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권 분쟁 중인 고려아연 주가가 24일 폭등해 상한가인 113만8000원을 기록했다. 지난 9월 13일 MBK·영풍 연합이 고려아연 지분 공개 매수를 시작한 이후 42일 동안, 주식 휴장일을 제외한 거래일 기준 18일 만에 주가는 100% 넘게 가파르게 올랐다. 시가총액이 낮은 동전주(주가 1000원 미만 종목)나 테마주가 급등하는 경우는 종종 있지만, 시총 10조원이 넘고 주당 가격이 수십만 원대인 이른바 ‘무거운 주식’으로선 전례 없는 주가 흐름이다. 같은 기간 주가수익비율(PER·주가를 주당순이익으로 나눈 비율)도 21.27에서 43.54가 돼 이미 고평가 영역에 들어섰다.
자본시장에선 양측의 ‘장내 매수’ 방식의 지분 경쟁 2차전 가능성이 커 향후 주가 추가 상승을 노린 ‘투기성’ 매수세가 올린 영향으로 봤다. 지난 14일 MBK 측 공개 매수 종료에 이어 전날(23일)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측의 자사주 공개 매수가 끝났지만, ‘1차전’ 격 공개 매수에서 양측 모두 지분 과반을 달성하지 못했다. 향후 주주총회 표 대결을 위해선 공개 매수 이후 시장에 남은 유통 주식을 누가, 얼마나 확보하는지가 중요하기 때문에 주가 상승 여력이 충분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주가가 한 달 새 100% 이상 급등하며 경영권 분쟁이 끝난 뒤 주주 피해 우려도 커졌다. 양측이 공개 매수 가격을 연달아 올리며 경쟁할 때 이미 금융감독원이 “장기적인 기업 가치를 도외시한 지나친 공개 매수 가격 경쟁은 주주 가치 훼손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며 과열 경고를 하고 조사를 지시했는데 과열 양상은 오히려 더 커졌다.
◇조(兆) 단위 ‘쩐의 전쟁’에 주가 폭등
지난달 경영권 분쟁이 시작될 때 양측이 동원하는 자금은 3조원 규모였다. 그러나 양측이 공개 매수 가격을 연달아 올려 ‘맞불’을 놓으면서 투입해야 하는 자금도 급속도로 늘어, 3주 만에 약 7조원대로 뛰었다. ‘쩐의 전쟁’이 커질수록 주가도 뛰었다. 경영권 분쟁 시작 전, 지난 9월 12일 고려아연 주가는 주당 55만6000원, 시가총액은 약 11조3443억원으로 37위였다. 양측의 지분 경쟁 때문에 주가가 급등하면서 이날 시총은 23조5603억원까지 불어났고, 순위도 14위로 올랐다. 현대모비스(15위), LG화학(16위), 삼성SDI(17위), 카카오(26위), LG전자(28위) 등을 제쳤다.
재계와 자본시장에선 양측 모두 공개 매수를 진행하며 시장에 남은 고려아연 유통 주식이 급감해 향후 장내 매수 경쟁이 더 치열해질 수 있다고 평가한다. 고려아연 상장주식은 약 2070만주인데, 분쟁 전 우호 지분 포함 양측이 약 77%를 보유하고 있어 시장 유통 물량은 20%대 초반이었다. MBK 측이 지난 14일 마감한 공개 매수로 5.34%(약 110만주)를 가져가며 17~18% 내외로 줄었다.
지난 23일 마감한 최 회장 측의 고려아연 자사주 공개 매수에도 일부 참여했다면 유통 주식은 더 줄고, 매도에 신중한 국민연금 지분(약 7%)이 풀리지 않았다고 가정하면 8% 수준까지 급감한다. 시장에선 유통 주식 30% 미만인 경우 이른바 ‘품절주(유통 물량이 현저히 적은 주식 종목)’로 본다. 품절주는 상대적으로 적은 거래량에도 주가가 크게 출렁인다.
◇이사회 장악 위한 주총 표 대결 경쟁
현재 MBK 측은 38.47%, 최 회장 측은 기존 약 34%(우호 지분 포함)에 베인캐피탈의 공개 매수 일부를 더하면 30%대 중반이다. 결국 시장에 남은 약 8% 지분을 누가 더 빨리, 많이 확보하는지가 향후 주주총회 표 대결 승부처로 꼽힌다.
이후 주주총회 표 대결을 앞두고 장내 매수 경쟁이 본격화할 수 있다. 남은 주식 약 8%를 이날 종가(113만8000원)로 계산하면, 1조8000억원 규모다. 공개 매수 이후 재차 조 단위 자금 동원도 쉽지 않다.
고려아연 정관은 대기업 중 드물게 이사 정원 상한 규정이 없다. 현재 이사 13명 중 MBK 측은 장형진 영풍 고문이 유일하다. MBK는 임시주총에서 신규 이사를 대거 선임하는 방식으로 경영권 장악을 시도할 수 있다. 이때까지 양측 모두 과반을 확보하지 못할 경우, 국민연금 등 중도 지분이 ‘캐스팅 보트’가 될 전망이다. 향후 금감원 조사, 법원 배임 소송도 주총 표 대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