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범 한국경제인협회 상근부회장이 21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한국경제 재도약을 위한 주요 기업 사장단 긴급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이날 성명서 발표에는 삼성 박승희 사장, SK 이형희 위원장, 현대자동차 김동욱 부사장, LG 차동석 사장을 비롯한 주요 기업 사장단이 참석했다. /뉴스1

삼성, SK, 현대차, LG 등 주요 기업이 함께 공동으로 성명을 낸 것은 지난 2015년 7월 이후 약 9년 만이다. 당시도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확산 우려 등으로 인한 내수 부진과 중국 증시 폭락 등 대내외 경기 침체 우려가 컸었다. 그만큼 지금 한국 경제 상황이 그 이상으로 위중하다고 기업들이 느끼고 있는 셈이다. 이날 “이대로라면 한국 경제가 저성장의 늪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왔다.

미국에서 트럼프 시대가 다시 열리며 세계적인 보호무역주의가 확산할 조짐이 나타나고, 중국은 저가 제품을 앞세워 우리 주력 산업 대부분에 공세를 펴고 있다. 내수 침체도 깊어지는 중이다.

이런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기업의 과감한 투자와 차별화한 기술 개발 등이 필요하다. 하지만 정치권에서 논의 중인 ‘이사 충실의무 확대’ 등을 포함한 상법 개정안으로 오히려 손발이 더 묶일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이미 국내 다수 기업은 창업주로부터 3~4세로의 승계가 이뤄지며 상속세 부담 등으로 대주주 지분이 줄어들고 있고, 기업 가치에 비해 주가도 낮아 소수 지분을 확보한 사모펀드 등의 경영권 공격에 노출돼있다.

현행법은 이사가 충실 의무를 다해야 할 대상으로 ‘회사’만을 규정하고 있는데, 정치권에서는 충실 의무 대상을 ‘모든 주주’로 넓혀야 한다고 주장한다. 소액주주의 권익을 강화한다는 취지다.

하지만 기업들은 신기술 등에 투자하거나 인수합병(M&A)에 나설 경우 단기적으로는 손실이 나 주가도 떨어질 수 있는데, 이사 의무가 확대되면 주가가 떨어졌다는 이유로 소액주주로부터 소송이나 배임 혐의로 형사 고발 당하는 일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또 해외 자본 등 외부 세력의 기업 경영 개입 가능성도 커진다고 했다. 이미 행동주의 펀드로 꼽히는 미국 돌턴인베스트먼트와 영국 팰리서캐피털이 최근 각각 한국콜마의 지주사인 콜마홀딩스와 SK하이닉스의 최대 주주 SK스퀘어 지분을 일부 확보한 후 경영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했다.

☞상법 개정안의 이사 충실 의무 확대

상법 382조의3은 ‘이사는 회사를 위하여 그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하여야 한다’는 법적 의무를 명시하고 있다. 정치권에선 소액 주주 권리를 강화한다는 취지로 충실 의무 대상을 ‘회사’ 대신 ‘모든 주주’로 넓히는 상법 개정을 추진 중이다. 그러나 기업들은 외국 투자자, 기관 투자자, 개인 투자자, 투기 자본이 섞인 투자자 등 다양한 주주가 있어 현실적으로 ‘모든 주주’에게 좋은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우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