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의 쌀’로 불리는 한국의 주력 산업 철강이 심각한 위기에 빠졌다. 글로벌 경기 불황 속 중국의 저가 제품 공세, 트럼프 2기의 관세 폭탄 우려, 전기료 인상까지 겹친 ‘삼중고’ 속에 세계 6위 철강 생산국인 한국은 대대적인 구조 조정과 감산(減産)에 돌입했다.

호황기 90%에 육박했던 주요 철강사들의 공장 가동률은 매년 하락을 거듭해 일부 공정은 60~70%대로 떨어졌다. 포스코는 이 같은 상황을 버티지 못하고 19일 포항제철소 1선재공장을 가동 45년 만에 폐쇄했다고 밝혔다. 포스코는 최근 회사가 보유한 중국 유일의 제철소 ‘장자강포항불수강’ 매각에 돌입했다. 현대제철도 최근 포항2공장 폐쇄를 추진한다고 선언했다.

자동차, 조선 등 국내 핵심 산업의 뒤를 단단히 받치며 고품질의 ‘메이드 인 코리아’ 신화를 만든 대표 산업 철강이 침체의 늪에 빠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글로벌 철강 수요가 2023년 역성장을 기록한 데 이어, 2024년과 2025년에도 1%대 성장에 그칠 것”이라고 전망한다.

그래픽=김현국

◇포스코, 4개월 새 공장 2곳 폐쇄

포스코가 19일 문을 닫은 포항제철소 1선재공장은, 지난 7월 포항1제강공장에 이은 두 번째 ‘셧다운(shutdown·폐쇄)’ 사례다. 제강 공정은 쇳물의 불순물을 제거하고 성분을 조정하는 제철소의 핵심 공정이고, 선재 공정은 고로에서 생산된 빌렛(billet·반제품)을 제품화시키는 후공정에 해당한다. 1선재공장은 1979년 문을 연 45년 역사의 생산 기지지만 결국 문을 닫았다. 포스코 측은 “글로벌 철강 공급과잉 현상이 지속되는 데다, 해외 저가 철강재의 공세, 설비 노후화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결정한 것”이라고 밝혔다. 포스코는 지난 10일 발생한 포항제철소 화재로 연산 200만t의 3파이넥스 공장이 멈췄는데, 낮은 공장 가동률 때문에 철강 수급에 전혀 문제가 없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포스코는 현재 적자 사업, 비핵심 자산 125개를 선정해 매각·처분하는 혹독한 구조 조정을 진행하면서 희망퇴직까지 받고 있는 상태다. 이 가운데 1968년 창사 이래 첫 파업 위기에도 맞닥뜨렸다. 사 측과 임금 협상에 실패한 포스코 노조는 오는 25일 쟁의행위를 위한 찬반 투표에 돌입한다. 중앙노동위원회의 조정이 실패할 경우 사상 첫 파업이 벌어질 수 있다.

생산량을 줄이기 위해 ‘장기 특별 보수’에 착수한 국내 2위 철강 기업 현대제철도 내홍을 겪고있다. 충남 당진제철소는 지난 9월부터 3개월간 특별 보수 공사에 착수했고, 인천 공장 역시 지난 2월부터 6개월간 특별 보수를 진행했다. 그간 보수 공사를 반복하며 가동률을 낮췄던 포항2공장은 폐쇄를 추진 중인데 노조의 거센 반발에 부딪힌 상태다. 이곳엔 현대제철 직원 200명과 자회사 현대IMC 소속 직원 200명이 근무 중이다. 노조는 20일 경기도 판교 본사로 올라와 상경 투쟁을 벌인다는 계획이다.

이런 와중에 산업용 전기료 인상까지 겹치면서, 탄소 저감을 위해 친환경 전기로 투자에 나섰던 철강 업계는 부담이 더 커졌다. 전기로(爐)로만 제품을 생산하는 동국제강은 전기료가 저렴한 야간에만 생산하며 원가 줄이기에 나섰다.

한국철강협회에 따르면, 올 1~9월 조강(쇳물) 생산량은 4764만t으로 2010년 이후 14년 만에 최저를 기록했다. 공장 가동률 역시 포스코는 85%, 현대제철은 84.2%, 동국제강은 봉형강·후판이 각각 77.4%와 63.8%를 기록했다. 모두 최근 3년 새 최저 수준이다. 실적도 흔들리고 있다. 포스코의 3분기 철강 부문 영업이익(4380억원)은 전년 동기 대비 39.8% 감소했다. 현대제철(영업이익 515억원)과 동국제강(215억원)도 영업이익이 각각 전년 대비 77.4%, 79.6% 줄었다.

그래픽=김현국

◇‘넥스트 차이나’ 찾는 철강업계

이런 위기의 가장 큰 원인은 세계 최대 철강 생산국이자 소비국인 중국의 부진이다. 건설 경기를 비롯한 중국 내수 침체로 자국에서 과잉생산된 철강이 소비되지 못하자, 저가 제품이 대거 국내로 유입되기 시작한 것이다. 중국 당국은 과잉생산을 해결하기 위해 주요 철강 기업 빅딜을 추진하고 내수 부양책도 발표했지만, 아직 한국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이뿐 아니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이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워 철강 수입 규제를 강화할 가능성도 크다. 업계에선 트럼프 2기 정부가 고율의 관세 부과나 현재 주요국에 부과된 쿼터(수출 할당량)를 조정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미국의 대중(對中) 제재도 더욱 커질 전망이다.

대외 불확실성이 커지자 국내 철강 업체들은 중국 내 생산 기지를 정리하며 현금 확보에 나서고 있다. 현대제철은 최근 중국 충칭, 베이징 법인과 자산을 모두 매각했고, 포스코도 중국 스테인리스강 생산 법인 장자강포항불수강 매각에 돌입했다.

동시에 건설·자동차 등 철강 수요가 커질 것으로 예상되는 신시장 인도로 향하고 있다. 현대제철은 최근 인도 푸네에 연간 23만t 생산이 가능한 스틸서비스센터(SSC)를 착공해, 내년부터 본격 가동에 들어갈 계획이다. 포스코는 현지 1위 철강사 JSW그룹과 손잡고 연 500만t 규모의 일관제철소 건설을 추진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