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의환 현대로템 고문이 21일 경기 의왕시 현대로템 기술연구소에서 K2 전차 모형을 가리키며 전차에 적용된 기술을 설명하고 있다. 그는 “우리 기술로 만든 전차를 세계 시장에 내놓는 게 일생의 과업이었다”며 “K2 전차를 통해 기술력을 확보한 만큼, 차세대 전차 경쟁에서도 해외에서 당당하게 겨룰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현대로템

대한민국 방위 산업이 해외에서 따낸 무기 공급 계약이 100조원을 눈앞에 두고 있다. 국내 4대 방산 기업인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현대로템, LIG넥스원,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의 수주 잔고는 올 상반기 기준 약 91조5500억원이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총알 하나 제대로 만들지 못하던 방위 산업은 작년 140억달러(약 19조3000억원) 규모 무기를 해외 12국에 팔 정도로 성장했다. 전차, 미사일, 자주포 등의 품질과 성능이 높은 평가를 받으며 방산 수출 세계 10대 국가로 발돋움한 것이다.

1970년대부터 최근까지 ‘자주 국방’이란 이름 아래 우리 고유 기술을 확보하려고 했던 개척자들의 힘이다. 이들은 외국 무기를 가져다 분해하고 베끼고, 해외에 나가 고개 숙여 기술을 전수받고 공부해 K방산 기틀을 만들었다. 그 주역들에게 K방산 신화의 비결과 역사를 들어봤다.

첫 순서로 우리 주력 전차 ‘K2′ 개발을 지휘한 김의환(70) 전 ADD(국방과학연구소) 전차개발 단장(현 현대로템 고문)을 만났다. K2 전차는 K방산이 본격적인 지식재산권 사용료(로열티)를 받고 수출한 첫 제품이다. 지난 2008년 튀르키예가 4억달러에 K2 개발 기술을 사갔다. 2022년에는 폴란드에 1000대 공급 계약도 맺었다. 제작사인 현대로템은 개발비 수천억원이 들어간 이 전차로 국내외 7조원이 넘는 매출을 올렸다.

김의환 현대로템 고문은 병역 특례를 받으려 ADD에 들어갔던 것이 인연이 돼, ADD 지원을 받아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재료공학 박사를 마쳤다. 1989년 귀국한 후에도 쭉 방산의 길을 걸었다. 국내외 기업 등에서 스카우트 제의도 있었지만 “공학자로서 세상에 없는 것을 만들고 국가에도 기여하는 일을 하고 싶었다”고 했다. 김 고문은 첫 국산 전차인 K1부터 첫 고유 기술로 만든 K2까지 현재 우리 군 전력의 핵심인 전차 개발에 깊숙이 관여하며 일생을 보냈다. 그런 그에게 ‘전차의 아버지’란 별명이 붙었다.

지상전의 꽃인 전차를 확보하기 위해 우리 군은 1970년대부터 개발에 나섰지만 결국 뜻을 이루지 못하고, 미국에서 1차 설계한 전차를 국내 생산하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지상군의 핵심 전력인 전차를 고유 기술로 개발할 수 있는 나라는 세계 10여 국에 불과하고, 수출까지 하는 나라는 미국·독일·프랑스 등 5~6곳에 그친다.

K1은 1990년대 우리 군에 배치됐는데, 우리가 생산을 하지만 수출을 할 수도 없었고 한국군 실정에 맞춰 개량을 하려 해도 일일이 허락을 받아야 했다. 생산을 맡기면서도 가장 기본적인 설계도만 보내줘서 기술을 배우기도 어려웠다고 한다. 이 과정을 직접 겪으며 김 고문은 “우리 기술로 만든 전차를 세계 시장에 내놓는 걸 내 일생의 과업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K2 전차 개발 주역 중 한 명인 김의환 현대로템 기술고문. /전기병 기자

◇전차 지식재산권 확보에 사활

지난 15일 서울 광화문 인근에서 만난 김 고문은 “우리 군이 전투 훈련에 매진했다면 우리 연구원들은 14년 동안 K2 전차를 개발하기 위한 지식재산권 전투를 벌였다”고 했다. 애초부터 해외 시장이 공략 목표였던 것이다.

처음부터 전차를 순수 우리 기술로 만들겠다는 목표를 세웠고, 그러기 위해 작동 원리 등 시스템부터 공부하기 시작했다. 우선 1995년부터 3년간 전차란 무엇인지 개념부터 연구했다. 국내엔 배울 스승도 없어 해외 최고 전문가를 삼고초려해 불러와 강의를 듣고, 하나라도 더 배우려고 예습도 복습도 정말 열심히 했다고 한다.

