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조금 축소, 관세 인상, 친(親)화석연료 등을 내세운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5일(현지 시각) 미국 47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국내 산업계는 바짝 긴장하고 있다. 현 바이든 행정부의 기조와 크게 달라진 경제·산업 정책 방향이 예고됨에 따라 기존 투자·생산 계획 재점검에 나서는 것이다.
특히, 미 정부의 보조금 정책에 호응해 미국 현지 대규모 투자에 나선 반도체·배터리 업계는 위기감이 크다. 삼성전자는 텍사스주 테일러에 건설 중인 반도체 공장이 2026년부터 가동에 들어가면 64억달러(약 8조9000억원)에 이르는 보조금을 받기로 했고, SK하이닉스도 올 4월 인디애나주에서 AI(인공지능) 반도체 공장 건설 등에 투자를 발표하고 연방 보조금만 4억5000만달러(약 6280억원) 수령이 결정된 상태다. 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애초 공화당이 추진한 칩스법에 따른 보조금이라는 점에서 변화가 없을 것으로 보지만, 장담할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전기차와 재생에너지 확대를 추진한 IRA(인플레이션감축법)에 따라 지난해 1분기부터 올 3분기까지 LG에너지솔루션·SK온·삼성SDI 3사를 합쳐 2조6500억원을 웃도는 보조금을 받은 전기차 배터리업계는 앞으로 매년 5조~10조원으로 기대됐던 보조금 혜택이 불투명해졌다.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에 보조금 축소까지 더해지면 충격이 불가피할 것이란 전망이다.
모든 수입품에 대한 10% 보편 관세 추진은 ‘수출 효자’ 자동차 수출에도 적신호다. 글로벌 수요 둔화 속에 올 들어 유일한 증가세인 북미 수출마저 꺾일 수 있기 때문이다. 석유 등 화석연료에 친화적인 트럼프 정부가 출범하면 태양광을 주력으로 하는 한화큐셀 등 국내 재생에너지 기업들도 타격이 예상된다.
다만 미국산(産) 석유·가스 생산이 확대되면 국제 에너지 가격이 안정되는 긍정적인 효과도 기대된다. 조상현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화석연료 투자가 확산하면서 LNG(액화천연가스)선 경쟁력이 강한 국내 조선 산업에 수혜가 기대된다”며 “또 미국이 중국을 집중 공격할 경우 우리 반도체 산업 등은 반사이익을 누릴 수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