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의 집권 2기 에너지 분야 내각 진용이 모두 갖춰졌다. 트럼프 정부의 에너지 정책 기본 원칙은 중동 사태 등과 무관하게 안정적으로 석유나 가스 등 에너지원을 확보하겠다는 ‘에너지 자립(energy independence)’ 수준을 넘어, 자국 내에서 생산하는 석유와 가스 등 에너지를 통해 글로벌 에너지 시장의 주도권을 장악하겠다는 것이다. ‘에너지 지배’ ‘에너지 패권(energy dominance)’으로 불린다.
이 정책 방향을 이끌 3대 에너지 핵심 요직은 모두 친(親)화석연료주의자로 채워졌다. 예상보다 강경한 트럼프발 에너지 정책의 예고편으로 평가된다. 특히 미국이 자국에는 값싸게 에너지를 공급하며 자동차 등 산업을 육성하고, 해외에는 LNG(액화천연가스) 등 화석연료 수출을 확대하겠다는 방침을 내세우면서 국내 산업계에도 영향이 예상된다.
◇3대 요직 인선 마무리…에너지 패권 강화
19일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2022년 기준 미국은 천연가스 1조290억㎥를 생산, 2위 러시아의 두 배, 3위 이란의 네 배에 달했다. 원유 생산량도 2023년 말 기준 하루 1331만배럴로 1000만배럴 수준인 러시아, 900만배럴을 밑도는 사우디아라비아를 압도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도 트럼프 당선인은 만족하지 않고, 석유·가스 생산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지난 7월 대선 후보 수락 연설 당시 “이제 우리는 에너지 자립(independent)에서 지배적(dominant)이 될 것”이라고 말한 데 이어 지난 6일 대선 승리 연설에서는 “미국에는 러시아·사우디아라비아보다 더 많은 ‘액체 금’(liquid gold)이 있다”고 말하며 자신감을 나타냈다.
이 같은 친화석연료 기조는 3대 에너지 요직인 국가에너지회의 의장, 에너지부 장관, 환경보호청장 인선에 뚜렷하게 나타났다. 지난 11일 환경보호청(EPA) 청장에 지명된 리 젤딘 전 하원 의원은 10년이 넘는 의원 임기 동안 국립 야생동물 보호구역에서 석유·가스 시추를 막는 법안을 비롯한 각종 친환경 법안에 반대한 인물로 꼽힌다. 그는 지명 직후 인터뷰에서 “미국을 AI(인공지능)의 수도로 만들고, 더 많은 자동차 일자리를 미국으로 가져오기 위해 에너지 패권을 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15일엔 국가에너지회의 의장에 내무부장관 지명자인 더그 버검 노스다코타 주지사가 임명됐다. 노스다코타는 텍사스, 뉴멕시코에 이어 미국 내에서 석유 매장량과 생산량이 3위인 주(州)다. 버검 주지사는 대선 전인 지난 5월 “바이든의 화석연료에 대한 공격을 트럼프가 멈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16일 에너지부 장관에 지명된 석유재벌 크리스 라이트는 미국 2위 수압 파쇄(fracking·프래킹) 전문 기업 리버티에너지의 CEO(최고경영자)로 2019년엔 수압 파쇄법의 무해성을 입증하기 위해 프래킹액을 마셔 화제가 되기도 했다.
업계에서는 젤딘 EPA 청장이 연방 토지에서 셰일가스 시추를 막은 바이든 정부의 규제를 없애고, 라이트 장관이 각종 보조금 정책과 LNG 개발 승인을 통해 친화석연료에 무게를 실어주는 가운데 ‘에너지 차르’ 버검 의장이 바이든 정부 당시 존 케리 기후환경특사, 부시 정부 시절 딕 체니 부통령의 에너지TF와 같이 에너지 산업 전반을 총괄할 것으로 본다. 미국 셰일업체 EQT 출신인 박희준 EIP 자산운용 대표는 “셋 다 업계에서 유명한 화석연료 지지자”라며 “바이든 정부에서 막혔던 파이프라인 건설과 시추 규제가 해결되면서 천연가스 생산량이 급증할 것”이라고 말했다.
◇AI 확대로 SMR은 성장 예상
무탄소 에너지인 SMR(소형모듈원전) 등 원전은 AI의 확산을 발판으로 성장세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특히 라이트 에너지부 장관 지명자는 오픈AI 창업자인 샘 올트먼이 투자한 SMR 업체 오클로에 이사로 참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나라도 트럼프 2기의 에너지 정책 기조 변화를 감안하며 탄소 중립에 속도 조절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진다. 조홍종 단국대 교수는 “우리 여건에 맞는 에너지원을 확대하며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