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2기 행정부가 예고한 관세 장벽과 보호무역주의 강화로 해운 물동량이 장기적으로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대중 ‘폭탄 관세’가 본격화하기 전 올해 3분기(7~9월) 밀어내기 수출이 급증하면서 ‘반짝 특수’를 누렸지만, 트럼프 취임(2025년 1월 20일) 이후에는 해운 수요가 반대로 급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해운업계는 “장기적으로 트럼프발(發) 해운 불황에 대비해야 한다”며 긴장하고 있다. 이미 한 차례 경험한 적도 있다. 앞서 트럼프 1기 행정부(2017~2021년) 때도 미·중 무역 분쟁으로 글로벌 컨테이너선 물동량이 빠르게 둔화한 바 있다. 특히 최근 주요 해운사들이 대규모 선박을 발주했는데, 컨테이너선 공급 과잉까지 닥친다면 불황 골이 더 깊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단기 호황 반갑지만 불확실성 커진 해운업계
최근 아시아에서 인도를 향하는 컨테이너선 운임이 한 달 새 두 배로 급등했다. 중국에서 미국으로 ‘밀어내기 수출’이 급증하면서 인도 항로에 투입될 선박까지 싹쓸이해 갔기 때문이다. 주요 항로인 중국 상하이항(港)에서 인도 서부 뭄바이 나바쉐바항까지 가는 컨테이너선 스폿(Spot·비정기 단기 운송 계약) 운임은 1TEU(1TEU는 20피트 컨테이너 1개)당 800~900달러에서 1600~1900달러까지 올랐다.
해운업계는 당장은 중국발 밀어내기 물량이 늘면서 단기 호황을 맞고 있다. 지난 7월 미국의 대중 수입 물동량은 102만TEU로 월간 기준 역대 1위를 기록했다. 제조업 완제품은 주로 컨테이너선으로 운반하기 때문에 해운업 호황으로 이어진다. 해운 컨설팅 기업 씨인텔리전스에 따르면, 올해 3분기 주요 해운사의 영업이익은 약 170억6000만달러(약 23조8800억원)로 전년 동기 대비 600% 증가했다. 트럼프 재선을 염두에 두고 무역 장벽이 강화되기 전 대규모 물량이 쏟아졌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아시아~미주 노선을 주력으로 하는 HMM도 올 3분기에만 영업이익 1조4614억원을 기록했다.
그러나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무역 장벽 강화가 기정사실로 되면서 향후 물동량 감소에 대한 우려도 커졌다. 특히 트럼프는 중국산 물품에 대해서는 최대 60% 폭탄 관세를 예고한 터라, 장기적으로 미·중 무역 물동량이 급감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 1기 때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관세 인상을 앞두고 반짝 밀어내기 수출이 이어진 뒤 물동량이 줄어 해운업 침체로 이어졌다. 한국수출입은행에 따르면, 트럼프 정부 1년 차였던 2017년 글로벌 컨테이너 물동량 증가율은 5.7%였지만 이후 미·중 무역 분쟁이 본격화하자 2018년 4.4%, 2019년 2.2%로 떨어졌다. 양종서 수은 해외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무역 분쟁 대상이 되는 상품은 주로 완제품이기 때문에 이를 운송하는 컨테이너선이 가장 큰 영향을 받는다”고 설명했다.
◇예견된 공급 과잉 리스크도 대처해야
해운업계는 트럼프 리스크에 이어 ‘공급 과잉’에도 대처해야 한다. 올해 글로벌 신규 선복량(배에 실을 수 있는 화물량) 공급량은 역대 최대 수준인 약 305만TEU였다. 팬데믹 때 현금을 쌓은 해운사들이 ‘규모의 경제’ 경쟁을 펼치면서 대규모로 신규 선박을 발주, 투입했고, 향후 몇 년간 이 같은 흐름이 이어진다. 업계에선 2022~2025년 연평균 선복량은 7% 늘어나지만, 컨테이너 물동량은 1% 증가하는 공급 과잉이 벌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과거에는 노후 선박을 폐선하면서 선복량을 줄여 대처하기도 했지만, 최근 ‘새 선박’이 대거 늘면서 이 같은 조치도 어렵다. 최근 운임 인상 요인이었던 ‘홍해 사태’도 해결되면 장거리 우회 노선 운항이 줄어 운임도 떨어질 수 있다. 한국무역협회 옥웅기 연구원은 “내년 미국과 중국 모두 경제성장이 올해보다 둔화하면서 해운 수요 증가도 제한적일 것”이라며 “컨테이너 해운 시장에서도 구조적으로 공급 과잉이 부각되면서 해상 운임 하방 압력이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