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최초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소설가 한강. /뉴스1

소설가 한강(53)이 한국인 최초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자 그가 약 4개월 전 받았던 삼성호암상 평가가 재조명되고 있다. 호암상은 고(故) 이건희 전 삼성회장이 1990년 제정한 것으로 각 분야 발전에 기여한 인물에게 주어지는데, 한강은 11년 만에 나온 소설가 수상자였다.

앞서 호암재단은 지난 5월 31일 열린 ‘2024 삼성호암상 시상식’에서 예술상 부문 수상자로 한강을 선정했다. 호암 예술상은 미술·문학·음악·발레·영화·성악 등 다양한 문화예술 분야 인사들을 대상으로 하는데, 당시 한강의 수상은 소설가로서는 2013년 신경숙 작가 이후 11년 만이었다.

한강의 호암상이 노벨문학상 수상을 예견한 것 같다는 말이 나오는 건 선정 이유에 있다. 호암재단 측은 “한국 현대사의 고통과 슬픔, 인간 실존에 대한 고민을 작가 특유의 날카롭고 섬세한 시선과 독특한 작법으로 처리했다”며 “미적 승화의 수준까지 끌어낸 이 시대 최고의 소설가”라고 평가했다.

이는 노벨위원회 측 입장과 일맥상통하는데, 스웨덴 한림원은 “한강은 작품에서 역사적 트라우마와 보이지 않는 지배에 정면으로 맞서면서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낸다”며 “육체와 영혼, 산 자와 죽은 자 간의 연결에 대해 독특한 인식을 지니고 시적이며 실험적인 문체로 현대 산문의 혁신가가 됐다”고 설명했다.

한강은 호암상 수상 소감에서 자신의 소설이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실’ 역할을 한다는 문학관을 전했다. 그는 “글 쓰는 사람 이미지로 쉽게 떠올릴 수 있는 건 고요히 책상 앞에 앉은 모습이지만 사실 저는 걸어가고 있다”며 “먼 길을 우회하고 때론 길을 잃고 시작점으로 돌아오고 다시 걸어 나간다”고 했다.

지난 5월 31일 열린 '2024 삼성호암상 시상식' 수상자들. 당시 한강(뒷줄 왼쪽 두번째)이 예술상을 받았고, 이재용 삼성회장(앞줄 맨 왼쪽)도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뉴시스

이어 “혼자 걸어가는 과정이 고립된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어쨌든 저는 언어로 작업하는 사람이고 언어는 결국 우리를 연결해 주는 실”이라며 “아무리 내면적 글을 쓰는 사람이라도 언어를 사용하는 한 그 사람은 세계와 연결돼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올해는 제가 첫 소설을 발표한 지 꼭 30년이 되는 해다. 30년 동안 제가 글쓰기를 통해 사람들과 연결돼 있었다는 게 때론 신기하게 느껴진다”며 “천천히 서두르지 않고 더 먼 길 우회해 계속 걸어가 보려 한다”고 말했다.

한편 삼성호암상은 이건희 전 회장이 이병철 선대회장의 인재제일·사회공헌 정신을 기려 1990년 제정했다. 과학·공학·의학·예술·사회공헌 등에서 탁월한 업적을 이뤄 글로벌 리더로 인정받는 국내외 한국계 인사들을 대상으로 한다. 이재용 삼성회장이 유일하게 실명으로 기부금을 전달하고, 최근 3년 연속 시상식을 찾아 눈길을 끌기도 했다.

2022년에는 허준이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가 한국인 최초로 ‘수학계 노벨상’인 필즈상(Fields Medal)을 수상하면서, 2021년 삼성호암상을 받았던 이력이 재조명되기도 했다. 특히 허 교수는 이 회장의 제안으로 ‘물리·수학’ 부문을 신설한 이후 처음 배출된 수상자였는데, 때문에 기초과학 인재 육성에 대한 이 회장의 안목까지 언급됐었다.

그밖에 역대 수상자 중에도 노벨상 유력 후보로 거론되는 학자들이 다수 포함돼 있다. 유전체학 연구 분야의 흐름을 주도한 찰스 리 미국 잭슨랩 교수, 나노구조 물질 관련 새 연구 분야를 개척한 유룡 카이스트 특훈교수,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를 세계 최초로 개발한 박남규 성균관대 교수 등이다. 영화 ‘기생충’으로 아카데미를 휩쓴 봉준호 감독도 예술상 부문을 받은 적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