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대표 조선 3사 중 한 곳인 한화오션은 지난 10일 유럽 선주(船主)에게서 선박 6척 건조 계약을 1조6932억원에 따냈다고 밝혔다. 작년 매출(7조4083억원)의 22%에 달하는 수주액만큼이나 선박 종류도 주목을 받았다. 한화오션이 수주한 6척 모두 컨테이너선으로, 이 회사가 컨테이너선을 수주한 건 2년 9개월 만이었다. 한때 국내 조선 업계에서 ‘컨테이너선 사업을 접었다’는 이야기까지 나왔지만, 최근 글로벌 시장 판도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화물을 담은 컨테이너 상자를 대량으로 실어 운항하는 컨테이너선은 조선 업계에서 기술 장벽이 높지 않은 분야다. 조선업 후발 주자인 중국 조선소들은 ‘저가 수주’와 ‘물량 공세’를 무기로 컨테이너선 시장부터 장악하기 시작했다. 올해도 전 세계 컨테이너선 신규 발주량 약 300만TEU(1TEU는 20피트 컨테이너 1개) 중 약 80%를 중국 조선소가 차지하고 있다. LNG(액화천연가스) 운반선 같은 고부가 가치 선박을 ‘선별 수주’하는 데 집중한 국내 조선사는 컨테이너선 시장에선 사실상 중국과 경쟁을 피하는 현실이었다.
그러나 최근 4년 새 컨테이너선 가격이 90%나 오르고, 글로벌 주요 선사가 대규모 발주에 나서면서 한국 조선사도 더는 컨테이너선을 홀대할 수 없게 됐다. 올해 세계 컨테이너선 시장은 457억달러(약 62조원)로 추산된다. 친환경 이중 연료 엔진 기술력에서 앞선 한국과 초대형 컨테이너선 대량 물량 공세가 가능한 중국의 경쟁도 재개됐다.
◇中, 친환경 컨테이너선에 투자 확대
중국 조선소는 수주를 독식한 컨테이너선 시장에서 친환경 선박 비율을 늘려가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세계 5위 선사 하파크로이트가 발주 예정인 5조원 규모 컨테이너선 24척 수주전에서 지난달 한국 조선사는 탈락했고, 중국 양쯔장조선, 뉴타임스조선이 사업을 따냈다. 국제해사기구(IMO)의 조선·해운 분야 탄소 배출 규제 강화에 따라, 컨테이너선도 온실가스 배출이 많은 벙커C유 대신 LNG, 메탄올 등을 활용한 이중 연료 엔진을 탑재하는데 친환경 선박 경쟁에서도 중국이 한국을 제친 것이다. 한 조선 업계 관계자는 “한국 조선소보다 낮은 가격을 써낸 것으로 안다”면서도 “중국 조선소들이 친환경 선박 수주에 대비해 설비를 확장하는 건 경계 요인”이라고 했다.
중국 조선소는 쏟아지는 친환경 컨테이너선 주문을 감당하기 위한 투자도 늘리고 있다. 양쯔장조선은 30억위안(약 5700억원)을 투자해 2026년 완공 목표로 장쑤성에 친환경 선박 조선소를 조성하고, 뉴타임스조선은 스마트 선박 건조를 위해 최대 50억위안(약 9400억원)을 투자할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은 2만4000TEU급을 넘는 세계 최대 규모 컨테이너선 기술 개발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 9월 중국국영조선공사(CSSC) 산하 선박 연구소는 2만7500TEU급 LNG 이중 연료 컨테이너선 기본 설계 승인을 획득했다. 중국 항만은 3만2000TEU급 컨테이너선도 정박할 수 있는 항구를 설계하고 있다. 컨테이너선에서는 글로벌 선사의 신뢰를 획득했다는 평가다.
◇韓, 이중 연료 엔진 기술 격차 유지가 관건
국내 조선사들은 LNG 운반선 등 고부가 가치 운반선 위주로 수주하면서, 컨테이너선도 수익성을 우선한다는 방침이다. 최근 몇 년간 호황으로 현금을 확보한 선사들이 규모 우위를 차지하고, 향후 저가 운임 경쟁에 대비하기 위해 ‘발주 랠리’를 이어가면서 수익성 높은 물량도 나오고 있다. HD현대는 지난 7월 LNG 이중 연료 엔진 컨테이너선 12척을 약 3조7000억원에 수주했는데, 중국 조선소보다는 높은 가격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선 향후 컨테이너선 경쟁에서 ‘이중 연료 엔진’ 기술이 첫 시험대가 될 것으로 전망한다. 업계에 따르면, 중국은 내년부터 매년 약 40~50척 LNG 이중 연료 컨테이너선을 인도해야 하는데, 지금까진 한 해 10여 척 인도가 최대 실적이다. 반면, 국내 기업은 LNG 이중 연료, 메탄올 이중 연료 추진 엔진 모두 세계 최초로 개발하는 등 기술과 생산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다. HD현대, 한화오션 등 국내 주요 조선소는 HD현대중공업 엔진기계사업부, 한화엔진에서 품질과 성능이 검증된 엔진을 우선 공급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중국 정부가 올해 내놓은 ‘조선 산업 친환경 발전 개요(2024-2030)’에 따라, 암모니아 이중 연료 엔진 기술 등에서 글로벌 선사·선급 인증을 받으며 추격하는 건 변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