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K-영풍 연합이 고려아연 최윤범 회장 측의 경영권 방어를 막기 위해 제기한 2차 ‘자사주 매입’ 금지 가처분 신청이 21일 법원에서 기각됐다. 이날 법원 결정에 따라 최 회장 측은 오는 23일까지 고려아연 주식을 주당 89만원에 최대 20%(고려아연 17.5%, 베인캐피탈 2.5%)를 매입하는 공개매수를 일정대로 진행하게 된다. 만약 MBK의 주장이 인용돼 고려아연 측의 자사주 공개매수가 중지됐다면, MBK는 추가 공개매수 등을 통해 지분을 늘려 경영권 경쟁에서 더 유리한 입장에 설 수 있었다.
고려아연의 자사주 매입 리스크가 해소되면서 이날 고려아연 주가는 전날 종가(82만4000원)보다 6.43% 급등한 87만7000원으로 마감했다. 이날까지 매입한 주식만 23일 마감하는 공개매수 청약에 응모할 수 있기 때문에 막판 차익을 노린 매수세가 몰린 영향이다. 재계에선 고려아연의 자사주 공개매수에도 지난 14일 먼저 종료한 MBK-영풍 공개매수와 비슷한 물량(약 5%)이 모일 것으로 보고 있다. 목표인 20%는 미달할 가능성이 크다.
이날 MBK측은 입장문을 내고 “가처분 결정은 안타깝다”면서도 “자사주 공개매수는 배임에 해당해 향후 손해배상청구, 업무상 배임 등 본안소송을 통해 고려아연 현 경영진에 대해 책임을 끝까지 물을 계획”이라고 했다. 반면 고려아연 측은 “MBK 측의 가처분은 고려아연 주주 불안감을 조성하고 자사주 공개매수를 방해하기 위한 시장교란 행위였다”면서 “MBK의 공개매수(지분 5.34%)는 원천 무효에 해당하기 때문에 금융감독원 진정을 포함, 모든 사법 절차를 통해 반드시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했다. 고려아연은 22일 기자 간담회도 열 예정이다.
◇가처분 기각에도 지분 경쟁 구도는 MBK 유리
MBK의 경영권 공격에 대해 고려아연 최 회장 측은 지난 2일 ‘자사주 공개매수’로 반격에 나섰다. 당시 MBK 공개매수 가격(주당 75만원)보다 높은 주당 83만원을 제시해, 주주들을 MBK 공개매수 대신 자사주 공개매수로 끌어오는 전략이었다. MBK는 이 전략을 사전 차단하기 위해 공개매수를 시작한 지난달 13일 ‘자사주 매입을 막아달라’는 1차 가처분을 냈지만, 지난 2일 법원에서 기각됐다. 이후 MBK 측은 가처분 내용을 일부 바꿔 2차 가처분 신청을 냈지만 이날 또다시 기각됐다. 법원은 “고려아연이 상법 및 자본시장법의 자사주 취득 절차를 준수한 이상, 공개매수 목적에 경영권 방어가 포함됐다고 해도 자사주 공개매수가 위법하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했다.
가처분 결과가 나온 이날 오전 11시를 전후해 고려아연 주가도 급등했다. 장 초반에는 약 7% 하락해 76만원대까지 떨어졌다가 법원 기각 결정 이후 급등세로 돌아섰다. 이날 종가인 87만7000원은 향후 주당 89만원에 공개매수에 참여했을 때 세금 등을 제외하고 차익을 볼 수 있는 마지노선으로 알려졌다.
고려아연은 23일까지 공개매수에 참여한 지분을 최소 매입 물량 기준 없이 최대 20%를 사기 위해, 차입금 약 2조7000억원 포함 3조2000억원을 투입한다. 그러나 현재 주식시장에서 유통되는 고려아연 주식은 18% 안팎으로 평가돼 미달이 유력하다.
◇장내매수 경쟁 가능성도...국민연금 변수
최 회장 측은 두 차례 가처분 판단을 통해 자사주 매입 정당성은 확보했지만, 그 사이 상황은 MBK가 유리해졌다. 지난 14일 끝난 공개매수에서 MBK는 예상보다 많은 지분 5.3%를 확보해 지분을 38.4%까지 늘렸다. 우호지분 포함 약 34%인 최 회장 측을 제쳤고, 의결권 있는 주식 기준으로는 MBK가 과반에 근접한 약 48%까지 앞서나갔다.
MBK 측 공개매수(주당 83만원)에 참여하지 않도록 높은 가격(주당 89만원)을 제시한 자사주 공개매수가 현재로선 더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자사주는 의결권이 없어 공개매수에서 얼마나 매입하는지 상관없이 MBK가 앞서는 지분 구도는 바뀌지 않는다. 최 회장 측이 경영권을 방어하기 위해서는 자사주 공개 매수에 적은 물량이 참여하고, 이후 장내 매집으로 의결권 있는 주식을 확보하는 게 최선이다. 그러나 MBK도 장내 매집으로 맞불을 놓을 수 있는 만큼 이 방법도 결과가 불확실하다.
양측이 이날 추가 소송을 예고해 향후 법적 분쟁과 장내 매집 경쟁이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앞으로 열릴 임시 주총에서 의결권 경쟁에 대비하기 위해 공개매수 이후 장내매수 방식으로 추가 지분 매집이 유력하다. 약 7%의 지분을 보유한 국민연금 표심이 가장 큰 변수라는 분석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