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수함은 프로펠러 주변에서 압력 차이 때문에 공기 방울(기포)이 생기고, 이 기포들이 터지면서 소음이 만들어진다. 프로펠러 구조를 알면 기포가 발생하는 형태, 더 나아가 소음까지 유추할 수 있어 철저히 대외비로 유지된다. 지난 11일 한화오션 서울 남대문사무소에서 만난 정한구 기원(생산직 최고 감독자 직급)이 본지 인터뷰 도중 이 회사가 건조한 잠수함 모형 앞에서 “모형이라도 프로펠러는 노출돼선 안 된다”고 했다. /김지호 기자

1991년 대우조선공업(현 한화오션)의 정한구 기능사원은 이름도 생소한 독일 북부 도시 킬(Kiel)에 도착했다. 이 도시는 ‘2차 세계대전’의 전설로 불리던 잠수함 ‘U보트’를 건조한 하데베(HDW) 조선소가 있는 곳이다. 동료들과 도착해, 독일어라고는 벼락치기로 배워 인사말 몇 마디 할 줄 알던 그는 잠수함 공정 기술 훈련에 투입됐다. 1980년대 북한의 잠수함 전력에 위기를 느낀 정부가 독일의 잠수함 기술을 바닥부터 배우자며 보낸 이들이었다. 이 시기에 하데베 조선소에서 정씨처럼 잠수함 기술을 배운 한국 기술자가 150명에 이르렀다. 정씨가 맡은 파트는 잠수함 핵심 장비 소나(sonar·음파탐지기)에서 이어지는 수백 가닥 케이블 설치 작업이었다.

지난 11일 한화오션 서울 남대문사무소에서 만난 정한구(59) 기원(技員·생산직 최고 감독자 직급)은 “시속 200km로 달리는 아우토반보다 킬조선소에서 처음 본 복잡한 잠수함 구조가 몇 배는 더 충격적이었다”고 했다. 창원기계공고 전기과 졸업 후 1983년 당시 선망받는 직장인 조선소에 취업했던 정 기원의 인생은 그 후 잠수함 케이블로 이어졌다. 잠수함에서 소나를 중심으로 뻗어나오는 케이블만 약 600가닥, 평균 길이는 20m에 달한다. 늘어놓으면 12km에 달해, 장보고급 잠수함(길이 56m)을 107번 왕복할 수 있다.

케이블을 오가는 정보는 수만 개에 달한다고 한다. 잠수함의 ‘실핏줄’인 셈이다. 수천 개의 표적을 동시에 탐지하고, 위험도가 높은 수십 개 표적에 대해선 위치, 방향, 속력 등 세부 정보까지 확보한다. 센서·무장·통신·항해 체계가 합쳐진 전투 체계에서 이 정보들을 빠르게 처리하고 적 위치를 파악해야 선제 타격에 나설 수 있다.

정 기원은 이후 독일에서 한국 첫 수입 잠수함으로 생산된 1번함 장보고함 건조에 참여했고, 국내로 돌아와 2번함 이천함 건조에도 참여했다. 이후 잠수함 총 9척 건조 작업에 참여했다. 국내 잠수함 총 21척 중 거의 절반에 그가 엎드린 채 손 한 뼘 겨우 닿아 설치한 케이블이 깔렸다. 잠수함 도전 약 30년 만에 세계 8번째로 3000t급 잠수함을 독자 설계·건조한 ‘K잠수함’처럼, K방산의 전례 없는 도약에는 수십, 수백 명의 ‘정 기능사원’의 땀이 있었다.

◇잠수함 100번 왕복하는 ‘실핏줄’ 케이블

독일 킬조선소에서 정 기원에게 주어진 시간은 6개월이었다. 정 기원은 “독일 기술자들은 도면과 서류만 보여줬지 정작 중요한 케이블을 설치하는 구체적인 노하우는 제대로 보여주지도 않았다”며 “하루 두 시간 정도 현장에서 그들이 일하는 방식을 어깨너머로 볼 수 있었는데, 이때 죽어라고 보면서 손끝 동작 하나 놓치지 않으려고 애쓰던 시절이 떠오른다”고 말했다. 하나라도 더 물어보기 위한 고육책 중 하나가 ‘도시락 하나 더 만들기’였다. 독일인 동료에게 질문하려 해도 일과 중에 좀처럼 틈이 나지 않았다. 그래서 생각해낸 게 독일인 동료를 위한 샌드위치를 준비해 가서 ‘같이 먹자’고 한 뒤 그 시간을 이용해 이것저것 물어보면서 배운 것이다.

