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백형선

우리나라 경제에 2개 분기 연속 ‘성장률 쇼크’가 이어졌다. 긴 내수 부진이 이어지는 가운데 우리 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해온 수출마저도 경고등이 켜졌다. 지난해 심각한 불황에 시달리던 반도체의 빈자리를 메워주던 자동차마저 올 3분기(7~9월) 실적에선 하락세로 돌아섰다. 반도체와 자동차를 비롯해 철강 등 우리 경제의 핵심인 수출 5대 품목 또한 대부분 내림세를 나타내고 있어 내년 마이너스 성장에 대한 우려가 생기고 있다.

한국은행은 24일 올 3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0.1%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한은의 전망치(0.5%)에도 크게 미치지 못했다. 2분기 역성장을 감안하면 전 분기 대비 0.1% 성장은 사실상 마이너스라는 진단도 나온다. 수출이 2022년 4분기(-3.7%) 이후 1년 9개월 만에 감소하면서 성장률을 끌어내렸다.

앞장서 수출을 이끌던 자동차도 부진한 실적을 내놓았다. 현대차는 이날 3분기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6.5% 줄었다고 밝혔다. 글로벌 수요 둔화와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 등이 겹치며 3분기 판매 대수는 작년보다 3.2% 감소한 101만대에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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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는 반도체 업황이 사상 최악의 부진에 빠졌던 지난해, 사상 최초로 700억달러(약 96조5000억원) 수출을 넘어서며 국내 산업계를 든든하게 떠받쳤다. 올 들어 반도체가 인공지능(AI) 수요를 바탕으로 회복세를 보이고 있지만, 대표 기업인 삼성전자를 두고 위기라는 진단이 나오는 상황에서 현대차마저 판매 대수가 줄고, 영업이익이 쪼그라들자 수출 주도 한국 경제에 위기감이 커진다. 재계 관계자는 “한국 경제의 절대적 비중을 차지해온 수출에서 가장 핵심적인 산업마저 중국의 추격 등으로 경쟁력을 잃어가는 상황”이라며 “이를 타개할 방향은 기존 핵심 산업에서 뼈를 깎는 혁신은 물론 이들 산업을 중장기적으로 대체할 혁신 산업의 부상을 끌어줄 유인책 등이 맞물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내수·수출 동반 부진에 성장률 쇼크

내수 부진이 이어지는 가운데 한국 경제를 지탱해 온 수출마저 과거와 같은 활력을 보여주지 못하면서 경제에 먹구름이 끼고 있다. 민간 소비는 여전히 어두운 터널 속이다. 이날 한은에 따르면 민간 소비는 3분기 0.5% 늘어나며 2분기(-0.2%) 마이너스에서 플러스로 전환했지만, 여전히 0%대에 갇혀 있다. 2022년 3분기(1.3%)를 마지막으로 8개 분기 연속 0%대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11개월 연속으로 내수 경기가 부진하다는 경고를 내놓고 있다. 실질 소비 수준은 ‘카드 대란’으로 내수 소비가 크게 꺾였던 2003년 이후 20여 년 만의 최저치라는 분석도 나온다.

그래픽=백형선

민간 소비와 함께 내수의 핵심 축인 투자도 부진이 계속된다. 설비투자는 6.9% 성장하며 2개 분기 연속 마이너스 행진에서 벗어났지만, 건설투자는 2.8% 감소해 2분기(-1.7%)에 이어 감소세를 이어갔다.

문을 닫는 기업들도 크게 늘고 있다. 올 1~9월 법원에 접수된 법인 파산 신청 건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9% 증가한 1444건을 기록했다. 이 같은 추세가 이어지면 올해 연간 파산 신청 건수는 작년 기록(1657건)을 넘어 역대 최대치를 경신할 전망이다.

성장률이 2개 분기 쇼크를 나타내면서 올해 연간 성장률도 당초 전망보다 낮아질 가능성이 커졌다. 현재 정부의 성장률 전망치는 2.6%, 한은 전망치는 2.4%다. 신승철 한은 경제통계국장은 “4분기에 1.2% 성장해야 연간 2.4% 성장률 달성이 가능하다”며 “3분기 실적치가 전망치에 비해 낮게 나왔기 때문에, 2.4% 성장은 어렵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수출 주력 품목들 나란히 내림세

경제성장의 70% 이상을 책임지는 수출까지 힘을 내지 못하면서 불안감이 커진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해에는 내수 부진이 심해지며 수출은 경제성장률(1.36%) 가운데 86%인 1.17%를 기여했다.

하지만 전체 수출의 절반에 이르는 주요 5대 수출 품목(반도체·자동차·석유제품·석유화학·철강)은 사실상 정체나 마이너스에 그치고 있다. 반도체는 지난 3분기 수출이 41.4% 늘었고, 1~9월로 따져도 48.1% 늘었지만, 2022년 같은 기간과 비교해선 오히려 8.3% 줄었다.

반도체에 이어 수출 2위인 자동차도 지난 3분기 수출이 3.1% 감소한 159억달러에 그쳤고, 석유제품도 1.8% 감소했다. 중국을 비롯한 세계 시장의 수요 둔화 전망이 국제 유가를 끌어내리는 가운데 국내 정유 업계엔 올해 적자를 낼 것이란 우려가 커진다. 석유화학도 반도체와 같이 지난해 대비 기저효과가 나타났지만, 2022년과 비교하면 7% 이상 감소했다. 철강 또한 수요 감소가 발목을 잡는 가운데 중국산 저가 제품의 공세와 유럽의 탄소 장벽 등이 겹치며 수출이 부진하다. 국내 건설 경기도 위축되면서 철강 분야 대표 기업인 포스코는 상반기 영업이익이 작년 대비 30% 가까이 줄었다.

조경엽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자동차 성장세에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반도체도 HBM(고대역폭 메모리) 외 범용 제품의 가격 하락 가능성이 커지며 양대 품목 수출 전망이 밝지 않다”며 “내수 부진을 수출로 만회해야 하는 상황에서 고민이 깊어지는 시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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