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 산업 분야에서 기술 경쟁이 치열해지는 가운데 세계 각국은 자국의 산업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규제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특히 환경·노동·지배구조 등 여러 분야의 ‘규제 천국’으로 불리는 유럽에서도 “규제를 타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거세다. 주력이었던 자동차 산업이 중국에 밀려 구조조정에 들어가고, 첨단 기술 분야에서 미국·중국 기업과 경쟁할 만한 기업을 배출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9월 마리오 드라기 전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 “유럽 산업 전략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을 담은 ‘EU 경쟁력의 미래’ 보고서를 낸 것이 대표적이다. 그는 이 보고서에서 “유럽 기업이 M&A(인수합병)를 통해 규모의 경제를 이루지 못하게 제약한 각종 규제가 중국이나 미국의 ‘수퍼스타 기업’과 경쟁하기 어렵게 만들었다”고 했다. 연간 8000억유로(약 1180조원) 규모의 신규 투자도 촉구했다. 또 “전력망 허가 절차가 지나치게 복잡하고 오래 걸린다” “반도체 관련 허가와 투자 장벽을 줄여야 한다” 등의 제안도 쏟아냈다.
변화도 진행 중이다. 전기차를 앞세운 중국 자동차 공세에 주력인 자동차 산업이 부진하자, 유럽에서는 배출 가스 규제 도입 시점을 미루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또 스웨덴은 2018년부터 탄소 배출을 줄이려고 부과해온 항공세를 내년 7월부터 폐지한다. 자국 공항과 항공사의 경쟁력을 떨어뜨린다는 비판이 거세진 탓이다. 환경 규제 등을 두며 탈원전 정책을 유지해온 스위스, 이탈리아는 올 들어 속속 원전 재도입 추진을 공식화했다.
일본은 자국 기업의 자금 조달 기회를 확대하기 위해 은행업 규제 완화를 추진하고 있다. 외국 은행의 경우 일본 내에 지점 등을 둬야만 대출 사업을 할 수 있는 규제를 일부 풀어, 자국 기업이 더 유리한 조건으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는 게 목표다. 중국은 첨단 기술을 개발한 기업이 더 쉽게 상용화에 나설 수 있게 장벽을 낮추고 있다. 차세대 산업 중 하나로 꼽히는 자율주행의 경우 지난 6월 미국 기업인 테슬라에도 중국 내 첨단 자율주행 시범 운행을 승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