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음식 프랜차이즈 A매장에서는 탕수육을 1만6800원에 판다. 하지만 배달앱에서는 같은 메뉴를 6%(1000원) 비싼 1만7800원에 팔고 있었다. B식당에서는 고기국수가 1만원이지만, 배달앱에 나온 같은 메뉴의 가격은 20% 비싼 1만2000원이었다. 샌드위치 프랜차이즈 C매장의 갈릭베이컨치즈샌드위치는 매장에서는 5400원, 배달 가격은 26% 비싼 6800원이었다. 소비자들 사이에서 “샌드위치가 탕수육보다 배달하기 힘든 품목이냐” “요즘 배달 메뉴 가격이 아무런 원칙도 없이 오르고 있다” 같은 불만이 나오고 있다.

코로나 시대를 거치며 식음료 배달 수요가 급증한 사이 각종 프랜차이즈 본사와 음식점 업주들이 배달앱 등에 지불하는 수수료·배달비 부담을 이유로 앞다퉈 ‘이중가격제’를 도입하고 있다. 매장 가격보다 배달하는 메뉴 가격을 더 비싸게 책정해 판매하는 것이다. 1300여 프랜차이즈 브랜드가 속한 한국프랜차이즈산업협회도 최근 전체 매출에서 배달 비중이 가장 큰 치킨 브랜드를 대상으로 이중가격제 도입을 추진하고 나섰다.

외식업계에서 ‘같은 메뉴=같은 가격’이라는 등식을 깨는 이중가격제가 확산하고 있지만, 가격 책정 방식에 아무런 원칙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26일 본지가 서울에서 이중가격제를 도입한 음식점 가격을 무작위로 비교한 결과, 매장 가격과 배달 가격의 차이는 적게는 4.9%에서 많게는 25.9%로 천차만별이었다. 같은 매장에서도 메뉴에 따라 배달 가격의 인상 폭이 다른 경우도 많았다.

이중가격제를 도입한 매장이 급속도로 늘고 있지만, 배달앱에서 배달 메뉴 가격과 매장 가격이 다르다는 걸 소비자에게 공지하는 음식점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지난 6개월 동안 배달앱과 입점업체들이 ‘상생협의체’라는 이름으로 정부가 깔아준 판 위에서 논의했지만, 애꿎은 소비자들의 피해가 계속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영애 인천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공정거래위원회가 나서서 이중가격제 공지에 대한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픽=백형선

이중가격제 확산에도 정작 비용을 지불하는 소비자들은 매장 가격과 배달 메뉴 가격이 다르다는 걸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중가격제를 도입한 음식점이 배달 가격은 매장 판매가보다 더 비싸다는 사실을 모호하게 알리거나, 아예 알리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소비자원을 중심으로 이중가격제를 제대로 알리라는 권고를 하지만,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틈을 이용해 업체들이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배달 메뉴 더 비싼 거 아십니까?

기존에도 학생, 군경, 입주사 할인 등 특정 소비자를 상대로 한 이중가격제가 존재했다. 커피 전문점과 일부 음식점은 포장해가는 경우 가격을 할인해주는 경우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최근 확산 중인 이중가격제는 배달을 선택할 경우 매장 가격보다 더 많은 비용을 내는 구조다. 배달 비용과 별개로 방문 대신 배달을 택했다는 이유로 소비자가 같은 메뉴에 더 많은 비용을 내야 하는 것이다.

버거 프랜차이즈 롯데리아, KFC, 파파이스, 프랭크버거 등은 올 들어 이중가격제를 본격적으로 도입했다. 메가MGC커피, 컴포즈커피 등 유명 커피 프랜차이즈와 일반 음식점들도 앞다퉈 배달 가격을 더 비싸게 책정하기 시작했다. 롯데리아 더블한우 불고기버거 세트가 매장에서는 1만4500원인데, 배달 메뉴는 9% 비싼 1만5800원에 파는 식이다. 정현식 프랜차이즈산업협회장은 배달앱의 횡포를 지적하며 “배달 수수료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가격을) 모두 같게 인상하든지, 이중가격을 선택하는 방법뿐”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배달앱에서 배달용과 매장용 메뉴 가격 차이를 명확하게 고지한 곳은 극히 일부다. 맥도날드는 배달의민족 주문창에서 ‘배달 시 가격은 매장과 상이하다’라고 공지하고 있다. KFC는 배달의민족과 쿠팡이츠에서 ‘딜리버리 전용 판매가를 별도로 운영하고 있다’고 공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부분의 일반 음식점과 커피 프랜차이즈 등은 배달 메뉴 가격을 매장 가격보다 비싸게 받으면서도 공지조차 하지 않고 있다.

소비자들이 가격 차이도 제대로 모른 채 배달 메뉴를 시키고 있는 건 이중가격 공지가 의무가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소비자원은 지금까지 네 차례에 걸쳐 일찌감치 이중가격제를 도입한 버거 업체를 시작으로 배달앱, 프랜차이즈산업협회, 외식업중앙회 등에 이중가격제와 관련한 권고를 했다. 업체에는 주문 과정에서 이중가격제를 명확하게 표시하도록 권고하고, 배달앱과 협회 등에는 입점업체와 회원사에 이중가격제 교육과 홍보활동을 강화해달라고 권고한 것이다.

하지만 현실을 보면 ‘소 귀에 경 읽기’다. 소비자원 관계자는 “가격은 시장에서 정해지고, 독점이나 담합 행위가 있지 않는 이상 원칙적으로 가격결정권은 판매자에게 있기 때문에 이중가격제 공지를 하라고 강하게 압박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명예교수는 “프랜차이즈 업체나 음식점주는 이중가격 도입을 소비자에게 알리고, 메뉴마다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도 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美·英은 생필품까지 이중가격제

이중가격제는 한국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미국, 영국, 호주 등에서는 이전부터 배달과 매장 가격을 다르게 책정했다. 하지만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며 배달 메뉴 가격과 매장 가격의 차이가 점점 벌어지면서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미국 조사업체 고든 해스켓 리서치 어드바이저스가 지난해 미국의 25개 유명 레스토랑 브랜드의 배달 메뉴 가격을 조사한 결과 방문해서 먹을 때보다 평균 20% 이상 비싼 것으로 나타났다. 버거 브랜드 웬디스의 매장 가격과 배달 메뉴 가격의 차이는 29%, 맥도날드는 27%로 조사됐다. 미국 패스트푸드 체인인 ‘누들스’의 경우 2020년 매장 가격과 배달 메뉴의 가격 차이가 10%였는데, 작년 그 차이를 25%로 늘렸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많은 레스토랑들이 팬데믹을 거치며 배달 수요가 늘면서 배달 메뉴 가격을 올리기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이중가격제 적용 업종이 외식업을 넘어 생필품 시장까지 확산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실제 미국과 영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영국 식료품 체인 아이슬란드(Iceland)는 화이트브레드를 1파운드에 파는데, 배달앱 저스트이트, 우버이츠 등에서는 2파운드에 팔고 있다. 영국의 수퍼마켓 체인 세인즈버리에서는 바나나를 1.75파운드에 파는데, 배달앱에선 6% 비싸게 판매하고 있다. 지난 2월 미국 CNBC가 뉴욕의 한 마트에서 쇼핑을 하는 것과 배달을 시키는 것을 비교한 결과 같은 품목을 구입하는 데 매장에서는 152.68달러인 반면 배달용 금액은 177.99달러로 나와 있었다고 한다. 매장에서 1.99달러에 파는 계란이 배달로 주문하면 2.29달러인 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