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 유통기업이자 재계 11위인 신세계그룹이 이마트와 신세계백화점을 계열 분리한다. 신세계그룹은 이명희 총괄회장의 장남 정용진(56) 신세계그룹 회장이 이마트 부문을, 30일 ㈜신세계 회장으로 승진한 정유경(52) 회장이 백화점 부문을 독자 경영하는 방식으로 분리한다는 계획이다. 신세계그룹의 사실상 창업주인 이명희 총괄회장이 1997년 삼성그룹에서 분리해 독립한 지 27년 만이다.
신세계그룹은 이날 “그룹을 백화점 부문과 이마트 부문으로 분리해 새로운 성장을 도모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신세계그룹은 지난 2011년 이마트를 신세계에서 인적 분할해 별도 법인으로 출범시키면서 ‘남매 경영 체제’를 시작했지만, 계열 분리를 공식적으로 밝힌 건 처음이다. 정유경 회장은 1996년 조선호텔에 입사한 지 28년 만에 독립 경영에 나서는 것이다.
◇정용진 이마트, 정유경 백화점
정용진 회장의 이마트 부문에는 대형마트인 이마트, 복합쇼핑몰 스타필드(신세계프라퍼티), 스타벅스(에스씨케이컴퍼니), 편의점 이마트24, 프로야구단, 지마켓 등이 속해 있다. 전통의 유통사업과 함께 이커머스 기업이 포함된 구조다. 이 업종들은 중국 알리·테무·쉬인 등 이른바 ‘알테쉬’와 쿠팡 등 이커머스의 공세에 맞서 경쟁력을 입증하고 수익을 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이마트는 상반기 기준 영업이익이 지난해보다 519억원 증가하며 올해 수익성 개선을 기대하고 있다.
정유경 회장의 백화점 부문에는 신세계백화점, 아웃렛(신세계사이먼), 면세점(신세계디에프), 패션·뷰티 등이 속해 있다. 정유경 회장은 2015년 12월 ㈜신세계 총괄사장으로 승진한 이후 백화점 부문의 매출과 수익을 모두 배(倍)로 성장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신세계백화점은 올해 상반기까지 사상 최대 매출을 이어가고 있다. 백화점 부문은 이커머스 경쟁에서는 한발 물러서 있지만, 글로벌 브랜드는 물론 국내 신생 브랜드와 치열한 경쟁을 해야 하는 게 과제다. 신세계그룹 관계자는 “실적을 바탕으로 계열 분리를 통해 성장의 속도를 한층 더 높일 수 있는 최적기가 올해라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신세계그룹의 계열사들은 마치 칼로 무를 자른 듯 이마트 부문과 백화점 부문으로 나뉘어 있다. 2021년 정용진 회장이 보유했던 광주신세계 지분 52.1%를 신세계에 양도하는 등 계열사 재편 작업을 했기 때문이다. 이마트와 신세계의 지분이 섞여 있는 곳은 SSG닷컴이 유일하다. 업계 관계자는 “SSG닷컴이 계열 분리 과정에서 또 다른 이커머스 지마켓을 갖고 있는 이마트 부문으로 넘어가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13년 동안 준비한 계열 분리
통상 대기업 계열 분리는 복잡한 과정을 거친다. ‘상장사 기준 상호 보유 지분이 3% 미만이어야 한다’는 공정거래법상 친족 계열 분리 조건 등에 따라 최대주주 간 지분을 교환하고 계열사를 나누는 것을 비롯해 난해한 방정식을 풀어야 한다. 하지만 재계에서는 “신세계그룹 계열 분리는 이전 어떤 사례보다 간단할 것”이란 말이 나온다. 신세계그룹이 계열 분리를 공식화한 건 이번이 처음이지만, 사실상 10년 넘게 준비해왔기 때문이다.
신세계그룹은 지난 2011년 정용진 회장이 이마트를, 정유경 회장이 백화점 사업을 각각 맡는 남매 경영 체제를 시작했다. 이후 정용진 회장과 정유경 회장은 서로 갖고 있던 신세계와 이마트 주식을 맞교환했다. 이명희 총괄회장은 2020년 정용진 회장에게 이마트 지분을, 정유경 회장에게 신세계 지분을 증여하면서 남매 경영 체제를 점차 ‘분리 경영 체제’의 틀로 완성해갔다. 현재 정용진 회장은 이마트 지분 18.6%를, 정유경 회장은 신세계 지분 18.6%를 보유하고 있다. 이명희 총괄회장은 양쪽에 각각 10%의 지분을 갖고 있다. 신세계그룹은 “정유경 총괄사장의 회장 승진은 책임 경영을 강화하고, 계열 분리의 토대 구축을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계열 분리를 선언했다고 당장 완전한 독자 경영이 시작되는 건 아니다. 친족독립경영 신청을 한 뒤 공정거래위원회의 심사 등을 받아야 한다. 재계에서는 계열 분리가 완성되기까지 수년이 걸릴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는다.
이날 정기 인사를 통해 신세계그룹은 이마트·에브리데이·이마트24를 맡고 있던 한채양 이마트 대표이사 부사장을 사장으로 승진시켰다. 이마트24 대표이사에는 송만준 이마트24 운영본부장이 내정됐다. 신세계푸드 대표이사로는 강승협 신세계프라퍼티 지원본부장이 선임됐고, 조선호텔앤리조트 대표에는 전상진 이마트 지원본부장이 내정됐다. 신세계L&B 대표에는 외부에서 영입한 마기환 대표를, 신세계야구단 대표에는 김재섭 이마트 기획관리담당이 발탁됐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은 패션 부문과 뷰티&라이프 부문으로 이원화돼 윌리엄김 신세계인터내셔날 대표가 패션 부문 대표로, 김홍극 신세계까사 대표가 신세계인터내셔날 뷰티&라이프 부문 대표직을 겸하게 됐다. 신세계그룹은 “역량 중심의 인재를 적극적으로 발탁해 성장을 가속화하겠다는 그룹의 의지를 반영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