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12월 충남 안흥시험장. 국방과학연구소(ADD) 강신천 선임연구원과 조기호 기술원, 삼성테크윈(현재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정동수 대리와 막내였던 안병철 대리(현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사장) 등 4명은 한창 K9 자주포(自走砲) 연속 발사 시험을 하고 있었다.
연속 사격 중 갑자기 포탄 발사가 뚝 멈췄다. 이상하게 생각한 것도 잠시, 탄이 들어가는 약실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삽시간에 뻘건 불길이 4~5평에 불과한 실내에 번졌다. 입구 쪽에 있던 안 사장을 비롯한 개발자들은 황급히 밖으로 뛰쳐나가 바닥에서 몸을 구르며 곳곳에 붙은 불을 껐다. 크고 작은 화상을 입었지만 생명엔 지장이 없었다. 그러나 맨 안쪽 사수석에 있었던 30대 정동수 대리는 결국 극심한 화상으로 치료를 받다가 한 달 뒤 숨졌다.
K9 자주포는 당시 우리보다 5000문 이상 화포가 많았던 북한과의 격차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개발하는 신무기였다. 이 사고로 개발이 크게 지연될 것이란 우려가 확산했다. 하지만 이들은 약 4개월 만에 개발 현장에 복귀했다. ‘우리가 하지 않으면 전체 개발이 멈춘다’는 사명감이었다.
안 사장은 “동고동락했던 친한 형이 돌아가셔서 자주포를 타는 것만으로도 힘들었지만 리더였던 강신천 박사님이 ‘헌신적으로 일했던 정동수 대리를 생각해서라도 우리가 이 일을 마쳐야 하지 않겠냐’고 다독여주셔서, 서로 손을 꼭 잡고 다시 해보자고 다짐을 했다”고 회고했다. 이렇게 만든 K9 자주포는 해외 9국에 지금까지 약 105억달러(약 14조4800억원)어치가 수출됐다. 단일 무기로 우리 방위산업이 해외에서 올린 가장 큰 성과다.
자주포는 차량 등 다른 기구의 도움 없이 ‘스스로 이동(自走)’해 사격할 수 있는 포(砲)를 뜻한다. 흔히 탱크(Tank)로 부르는 전차가 직접 적(敵) 진지까지 돌파해 공격하는 것과 달리 수십km 떨어진 곳에서 ‘움직이는 대포’ 역할을 한다. 하지만 1990년대 초 기준 우리 군의 화포는 병사들이 끌고 이동을 시켜야 했던 견인 방식이 많았다. 숫자도 적고 적의 공격을 빠르게 피하기도 어려웠다. 미국 기술을 이전받아 만든 자주포가 있었지만 사정거리가 25km 남짓으로 짧았다. 그래서 우리 군은 고(故) 김동수 ADD 본부장(당시 자주포 체계팀장) 지휘 아래 우리 고유 자주포 개발에 착수했다.
하지만 개발 과정도, 수출도 어느 것 하나 녹록지 않았다. 지난 4일 서울 중구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본사에서 만난 안병철(56) 전략부문 사장을 통해 그 이야기를 들어봤다. 그는 삼성항공에서 한화에어로스페이스까지 약 34년간 방위산업에 종사했다. 엔지니어 출신으로 경영자까지 됐다. 입사 직후부터 K9 개발에 투입되는 등 24년을 K9 관련 업무를 맡았다.
◇인명 사고와 엔진 실패 넘어서
K9 자주포는 무게가 47톤(t)이고, 최고 시속 67km로 달린다. 1990년대 초 이런 성능을 내게 하는 동력 장치를 만드는 게 가장 큰 관건이었다고 한다. 국내에선 기술이 없어 개발팀은 초기에는 미국의 850마력짜리 엔진을 가져다 썼다. 하지만 몇 년간 시험 끝에 결국 실패했다. 9600km까지 달릴 수 있는 내구성을 갖춰야 하는데 번번이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고 엔진이 망가지거나, 꺼지기 일쑤였다. 결국 독일의 1000마력짜리 MTU 엔진으로 바꿔서 원점에서 다시 개발을 시작했다. 안 사장은 “실패였어도 동력 장치에 대한 경험을 쌓았기에 독일 엔진으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라며 “포기하지 않고 빠르게 원점에서 다시 시작한 것이 잘한 결정이었다”고 했다.
개발 막바지 눈길에서의 기동이 원활한지 테스트해야 하는데, 1998년 겨울에 눈이 충분히 오지 않아 스키장에서 테스트한 것도 유명한 일화다. 1999년 3월 초 강원 홍천의 대명 비발디 스키장에 부탁해 손님이 없는 밤 11시부터 새벽 5시까지 야간 조명을 켜고 기동훈련을 했다고 한다.
K9은 2001년 튀르키예를 시작으로 폴란드(2014년), 핀란드·인도·노르웨이(2017년), 에스토니아(2018년), 호주(2021년), 이집트(2022년), 루마니아(2024년) 등 9국에 수출됐다. 어느 한순간도 녹록지 않았다고 한다.