현장에서 배울 때 독일 기술자들이 쉽게 포기해버리는 것조차 한국인들은 끝까지 물고 늘어져 해결해 냈던 적도 많았다.

“어떤 케이블은 지름 3cm 안에 가느다란 케이블 120가닥이 들어갑니다. 그런데 고장이 나면 독일인들은 그냥 버립니다. 우리 입장에서는 너무 아까운 거예요. 한국에 돌아가면 우리는 ‘저걸 버릴 수도 없을 것’이라며 불량이 난 가닥을 찾아내 고치고 케이블을 되살리기도 했죠.” 정 기원의 회상이다.

그래픽=양진경

◇세계 8번째 3000t 잠수함 설계·건조

독일, 프랑스 등 잠수함 선진국의 기술 역사는 1860년대 후반 시작됐다. 한국보다 100년 넘게 빨랐다. 한국은 1980년대가 돼서야 독일 잠수정을 모방해 국산 잠수정을 처음 개발했고, 1990년 초 독일 하데베조선소에서 1200t급 잠수함을 처음 수입했다.

그러나 이후 세계 잠수함 역사에서 전례 없는 도약을 했다. 라이선스 방식이지만 한국에서 건조한 국산 1호 잠수함 이천함은 1999년 환태평양 군사훈련(림팩)에서 1만2000t급 미국 퇴역 순양함을 중어뢰 한 발로 격침했다. 당시 한 미국 언론은 “원 샷! 원 히트! 원 싱크!(One Shot! One Hit! One Sink!)”라고 보도했다. 한 번 쏴서, 한 번에 맞추고, 한 번에 격침시켰다는 뜻이다. 이 문구는 현재 해군 잠수함사령부의 전투 구호가 됐다.

독일 조선소에 각각 업무를 나눠 파견됐던 150인은 국내로 돌아와 역(逆)설계 방식으로 국산 잠수함 기술에 도전했다. 설계도면으로 잠수함을 만드는 게 아니라 잠수함을 분해하면서 새로운 설계도를 그려내는 방식이다. 정 기원은 “1990년 초반 독일에는 동남아, 남미 여러 국가에서 한국과 비슷하게 잠수함 기술을 배우러 왔는데 그중 잠수함 독자 설계·건조를 달성한 곳은 한국이 유일하다”고 했다. 해군과 한화오션은 세계 8번째로 3000t급 중형 잠수함(도산안창호급) 독자 설계·건조를 달성한 데 이어 2021년 전력화에 성공했고, 세계 디젤 추진 잠수함 중 처음으로 SLBM(잠수함발사 탄도미사일)도 탑재했다.

내년 정년퇴직을 앞둔 정 기원은 잠수함 건조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도구, 현장 후배들을 위한 매뉴얼을 만들고 있다. “잠수함 특성상 엎드리고 누워 일하는 건 피할 수 없지만 후배들이 조금이라도 더 효율적으로 일하길 바라는 마음”이라고 했다. 그가 2010~2011년 개발한 소나 케이블 선행 작업 도구는 잠수함 내부에서 하는 작업을 줄여 작업 기간을 최대 일주일 당길 수 있다. 4년 전 개발한 레일(rail) 장비는 주전원 공급 장치 옆 60cm 공간에서 혼자서도 60kg에 달하는 장비를 손쉽게 옮길 수 있다. 그가 개발한 도구와 기술이 이제는 현장에선 표준이 됐다고 한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작년 조선 업계 최대 행사 ‘조선해양의 날’에서 우수조선해양인상도 받았다. 정 기원은 “현재 한국 잠수함의 기술력은 배관, 전장, 기장, 선체, 시운전 등 다양한 분야 조직에 저보다 뛰어난 실력자가 많기 때문”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