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방위산업은 이제 록히드마틴에 기술적으로 새로운 접근법을 제시할 정도로 수준이 높아졌습니다.”
세계 1위 방산기업 록히드마틴에서 연매출 250억달러(약 34조원) 규모 항공사업을 총괄하는 그레그 울머 사장은 K방산의 달라진 위상에 대해 이같이 평가했다. 지난달 29일 서울 여의도 사무실에서 만난 울머 사장은 “다른 국가와 차별화되는 한국의 제조·엔지니어링 역량이 K방산의 성공 요인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록히드마틴은 미 공군의 주력이자 현존 최강으로 꼽히는 전투기 F-22(랩터), 5세대 스텔스 전투기 F-35, 이지스 전투체계 등을 생산하는 세계 최대 방산기업이다. 무기 원조에 의존하고 수입도 겨우 하던 국가에서 무기 수출 세계 9위권으로 성장한 K방산의 오랜 ‘파트너’이기도 하다. 한국이 1990년대 이 회사의 블랙호크(UH-60) 헬기, F-16 전투기를 조립 생산하던 시절부터 T-50 초음속 항공기를 공동 개발해 수출까지 하는 현재까지, 약 40년간 K방산의 시작부터 성장의 모든 과정에 참여하여 지켜봤다.
그는 “세계 정세의 불안이 커지는 가운데 ‘힘을 통한 평화’ 억지력을 확보하기 위해 K방산은 매우 강력하고 믿을 수 있는 파트너십”이라고 말하며 경남 사천시에 본사를 둔 한 방산 중소기업을 언급했다.
◇”K방산은 믿을 수 있는 파트너”
울머 사장은 “대한민국 산업은 경제적인 동시에 매우 높은 품질의 소재를 생산한다”며 한 부품 협력사를 꼽았다. 항공기 금속 부품 제조를 전문으로 하는 ‘켄코아에어로스페이스’라는 회사였다. 방산에 특별한 관심이 없다면 생소한 수백억원대 연매출의 중소기업이다. 그러나 록히드마틴의 베스트셀러 중 하나인 ‘C-130′ 수송기 핵심 부품 등을 공급하는 ‘강소기업’이기도 하다.
항공기는 작은 결함이라도 있으면 띄울 수조차 없고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데, 이 회사는 록히드마틴, 보잉 등 주요 기업 1차 협력사로서 초정밀 가공과 고난이도 조립이 필요한 부품을 공급하고 있다. 미국 법인에서도 자체 생산해 현재 록히드마틴의 C-130, F-16, F-35 등의 항공기 부품 제작을 공급하고 있다. 울머 사장은 “방위산업에서도 경제성과 품질을 모두 갖춘 안정적 글로벌 공급망을 확보하기 위해 끊임없이 검토하고 있다”며 “록히드마틴이 한국 산업 생태계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라고 했다.
항공 공학을 전공한 울머 사장은 1987년 방산기업 맥도널 더글러스(현재는 보잉에 합병)에 입사해 항공 분야 엔지니어로 일하다 록히드마틴으로 옮겼다. 현재 록히드마틴의 4개 사업부 중 항공사업부 사장을 맡아 직원 약 3만5000명과 함께 일하고 있다. 철통 보안으로 관리되는 록히드마틴 연구시설 ‘스컹크워크스(Skunk Works)’에서 운영 총괄 부사장을 맡아 생산·품질·공급망·시설·보안 등 모든 자원과 인프라를 책임지기도 했다.
◇공동 개발한 K방산으로 美 수출 도전
록히드마틴과 K방산의 협업은 약 40년 전, 19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초기에는 록히드마틴 등 해외 방산기업이 거의 다 만들어 놓은 부품을 국내로 가져와 조립하는 초보 수준의 생산이었다. 협업 논의를 거쳐 1990년 ‘블랙호크’로 알려진 록히드마틴의 군용헬기 UH-60 생산, 1994년부터 국내 생산이 시작된 베스트셀러 전투기 F-16 등의 시작이 모두 ‘조립 생산 방식’이었다.
