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2개월간 경영권 분쟁 중인 고려아연이 2조5000억원 규모 일반공모 유상증자를 자진 철회하기로 했다. MBK·영풍 연합과의 지분율 경쟁에서 밀린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측은 지난달 말 ‘국민 기업으로 변화’를 제안하며 ‘유증 카드’를 제시했는데, 시장 반응이 우호적이지 않았던 영향이다.

고려아연은 이날 오전 임시 이사회를 열고 유상증자 추진을 철회하는 안건을 의결했다. 고려아연이 하루 전날인 12일 증권사 애널리스트 대상 컨퍼런스콜에서 유증 관련해 “시장 상황 변화와 투자자분들의 우려, 감독 당국의 정정요구 등을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고 사과하면서 유증 철회는 어느 정도 예견된 결과이기도 했다.

지난달 21일 서울 종로구 고려아연 본사. /연합뉴스

고려아연은 지난달 30일 자사주 소각 후 기준으로, 발행주식 약 20%(보통주 373만2650주)를 주당 67만 원에 일반공모 방식으로 유상증자하겠다고 밝혔다. 이 경우, 기존 주주인 최 회장 측과 MBK·영풍 연합 모두 지분율이 낮아지는 이른바 ‘희석 효과’가 있지만 유증 주식 일부를 우리사주조합에 우선 배정하는 방식으로 최 회장에게 유리한 결과를 도출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난달 최 회장 측이 자사주를 주당 89만원에 공개매수했고, 직후 주당 67만원에 유증하는 것을 두고 금융시장에선 합리적이지 않다는 의견이 우세했다. 이어 금융감독원도 지난 6일 고려아연을 상대로 정정신고서 제출을 요구하면서 제동이 걸렸다.

고려아연 유증이 철회되면서 기존 경영권 분쟁 구도에서 지분 싸움은 다시 이어지게 됐다. 유증 발표 그리고 이날 철회까지 약 2주간 MBK 측이 더 유리한 상황으로 바뀌었다. MBK는 공개매수 이후에도 고려아연 주식을 꾸준히 장내매수해 추가로 1.36%를 확보했다. 지분은 39.83%로, 의결권 있는 지분 기준으로는 약 45%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최 회장 측은 ‘백기사’ 우호 지분을 합해 약 35%인데, 최근 한국투자증권(0,84%) 등 일부 백기사가 지분을 매각하고 빠져나간 것을 감안하면 양측 지분 격차는 더 벌어질 수 있다. 지분 약 7%를 보유한 국민연금이 ‘캐스팅보트’가 될 수 있지만, 최근 유증 논란으로 나빠진 여론을 돌리는 게 관건이라는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