2013년 인도 수출 때는 러시아와 일대일 승부를 벌였다. 당시 인도 라자스탄 사막에서 테스트가 실시됐는데, 인도군 장교 지시로 높은 언덕을 오르다 자주포의 궤도(차량 바퀴를 감고 있는 일종의 체인)가 빠져버리는 일이 생겼다. 24시간 내 정해진 거리를 주파해야 하는 시험이었다.
시간이 부족하다고 판단한 안 사장 등 직원 5명은 2톤짜리 궤도를 바퀴에서 빼내는 작업을 시작했다. 도구 하나 없어 망치 하나로 5명이 돌아가면서 밤새 연결 부위를 해체해 궤도를 다시 장착시켰다. 안 사장은 “자주포 뒤편 안테나에 러시아는 자기 나라 국기 달고 테스트하는데, 우리는 인도 국기를 달아 조금이라도 더 마음을 사려고 노력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2001년 튀르키예에 자주포를 수출할 때는, 테스트 중 튀르키예 군인들의 사용 실수로 포탄 자동 공급 장치가 부서지는 일도 있었다. 튀르키예 군인들은 당시 “두 달은 시험 못 하겠다”고 했는데, 당시 안 사장은 사고 발생 후 30시간 만에 현지에 부품을 갖고 도착해 현지인들을 놀라게 했다고 한다. 안 사장은 “그들을 놀라게 할 정도의 정성을 다하지 않으면 같은 유럽의 제품을 사지, 바다 건너 나라의 무기를 사지 않는다”면서 “기술과 성능, 가성비는 기본이고, 판매한 무기를 앞으로 수십 년간 관리, 수리하는 데 문제가 없다는 확신을 심어주는 게 핵심”이라고 했다.
◇무기도 고객 목소리 들어야
한화는 또 2022년 이후 매년 노르웨이와 핀란드 등 K9을 쓰는 나라들과 ‘K9 유저(user) 클럽’도 만들었다. K9을 써본 여러 나라의 군 관계자들이 매년 한자리에 모여 경험과 정비, 교육 노하우 등을 공유하는 것이다. 무기 역시 일반 제품과 마찬가지로 고객들의 생생한 의견을 경청하는 것이 필수라는 점에서 착안한 것이다. K9을 사용하는 각국의 군 관계자들도 미처 몰랐던 자주포 활용 방식을 배워가기도 하고, 한화는 이 자리를 빌려 실제 고객의 사용 후기를 접한다고 한다.
안 사장은 “우리가 비전을 갖고 무기를 계속 업그레이드하고 관리한다는 걸 고객들에게 알리는 효과도 생기고, 이들이 또 우리 무기의 경쟁력을 다른 나라에 자연스럽게 소개하는 것으로 이어질 것”이라며 “다연장로켓 천무나 장갑차 레드백 등 해외로 수출하는 우리 제품이 많아질수록 이런 유저 클럽을 계속 늘려갈 생각”이라고 했다. 안 사장은 “우리 무기에 문제가 있으면 한화가 욕먹고 끝나는 게 아니라 우리나라가 욕먹는다는 점을 직원들에게 강조하고 있다”고 했다. 특히 이 과정에서 김동관 한화 부회장이 직접 나서 “방위산업에서만큼은 우리가 국가대표”라며 많은 격려를 해줬다.
K9은 지난 9월에는 마침내 엔진 국산화에도 성공했다. 핵심 기술인 엔진까지 스스로 만들면서 국산화율을 86%로 높였다. 우리 고유 기술 자주포의 마지막 퍼즐을 완성한 셈이다. 우리 군과 한화는 K9의 무인화에도 도전한다. 현재 5명이 탑승하는데 성능 업그레이드로 포탄 발사 과정의 자동화율을 높여 탑승자를 3명으로 줄이고, 궁극적으로는 무인 운용을 하는 게 목표다.
안 사장은 K방산이 해외에서 올리는 성과는 누구 하나의 공이 아니라 우리 방위산업 생태계 전체가 성장한 결과라고 했다. 그는 “방위산업 수출은 결국 ‘국가 대 국가’의 거래이기 때문에, 기술을 개발하는 ADD와 기업뿐만 아니라 국방부, 방위사업청 등 정부와 우리 군 모두가 늘 한 팀처럼 움직이고 있다”고 했다.
☞K9 자주포
K9 자주포는 현대화된 중형 155㎜ 자주포 시장에서 시장점유율 1위(36%)다. 시속 67㎞로 이동할 수 있고, 약 40㎞ 떨어진 곳에서 적을 타격할 수 있다. 1998년 국방과학연구소와 국내 방산기업이 개발했다. 여름에 무덥고 겨울에 추운 한국의 혹독한 기후, 산악 지형부터 평원 등 다양한 운용 환경에서 작전을 수행할 수 있다. 2001년 튀르키예 수출을 시작으로 올해 루마니아까지 총 9국에 수출됐다. 현재 탄약·장약을 자동으로 장전할 수 있는 개량형 K9A2 자주포로 미 육군의 차세대 자주포 도입 사업에서 독일·영국·미국·이스라엘 방산 기업과 경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