“당시 최고 수준이었던 미국의 에이브럼스 전차나 독일의 레오파드 전차, 이스라엘의 메르카바 전차 등보다 더 우수한 전차를 만들겠다는 걸 목표로 삼았어요. 솔직히 우리 중에도 과연 가능할까 반신반의하는 사람도 많았어요”

김 고문을 비롯한 연구팀들은 영국·이스라엘· 일본 등에서 전차 전문가 5명을 초청해 매일 8시간씩 5일간 세미나를 열기도 했다. ADD 연구원뿐만 아니라 방산 기업 관계자들도 수십 명이 모여 전차 기술을 배웠다. 김 고문은 “메르카바 전차를 만든 이스라엘 탈 장군 등이 강연을 했는데, 당시 이들의 강연을 녹음한 테이프가 몇 박스씩 나왔고 이게 소중한 자료가 됐다”고 말했다.

한국 전차만의 경쟁력을 갖기 위해 ‘이용자 중심의 전차’라는 개념도 자체적으로 고안해봤다. 기업들이 소비자 중심으로 제품을 만드는 요즘 트렌드를 미리 적용한 셈이다. 김 고문과 연구원들은 국내 10여 곳의 주요 전차부대를 돌아다니면서 주요 간부들과 인터뷰해 ‘고객 수요’를 일일이 파악했다. 미래 전투를 수행할 전차에 꼭 필요한 기능이 무엇인지, 한국 전차만의 특징이 무엇이어야 하는지 등을 반영한 것이다. 산악부터 평지까지 다양한 지형이 있는 우리 국토를 감안해, 자동차의 서스펜션을 조절하듯 지형에 맞춰 좌우 높낮이를 조절할 수 있는 기능을 세계 최초로 탑재했다.

무게를 다른 경쟁 전차보다 10톤 안팎 가벼운 55톤으로 줄여 험지에서 최고 시속 50km, 평지에서 시속 70km로 달릴 수 있는 기동성을 확보했다. 김 고문은 “많은 현역 군인들이 앞으로 미래 전투는 IT가 필수라고 말해, 전차 간 무선 디지털 통신이 가능하게 해 가상 공간에서 모의 전투도 할 수 있는 기능도 갖췄다”고 했다.

그래픽=양진경

◇1000개 오류 찾아라, 그래야 성공

실제 전차를 만드는 과정은 오류와의 싸움이었다. 경쟁력 있는 전차를 만들기 위해 그는 연구원들에게 “오류를 최소 1000개는 찾을 각오로 꼼꼼하게 테스트를 해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강조했다. 4.1m 수심에서 활동하는 전차를 만들기 위해 현대로템 직원들이 탄 전차 객실을 크레인으로 들어 물에 집어 넣기도 했다. 어느 날 갑자기 주포가 회전을 하지 않는 일이 생겨 며칠 발을 동동 굴렀는데, 핵심 부품에 물이 차서 생긴 일이라는 걸 뒤늦게 발견하는 일도 있었다. 김 고문은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고비들이 있었지만, 당시 우리의 고유 전차를 만들자는 열망이 워낙 강했기 때문에 힘든 순간들을 넘어설 수 있었다”고 했다.

그는 2006년의 어느 날을 잊지 못한다. 처음 전차 주포 사격 테스트를 하는 날이었다. 2km 안팎 먼 거리의 표적을 타격하는 주포는 전차의 핵심 경쟁력이다. 김 고문은 “첫날 주포를 세 발 쐈는데, 과녁 귀퉁이에 20㎝ 간격으로 포탄이 명중한 것을 보고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면서 “비로소 우리가 성공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다”고 했다.

2003년쯤부터 국방부, ADD, K2 생산에 관여한 현대로템 등 19개 기업의 임원과 실무진들이 ‘차전회’(차기전차회)를 만들어 수시로 의견을 교환하고 토론하는 모임을 가졌던 것도 K2 성공의 비결 중 하나다. 군과 민간, 연구소가 하나가 되어 외길을 달렸다는 것이다.

김 고문은 K2 전차가 폴란드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세계 시장을 더 누빌 수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그는 “최근 노르웨이 수출이 아깝게 실패했지만 노르웨이 군에서는 독일 전차보다 K2를 더 높게 평가한 게 고무적”이라면서 “세계 누구와도 당당하게 경쟁할 수 있는 전차 기술을 확보한 만큼, K2 다음 세대의 전차도 우리가 결코 뒤지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다만 그는 기업의 역할이 더 중요해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김 고문은 “정부와 군이 주도하고 기업이 따라가는 형태가 아니라, 기업들이 선제적으로 신기술을 개발하고 군에 제안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재량권을 더 많이 줘야 빠르게 변화하는 방위산업 경쟁에서 앞서갈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