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조원대 규모로 커진 국내 가정간편식(HMR) 시장에 ‘냉동 바람’이 불고 있다. 냉장, 상온 제품이 즐비한 상황에서 업체들이 앞다퉈 냉동 제품을 내놓고 있는 것이다. 상향 평준화된 HMR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외식, 배달 음식과 비교해도 경쟁력이 있어야 하는 만큼, 소비 기한이 길 뿐 아니라 재료 본연의 맛과 식감까지 유지하는 냉동 제품에 기업들이 총력을 기울인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상온 vs 냉동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지난 2017년 3조4000억원 규모였던 국내 HMR 시장은 2022년에 5조원을 돌파(5조8500억원)했다. 작년에는 시장이 더욱 커져 6조5300억원을 기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HMR 제품을 주 1회 이상 구입하는 가구의 비율도 2012년 13.2%에서 2020년에는 4가구 중 1가구가 넘는 26.4%로 집계됐다.

HMR 시장 초기에 주류는 상온 제품이었다. 요리 준비를 하자니 귀찮고, 나가서 사 먹자니 비용이 부담스러운 사람들이 간단히 한 끼를 때우기 위해 상온 제품을 찾았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냉동 제품은 비좁은 냉동실에 보관을 해야 하고, 해동 과정을 거처야 하는 데다 ‘냉동 식품’에 대한 비호감 인식까지 있어서 HMR 주류에 들어가지 못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상황이 달라졌다. 코로나 기간을 거치며 HMR 제품을 접한 소비자들이 늘어나면서 냉동 제품에 대한 인식이 바뀌기 시작했다. 소비자들의 인식을 바꾼 건 해동 과정을 거쳐야 하는 불편함을 감수할 만큼의 맛 차이였다.

상온 제품과 냉동 제품을 모두 만드는 HMR 기업들은 냉동 제품이 상온 제품에 비해 맛이 월등하다고 입을 모은다. 한 HMR 기업 관계자의 말이다. “상온 제품은 멸균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멸균을 위해서는 고온에서 오래도록 끓여야 한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고기나 야채 등의 원재료가 본연의 맛이나 식감을 잃을 수밖에 없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김영재

냉동 제품은 다르다. 닭갈비 HMR 제품의 경우 집에서 조리하듯 닭고기를 양념에 재운 뒤 곧장 영하 35도 이하로 급속 냉동을 한다. 요리에 필요한 야채 등도 별도로 진공포장해 꽁꽁 얼린다. 집에서는 냉동 제품을 해동한 뒤 볶거나 끓이는 과정만 거치면 요리가 완성되는 식이다. 급속 냉동 기술이 발전하고, 콜드 체인(저온 물류 체계)이 일반화한 것도 냉동 HMR 제품의 확산에 기여했다는 분석이다.

◇확산하는 냉동 HMR

‘냉동=맛없다’는 인식이 점차 옅어지면서 냉동 HMR 제품을 찾는 소비자도 늘고 있다. CJ제일제당은 6일 ‘춘천식 철판닭갈비’와 ‘안동식 간장찜닭’을 출시했다. 저온 숙성한 닭고기와 양배추, 양파, 대파 등의 야채를 꽁꽁 얼린 제품이다. 해동 후 팬에서 7분간 조리하면 완성된다. CJ제일제당의 올해 10월까지 냉동 HMR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95% 성장했다. CJ제일제당 관계자는 “재료 원물의 식감과 풍미를 살릴 수 있는 냉동 제품을 계속 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롯데마트는 지난 9월 제타플렉스 잠실점 내에 냉동 HMR 특화 매장을 선보이기도 했다. 이전과 비교해 냉동 HMR 품목을 70% 늘린 게 특징이다. 롯데마트 관계자는 “냉동 HMR 상품의 테스트베드로 운영한 뒤 냉동 특화 매장을 전점으로 확대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소비자들이 냉동 HMR 제품에 관심을 기울이면서 HMR 시장에선 차별화된 제품 내놓기 경쟁이 펼쳐지고 있다. 간편식 전문 기업 프레시지는 여경래, 최현석 셰프 등과 계약을 체결했고, 현대그린푸드는 정지선, 오세득 셰프 등과 냉동 HMR 제품을 공동 개발했다. 이마트는 유명 중식당 진진과 함께 멘보샤를 개발해 출시했고, 롯데마트는 대구 칠성시장의 편밀밀과 손잡고 납작만두를 출시하기도 했다. 대상 청정원은 낙곱새전골, 해물 누룽지탕, 스키야키 등 집에서 쉽게 해 먹기 어려운 메뉴를 잇따라 냉동 제품으로 내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