이후 급성장한 한국의 제조업 역량이 맞물리면서 절충 교역(무기 도입 대가로 기술이전 등을 받는 방식) 형태로 진화했다. 록히드마틴 등 수출 기업이 설계 기술 등을 제공하면 한국 기업이 일부 부품은 국산화하면서 생산은 전적으로 맡아 완성하는 방식이다. 협력 초기에는 애로 사항이 많았다. 울머 사장은 “초기엔 당연히 구조, 복합재, 항공 전자 분야 등 다양한 주제에서 어떻게 문제를 개선해야 하는지 치열하게 고민해야 했다”면서 “그래도 록히드마틴과 한국 방산기업은 빠른 시간 안에 신뢰를 구축해 냈다”고 말했다.
록히드마틴과 한국 국방부, 방산기업의 F-16 전투기 협력은 올해 30주년을 맞았다. F-16은 조립 생산을 넘어 개량형 면허 생산까지 한국이 해냈고, 이 경험의 축적이 한국형 훈련기 개발의 기반이 됐다.
다음 단계는 공동 개발 방식이었다. 대표 사례가 KAI(한국항공우주산업)와 록히드마틴이 진행한 T-50이다. 1991년 차기 전투기 사업인 KFP의 대상 기종으로 F-16이 선정된 뒤 우리 측은 록히드마틴 측에 훈련기 개발 기술을 이전해줄 것을 계약 조건으로 내걸어 관철했다. T-50 개발의 출발선이 됐다. 아직 100% 국산화를 위해선 넘어야 할 산들이 남아 있지만, T-50 곳곳에는 최첨단 소재로 꼽히는 탄소섬유 복합 소재, 디스플레이, 타이어, 항공전자장비 등에 K방산의 핵심 기술이 녹아 있다.
울머 사장은 KAI와 공동으로 추진 중인 T-50 계열 초음속 전투기의 해외 수출에 대해서도 자신감을 내비쳤다. T-50을 개량한 모델은 인도네시아, 폴란드 등으로 수출 계약을 이미 따냈고 지금은 최대 20조원이 넘는 미 해군 훈련기 사업에도 도전장을 내밀었다. 울머 사장은 “세계에서 비슷한 파트너십 기회는 많지만, 한국 그리고 KAI 협력은 서로 윈윈 할 수 있었던 특별한 파트너십”이라며 “미 해군뿐 아니라 미 공군, 캐나다 공군, 호주 공군을 포함해 다양한 국가의 T-50에 대한 자료요청서(RFI)에 회신했다”고 했다. 항공 분야뿐 아니라 해상전력의 핵심인 이지스함에서도 HD현대중공업의 건조기술과 록히드마틴의 이지스 전투체계를 결합해 제3국에 함정 수출을 공동 추진하고 있다.
◇”기술 주던 韓에서 새 접근법 배워”
울머 사장은 앞으로 세계 각국이 ‘힘을 통한 평화’ 확보에 나서면서 글로벌 방산시장이 점점 더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K방산과 ‘차세대 플랫폼 통합’, 그리고 ‘첨단 소재’ 분야에서 협력 중요성을 강조했다. 울머 사장은 “과거에는 기술 이전으로 한국 방산기업이 얻을 수 있는 이점이 있었다”며 “현재는 한국의 항공우주 산업이 기술, 방법론 측면에서 새로운 접근법을 제시하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록히드마틴이 (한국에서) 배울 점도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투명성이 보장되는 양측 파트너십이 가장 많은 배움이 일어나는 지점”이라고 했다.
울머 사장은 “한국이 록히드마틴으로부터 도입한 F-35, 록히드마틴과 함께 개발한 한국형 전투기 KF-21을 서로 어떻게 연결하는지, 이러한 플랫폼을 항공 및 우주 시스템과 어떻게 통합하는지, 이러한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수준의 기술을 공유할 수 있고 어떤 기술을 연구하는 것이 적절한지 모두 중요하다”며 “로드맵을 그릴 수 있도록 양국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기술 발전에 따라 불가능했던 것을 가능하게 하는 소재도 등장할 것”이라며 “이런 정보와 기술을 최대한 많이 배우고 공유하고자 한다”고 했다.
☞록히드마틴
1995년 방산기업 ‘록히드’와 ‘마틴 마리에타’ 합병으로 출범한 세계 최대 방위산업체. 현존 최강 전투기 F-22(랩터), 이지스 전투 체계, 패트리엇 미사일 등을 생산한다. 2023년 말 기준 수주 잔액은 역대 최대인 1610억달러(약 221조원)를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