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공무원이던 황혜경씨는 1998년 영국 해외연수 도중 교통사고를 당했다. 세 번에 걸친 큰 수술을 받았지만 결국 한쪽 다리를 잃었다. 귀국 후 우리나라의 열악한 재활 치료 환경을 직접 경험한 그는 자신보다 어려운 상황에 놓인 사람들을 위해 재활 병원을 짓겠다고 결심했다. 그렇게 2005년 푸르메재단이 탄생했고, 황씨가 보험사와 소송 끝에 받은 보상금 10억원이 재단의 마중물이 됐다.
HD현대1%나눔재단은 제2회 HD현대아너상 대상에 20년간 장애인 재활·자립을 지원한 비영리기관 ‘푸르메재단’을 선정했다고 24일 밝혔다. HD현대아너상은 어려운 이웃을 위해 헌신하는 이들을 기리기 위해 지난해 처음 제정됐다. 대상 상금은 1억5000만원이다. 푸르메재단은 상금 전액을 장애인 사업 연구와 직원 역량 강화에 쓸 계획이다.
◇사고 보상금 보태 재단 사업
황씨와 남편 백경학씨는 사고 후 3년 가량 치료를 위해 유럽에 머물렀다. 이후 돌아온 한국은 유럽과 달리 장애인이 치료받기도, 생활하기도 힘든 나라였다. 부부는 장애인 재활 병원을 만들기로 결심하고 재단 설립을 준비했다.
초기 자금은 남편 백씨가 2001년 말 다니던 회사에 사표를 내고 만든 맥주 회사 ‘옥토버훼스트’ 지분 일부와, 아내 황씨가 8년 간의 소송 끝에 받은 교통사고 피해보상금에서 나왔다. 이후 2007년 민간 최초의 장애인 전용 치과 ‘푸르메치과’, 2016년 어린이 전문 ‘넥슨어린이재활병원’, 2020년 발달장애 청년 일터 ‘푸르메소셜팜’ 등 다양한 장애인 지원 사업을 해왔다.
황씨는 지난 5월 이화여대에서 ‘자랑스러운 이화인’ 상을 받으며 “영국에서 독일 병원으로 이송됐을 때 한국 신부님과 교민들이 와서 눈물을 흘리자 딸이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저희 엄마 다리는 곧 자랄 거예요’라고 말했다”며 “아이 말처럼 다리가 푸르메재단을 통해 다시 살아나 어린이 치료 병원, 발달장애인이 일하는 농장과 카페로 다시 자라났음을 믿게 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국내 최초 어린이재활병원 세워
푸르메재단은 이후 수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성장했다. 벤처 기업인인 이철재 퀴드디멘션스 창업자가 대표적이다. 그는 미국 유학 중 교통사고로 척수 장애를 얻었다. 그리고 우연한 기회에 푸르메재단을 알게돼 10억원을 기부했다.
이후 언론에 난 기사를 보고 넥슨 창업자인 고(故) 김정주 회장이 더 큰 기부를 했다. 2016년 서울 상암동에 문을 연 국내 최초의 어린이 재활병원 ‘푸르메재단 넥슨어린이재활병원’ 건립에 200억원을 보탰다. HD현대1%나눔재단은 “어린이재활병원 설립 과정에서 1만여 시민과 500여 기업 후원이 이뤄지며 우리 사회에 나눔·기부 문화를 확산시켰다”고 했다. 넥슨어린이재활병원은 현재까지 51만명 넘는 어린이 환자를 도왔다.
푸르메재단은 2020년에 발달장애 청년 일터인 ‘푸르메소셜팜’도 설립, 발달장애 청년을 위한 일자리 창출에 주력하고 있다. 스마트 농장을 기반으로 한 장애인 재활·자립 시설로 현재 50여 명의 발달장애 청년들이 근무하고 있다. HD현대1%나눔재단은 “이처럼 장애인이 우리 사회에서 평범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지원해온 점을 대상 선정 과정에서 높게 평가했다”고 했다.
한편 HD현대아너상 최우수상 단체 부문은 미혼모 지원·상담 단체인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개인 부문과 ‘1%나눔상’은 30년간 소외 계층을 위해 신발 수선과 이발 봉사를 해온 김병록씨가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