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당선으로 한국 전기차·배터리·태양광, 반도체 업계가 현지 생산 보조금 축소를 우려하며 긴장하는 가운데, 재계와 통상 전문가들 사이에선 트럼프의 미치광이 전략을 주목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치광이 전략(madman’s theory)은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이 소련을 상대로 핵전쟁을 일으킬 것처럼 하면서 베트남 전쟁 종식을 시도하면서 사용한 말이지만, 1기 트럼프 때 트럼프 대통령의 전략을 잘 표현해주는 말로 여겨졌다. 미친사람처럼 과격한 행보를 보일 것처럼 한 뒤에 유리한 쪽으로 협상을 이끌어내는 전략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유세 기간 중에도 과격한 발언을 일삼고, 완전히 실현하기 어려워보이는 공약을 내걸었다. “중국산 물건에 최대 60% 관세를 매기겠다” “반도체 보조금은 10센트도 필요없다. 반도체에 관세를 부과하면 그들이 알아서 미국에 올 것” 등의 발언이다.
이렇게 과격한 정책을 내놓으면 상대가 생각하는 ‘기준점’을 높이는 효과가 있다. ‘기준점 효과’ 역시 협상의 기술을 설명하는 용어로, 일단 자신이 원하는 것보다 훨씬 더 높은 기준을 제시하면, 상대가 협상을 할 때 그 기준으로 협상하게 되는 효과를 노리는 것이다. 예컨대 연봉 협상을 할 때 실제로는 10% 인상도 괜찮다고 생각하지만 “20% 인상해달라”고 요구해 15% 수준에서 협상을 마무리하는 것이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기 당시, 한국과 한미FTA 재협상을 하면서 미치광이 전략을 사용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2017년 트럼프 대통령은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당시 USTR(미 무역대표부) 대표에게 “그들(한국인들)에게 이 사람이 너무 미쳐서 지금 당장이라도 손을 뗄 수 있다고 말하라”고 지시하면서 30일 내에 양보를 받아내라고 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전략에 말려들어가지 말고, 한미 FTA 재협상이나 반도체 보조금 재협상시 우리도 우리에게 유리한 기준점을 제시하면서 협상에 임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장상식 무역협회 동향분석실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처음부터 기준점을 높이 제시한 뒤 일부 양보하는 것처럼 하는 전략을 지난 1기때 이미 봐왔던 만큼, 우리도 이에 대응하는 전략을 짜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 주요 기업들이 진출해 있는 지역이 거의 모두 공화당 우세 지역이라는 점도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LG에너지솔루션과 삼성SDI 등 우리 배터리 업체들이 투자를 했거나 진행중인 미시건·오하이오·인디애나주 등 러스트벨트 뿐 아니라, 조지아·테네시·텍사스주 등 우리 완성차·배터리·태양광·반도체 기업들이 투자한 지역에서 모두 트럼프가 승리했다.
이에 따라 이 지역 일자리에 기여하는 한국 기업들에 대한 우호적인 주민들의 여론을 잘 활용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8월에는 공화당 하원 의원 18명이 하원의장에게 “IRA를 조기 폐지하면 민간 투자를 약화시키고 개발도 중단될 것”이라며 배터리·태양광 등의 현지 생산 보조금인 AMPC를 폐지하지 말 것으로 촉구하기도 했다.
IRA 이후 10억달러(약 1조3643억원) 이상의 대규모 재생에너지 프로젝트 51개 중 43개가 공화당 지역구에서 추진되고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이 보조금을 축소하겠다고 엄포를 놓긴 했지만, 트럼프 대통령 역시 미국 내 제조와 일자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만큼 미국에 투자하는 기업들의 투자 의지를 꺾을만큼 타격을 주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