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11월 3일 경남 마산항. 화물선 ‘다이아몬드 하이웨이’에 유엔(UN) 표지를 단 장갑차 42대가 줄지어 실렸다. 석 달 전 말레이시아는 보스니아 내전에 평화유지군을 보내려 한국산 장갑차 ‘K200′을 구매하기로 결정했다. 장갑차는 전장에서 우리 보병을 안전하게 수송하는 역할을 한다.
이날 1차 선적을 끝낸 화물선이 고동을 울리며 말레이시아 클랑항으로 출항하자 사방에서 오색 테이프가 흩날리며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K방산이 처음으로 국산 기동 장비를 수출하는 순간이었다. 그때까지 탄약, 군수지원함 등을 수출한 적은 있지만 전장에서 주된 역할을 하는 기동 장비를 대규모로 수출한 건 최초였다. 2년간 총 111대가 말레이시아로 수출됐다.
이때부터 31년이 지난 지난 8월, 우리 방위산업은 당시 수출한 K200 성능을 업그레이드하는 사업을 또 따냈다. 우리가 당시 보병 수송용으로 수출한 K200을 전투용으로도 사용할 수 있게 개량할 계획이다. 독자적으로 쌓아온 기술력 덕에 과거 개척한 해외시장에서 새 사업 기회를 또 발굴한 것이다.
이런 ‘31년의 인연’을 가능하게 한 K200 개발에 참여했던 김계환(70) 원진엠앤티 기술고문을 지난 11일 경남 창원에서 만났다. 원진앰엔티는 대우중공업의 후신인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협력사다. 그는 대우중공업 입사 4년 차인 1981년 여름, 회사에 K200 장갑차 개발을 위한 특수사업본부가 꾸려질 때 처음으로 방산에 발을 들였다. 당시 사업본부의 팀장급은 7~8년 차, 실무진은 3~4년 차에 불과했다. 대부분 방산 전문가가 아닌 엔진, 공작 기계, 중장비 같은 부서에서 일하다 차출돼 장갑차 기초부터 배워야 했다.
◇손쉬운 미국 ‘카피’ 대신 독자 개발
197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 군은 미국 장갑차 ‘M113′을 쓰고 있었다. 기술력이 아직 부족하니 계속 미국 제품을 사서 개조해 쓰는 게 낫다는 목소리가 컸다. 하지만 우리 군 일부에서 “당장 예산을 줄일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지금 우리 무기를 개발하지 않으면 앞으로 후회하게 될 것”이라며 밀어붙인 끝에 한국형 장갑차를 개발하게 됐다.
사업자로 낙점된 것은 M113을 정비해 본 경험이 있는 대우중공업이었다. 하지만 장갑차를 직접 만들어본 경험이 없었기에 개발팀은 M113 도면을 구해 반년 넘게 공부했다. 김 고문은 “당시 정비를 가르쳐주던 미국 쪽 사람이 갖고 있던 설계도를 빌려 기초 공부 자료로 쓰기도 했다”고 말했다.
큰 난관 중 하나는 장갑차의 핵심 동력 장치를 무엇으로 만들지였다. 당시 국방부는 국산 엔진에 대한 불신이 커서, 엔진과 변속기 모두 미국 제품을 쓰길 원했다. 하지만 개발팀은 국산화 희망을 버리지 않았고, 두 가지 시제품을 만들었다. 첫째는 미국제 엔진·변속기를 써서 M113과 거의 동일하게 만들었고, 다른 두번째 시제품은 대우중공업 엔진에 영국제 변속기를 썼다. 엔진까지 미국제를 쓰면 M113의 복사판에 그친다고 생각한 것이다.
김 고문은 “우리 엔진에 맞는 변속기를 구하려 미국 업체를 방문했을 때 ‘한국이 무슨 장갑차를 만드느냐. 절대 팔지 않겠다’고 문전박대 당하기도 했다”며 “전 세계를 수소문한 끝에 영국에 가서 겨우 변속기를 조달해 왔다”고 말했다.
1984년 10월 국군의날 시가 행진. K200이 대중 앞에 첫선을 보인 날, 우리 군이 내세운 건 시제품 2호였다. 국산 엔진으로도 같은 성능을 입증했기 때문이다. 이날 K200 16대 행진을 보고선 미국 M113 제조사 관계자가 대우중공업을 찾아와 “지식재산권을 침해했다”고 항의했다고 한다. 회사는 그를 K200을 생산 중이던 창원 공장으로 데려가 장갑차 내부를 뜯어 보여줬다. 김 고문은 “우리 엔진에 영국제 변속기를 썼으니 핵심 동력 장치부터 이미 달랐기 때문에, 결국 그 사람은 사과하고 돌아갔다”고 했다.
◇전쟁터 한복판서 AS 해준 K방산
K200의 사업명은 다산의 상징인 두꺼비다. 독자 기술을 확보하면서 K200 장갑차는 이후 궤도형 화생방 정찰차 등 다양한 계열화 차량으로 재탄생했다. 그 이름처럼 장갑차 수천 대 생산으로 이어진 것이다. 김 고문은 “우리가 손쉬운 복제 대신 독자적으로 개발했기 때문에 K200을 기반으로 다양한 차량을 만들 수 있었고 수출할 때도 자유로웠던 셈”이라고 했다.
말레이시아 수출을 위해 K200을 빠르게 개량한 것도 개발자들 사이에서 유명한 일화다. 당시 말레이시아는 “당장 장갑차를 전쟁터로 보내야 하니 한두 달 내로 받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대우중공업은 군과 협의해 당시 군에 납품된 K200을 빌려 와 말레이시아가 원하던 지휘용, 의료용 장갑차 등으로 빠르게 바꿨다.
대우중공업은 보스니아 주둔지에 3차례 애프터서비스(AS) 팀도 파견했다. 장갑차를 100% 가동해 성능을 제대로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김 고문은 “이후 ‘한국은 전쟁터에도 AS팀을 보내준다’는 소문이 나 수출 세일즈 현장에 갈 때마다 얘기가 나왔다”며 “두려움을 뚫고 전쟁터 한복판으로 향한 동료 모두 지금도 자긍심을 느낀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