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백형선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의 분수령이던 MBK·영풍 연합의 공개 매수에서 MBK 측이 예상보다 많은 지분 5.3%를 추가 확보하면서 고려아연 최윤범 회장 측은 다양한 시나리오를 두고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고려아연 지분 38.4%를 확보한 MBK가 의결권 있는 주식을 기준으로 과반에 근접한 약 48%가 되는 만큼, 오는 23일까지 진행하는 최 회장 측의 공개 매수뿐 아니라 향후 주주총회 ‘표 대결’에서 우군이 돼줄 캐스팅보트 확보 등 대응 방안을 총동원해야 하기 때문이다.

고려아연은 15일 보도자료를 통해 “MBK-영풍은 공개 매수 시작 때 밝힌 최소 매수량 7%조차 채우지 못한 실패”라며 “고려아연은 영풍정밀 경영권은 압도적으로 지켜냈다”고 했다. 그러나 물밑에선 분주하게 대책 마련에 나섰다. 현재 지분 구조에선 고려아연 이사회를 MBK 측에 넘겨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주총에서 이사 해임은 ‘출석 주주 의결권의 3분의 2 이상’ ‘발행주식 총수의 3분의 1 이상’ 찬성 조건 때문에 과반을 확보하지 못한 MBK가 사내이사인 최윤범 회장 등을 해임하는 것은 어렵다. 그러나 MBK는 새 이사진을 임명해 이사회를 장악할 수 있다. 고려아연 정관에 ‘이사는 3인 이상으로 한다’고 나온 만큼 최대 인원 제한이 없다. 최 회장 측이 장악한 현재 이사회는 장형진 영풍 고문을 포함해 13명인데, MBK가 임시 주총을 열고 이사 12명을 신규 선임하면 장 고문 포함 과반을 차지해 경영권 확보가 가능하다.

그래픽=김성규

◇캐스팅보트 확보 싸움… 우세 MBK는 가처분 총력

수세에 몰린 고려아연이 쓸 수 있는 카드는 현재 크게 세 갈래다. 하나는 ‘백기사’에 현재 보유한 자사주(약 2.4%)를 넘겨서 의결권을 살리는 식으로 우호 지분을 늘리는 방안이다. 자사주는 의결권이 없지만 주식 교환 등 방식으로 넘기면 의결권이 살아난다. 자사주 2.4%의 의결권이 살아나면 MBK가 확보한 지분율을 낮출 수 있다.

둘째는 우호 지분을 추가로 확보하는 카드다. 오는 23일까지 최 회장의 자사주 공개 매수는 이어지지만, MBK의 공개 매수가 끝난 상황에서 자사주 매수는 딜레마다. 자사주를 매입할수록 시장에서 의결권 있는 주식이 줄어 MBK(약 38.4%) 측 지분이 앞서는 구도가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역설적으로 자사주 공개 매수에 적은 물량이 참여하고, 이후 장내 매집으로 의결권 있는 주식 확보가 최선이다. 그러나 MBK도 장내 매집으로 맞불을 놓을 수 있는 만큼 이 방법도 결과가 불확실하다. 어느 쪽 공개 매수에도 참여하지 않는 지분 중 우호 지분을 추가로 확보할 수도 있지만, 이는 가능성이 낮다는 평가다.

현재 구도가 유지돼 양측 각각 의결권 지분 기준 40%대 중후반이 되면, 주총 표 대결에서 남은 캐스팅보트를 누가 설득하느냐의 싸움이 된다. 공개 매수를 통해 유리한 고지를 차지한 MBK는 ‘고려아연 자사주 매입 저지’ 가처분에 총력을 쏟고, 향후 장내 매집, 우호 지분 확보 물밑 싸움을 이어갈 것이라는 전망이다. 최 회장 측이 자사주 매입을 해도 MBK 측 의결권을 키우는 효과라 불리하진 않다. 다만 MBK는 지난 14일 “최 회장 측의 3조원이 넘는 대규모 차입 방식의 자기 주식 공개 매수는 고려아연에 돌이킬 수 없는 손해를 발생시킬 것”이라며 “자사주 공개 매수가 중단되도록 모든 역량을 집중할 것”이라고 했다.

◇금감원, 고려아연·영풍 회계심사 착수

15일 금감원은 고려아연과 영풍에 대한 회계 심사에 착수했다. 그간 양측에 제기된 회계 위반 혐의 등에 대해 자료를 토대로 들여다본다는 취지다. 그간 두 회사는 경영권 분쟁을 벌이면서 공개 매수를 통해 서로를 압박했는데, 금감원은 회계 위반 혐의 여부와 함께 충당부채·투자주식 손상 등 그동안 양측에 제기된 의혹들을 확인할 예정이다.

아직은 의혹을 살펴보는 정도지만 금감원이 이번 회계 심사를 통해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면, 회계 심사를 감리로 전환하고 감사인 등을 불러 본격 조사를 진행하게 된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심사 착수 수준이라 경영권 싸움에 영향을 줄지 여부는 알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금융권 관계자는 “감리 조사까지 이어져 잘못이 드러나면 과징금, 검찰 고발, 담당 임원 해임 권고 등의 제재를 받을 수 있다”며 “경영권 분쟁에 변수가 될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