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 여름 미국 코네티컷주 하트퍼드에서 휴일을 보내는 도미 기사들과 콜트사의 엔지니어들 모습. 왼쪽 둘째가 황익남 전 대령. /황익남 전 대령 제공

1973년 귀국한 M16 도미 기사단은 ‘K방산’의 씨앗을 뿌렸을 뿐만 아니라 당시 황무지와 같았던 한국의 정밀기계 공업의 선구자 역할도 맡았다. 도미 기사들이 귀국 후 일했던 국방부 조병창은 국가 사업 민영화 정책에 따라 1981년 대우정밀로 민영화됐다. 민영화 전후로 도미 기사는 군(軍), 방산기업, 기계공업 각 분야에 진출했다. 도미 기사들은 “당시 미국에서 밤낮으로 갈고닦은 M16 제조 기술이 박격포, 자주포 등 핵심 K무기들로 이어진 건 물론이고 ‘K원전’까지 이어졌다”고 말한다.

인하대 기계공학과 출신 윤영길(82) 전 교수는 1978년 국내 1호 기계공정기술사가 됐다. 한국베어링 부평 공장에서 일하다 ‘원전 국산화 프로젝트’에 참여해 미국 원전 기업 CE로 파견, 2년간 기술팀장을 맡으며 원전 기계 보수 기술을 배워왔다. 강흥림(85) 전 삼진엔지니어링 전무는 대우정밀에서 근무하다 이후 원자력발전소 울진 3·4호기, 월성 2호기 설비 제작에 참여했다.

김은호(81) 전 삼성중공업 부장은 대한중기공업(현 현대위아) 공장에서 박격포 포신 등 주요 부품 제작에 참여했고, 한국중공업, 삼성중공업에서 굴착기, 불도저 등 건설 중장비 개발, 생산에 참여했다. 양재근(84) 기사도 한국중공업에서 한국형 K9 자주포 기획을 맡았다.

당시 한국에선 정밀기계 공업 관련 교육 자체가 드물었는데, 도미 기사들은 기술자인 동시에 ‘강사’ 역할도 맡았다. 현재 방위산업 기업이 모여 있는 창원 산단 초기부터 이들은 순회 교육을 다녔다고 한다. 1970년대 중후반 경남 사천에서 대한항공이 처음 시작한 헬리콥터 조립 생산 때도 이들 도움을 받았다. 당시 대한항공 엔지니어들이 부산 조병창을 찾아 교육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