으로 50% 상향했다. 그 와중에 주가는 더 큰 폭으로 요동쳤다.

고려아연 주가는 공개 매수 시작 전날인 지난달 12일 55만6000원이었던 주가가 8일까지 77만6000원으로 40% 뛰었고, 영풍정밀 주가는 261%나 올랐다. 자본시장에서는 양측의 공개 매수에 응하려 하거나 주가가 오르내릴 때 차익을 보려는 개인 투자자 피해가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가 계속 나왔다. 하지만 현재 공개 매수 가격이 주당 83만원으로 양측이 같은 상황에서, 이르면 11일이나 14일 한쪽이 또 매수 가격을 더 올려 주가에 영향을 주는 출혈경쟁이 계속될 가능성이 작지 않다.

재계 안팎에서는 기간산업의 한 축인 고려아연 기업 자체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분쟁 규모가 커지면서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도 늘고 있기 때문이다. 공개 매수에 나서기 위해 고려아연의 경우 현재 2조5000억원, MBK 측은 1조9000억원을 각각 단기(9개월~1년) 차입했다. 대출 만기를 다 채울 경우 고려아연은 이자만 1300억원, MBK 측은 2100억원을 써야 할 상황이다. 법률 대응을 위한 각종 자문료 등도 계속해서 불어나고 있다.

고려아연은 작년까지 최근 5년간 연평균 8756억원의 영업이익을 낸 견실한 기업이다. 하지만 어느 쪽이 분쟁에서 이기더라도 주식 매입과 차입한 자금에 대한 이자 등으로 고려아연 법인이 보유한 현금이 소진돼 미래 투자 여력이 꺾일 수 있다는 지적도 많다. 재계 관계자는 “고려아연에 타격이 생기면 황산, 은, 아연 등 기초 소재 공급에도 문제가 생겨 다른 산업도 충격을 받을 수 있는 만큼 감정적 대립이 아닌 원만한 해결책을 고민해 봐야 하는 시점”이라고 했다.

☞소비자경보

금융감독원 소비자경보는 금융시장에서 소비자가 피해를 입을 위험을 미리 알려주기 위해 발령한다. 피해 건수와 심각성, 피해 확대 가능성 등에 따라 주의·경고·위험 등 3단계로 나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