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중소기업의 일·가정 양립 등 중소기업 저출생 관련 문제 해결에도 본격 나서기로 했다. 우리나라 전체 근로자의 81%를 차지하는 중소기업에서 아이를 마음껏 낳을 환경이 되지 않으면 저출생 문제를 극복하기가 불가능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주형환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은 13일 조선일보와 중소기업중앙회가 ‘저출생 위기 극복을 위한 정책 방향’을 주제로 공동 개최한 ‘제5회 중소기업 정책 포럼’ 기조 강연에서 “중소기업의 육아와 출산 부담은 정부가 확실히 책임지고 지원하는 방향으로 가겠다”며 “내년 1월부터 육아휴직을 떠난 중소기업 직원의 대체 인력 지원금을 월 120만원까지 하고, 일·가정 양립 우수 중소기업의 정기 세무조사를 최장 2년 유예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주 부위원장은 “결혼·출산·육아 비용을 줄여주는 정책 지원(policy)도 필요하지만, 아이를 낳는 것이 축복이 될 수 있다는 인식 변화(cultural change)가 없으면 정책은 성공할 수 없다”면서 “독일·이스라엘·일본·미국 등 출산율이 1%대인 선진국을 보면, 일과 가정이 확실히 양립되고, 사회적 돌봄 체계가 구축돼 있고, 가족 친화적 문화 등이 확산돼 있다는 점이 공통점”이라고 했다. 이날 행사에는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 방준오 조선일보 사장, 홍준호 조선일보 발행인, 김상훈 국민의힘 정책위 의장, 이정문 민주당 정책위 수석 부의장 등도 참석했다.
이날 열린 중소기업 정책 포럼은 정부가 일·가정 양립 문화 정착을 위해 중소기업의 참여를 독려하고, 정부가 정책적으로 적극 뒷받침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자리였다. 특히 정부가 지원하겠다고 강조한 것은 세 가지다. 일·가정 양립, 양육 부담 완화, 그리고 주거·결혼·출산 지원이다.
◇중기 육휴 대체 인력 120만원 지원
일·가정 양립 대책의 핵심은 내년 1월부터 육아휴직을 떠난 중소기업 직원의 대체 인력에게 월 120만원까지 지원하는 것이다. 종전에 출산휴가,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에만 적용하는 대체인력 지원금을 육아휴직에도 하고, 금액을 종전 80만원에서 120만원으로 40만원 인상하는 것이다. 주형환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은 “중소기업 평균 임금 286만원 중 120만원을 지원하면 임금의 40%가 되고, 지자체와 대기업들이 출연하는 것을 포함하면 총 180만원 정도 지원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가정 양립 우수 중소기업에 대한 파격적 장려 제도도 시행하기로 했다. 정기 세무조사를 최장 2년 유예하는 정책도 내년 1월부터 시행하기로 했다. 배우자 출산휴가 급여 지급 기간을 5일에서 20일로 늘리고, 유연 근무 장려금을 1인당 월 20만~60만원으로 확대하는 것도 중소기업 지원을 위해 마련한 것이다.
아이를 낳는 것이 부담이 아니라 장점이 되도록 대폭 지원하겠다는 방침도 밝혔다. 양육 부담 완화책으로 3~4세 아이 무상 보육 추진, 초등학생 전 학년 늘봄학교 운영(2026년), 유치원·어린이집 통합과 이용 시간 확대 등을 추진해 가기로 했다.
◇”일하기 좋은 중기 많아져야”
이날 토론에 나선 전문가들은 “일하기 좋은 중소기업이 많아져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이명로 중기중앙회 인력정책본부장은 “중소기업에서 육아휴직은 ‘그림의 떡’인 것이 현실”이라며 “육아휴직을 눈치 보지 않고 마음껏 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려면 ‘대체 인력’이 핵심”이라고 말했다. 그는 “정부가 대체 인력 지원 비용을 늘리고, 비숙련자 위주인 인력 풀도 숙련자로 넓혀야 한다”며 “중소기업에 장기 재직한 청년들에게 청약 기회를 늘리는 등 지원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아이 둘을 키우는 워킹맘인 이봄이(43) 삼익유가공 대표는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눈치 보지 않는 문화’인 것 같다”며 “과거 세대들이 ‘라떼는(나 때는) 한 달 만에 복귀했는데’ 등 ‘라떼는’을 말하기 시작하면 할 수 있는 게 없다. 온 마을이 아이들을 키우는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황경진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연구위원도 “저출생 위기 극복을 위해 중소기업 스스로 일·가정을 양립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기 위해선 외국인 노동자 고용을 대폭 늘릴 수 있도록 제도를 만드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며 “또 합계 출산율이 1963년 2.89명에서 1993년 1.73명으로 떨어졌다가 2021년 1.83명으로 반등한 프랑스의 사례처럼 과감한 경제적 지원 대책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포럼에서는 혁신을 통해 중소기업의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조영태 서울대 인구정책연구센터장은 “인구 감소는 피할 수 없는 구조적 변화이며 중소기업도 이제 과거 해오던 방식에 머물면 살아남을 수 없다”며 “생산성을 높여 저숙련 노동 인력에 의존하지 않는 사업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광천 이노비즈협회장은 “중소기업이 양질 일자리를 창출하도록 돕는 것이 효율적 저출생 대책”이라며 “‘스케일 업’을 통해 중견 기업으로 나아갈 수 있는 혁신 중소기업을 적극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