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취임 첫날(2025년 1월 20일) 멕시코와 캐나다에 25%의 관세를 새로 부과하고, 중국에 10% 관세를 추가로 매기겠다고 공표하면서 한국 수출 기업들도 본격적인 ‘트럼프 쇼크’에 직면하게 됐다.
더욱이 기아, 삼성전자 등 국내 주요 기업들은 트럼프 1기 때 강도 높게 진행된 대중 무역 제재를 피해 미국과 무관세 협정을 맺은 멕시코에 대거 생산 기지를 확충했다. 일종의 관세 장벽 우회로를 찾았던 셈이다. 그런데 트럼프 2기는 멕시코도 관세 폭탄의 예외가 아니라는 점을 공식화했다. 멕시코에 주요 기업들이 몰리고 미국 수출이 늘면서 멕시코 상대 무역 수지가 악화했기 때문이다.
트럼프의 추가 관세 폭탄도 유력해 수출 중심 한국 경제도 경고등이 본격화됐다. 산업계에선 트럼프의 관세 폭탄이 멕시코, 캐나다, 중국에 이어 광범위하게 적용될 경우 한국의 수출액이 최대 448억달러(약 62조7500억원) 감소할 수 있다고 전망한다.
◇멕시코 거점 확대한 車·가전 고심
수출 중심 한국 경제에서 또 다른 변수는 멕시코 ‘니어쇼어링’ 위기다. 니어쇼어링은 기업이 최종 소비 시장과 가까운 곳으로 생산 거점을 옮기는 전략이다. 과거 생산비를 절감하기 위해 중국, 인도, 베트남으로 공장을 이전했던 ‘오프쇼어링’, 이후 이 공장들을 다시 자국으로 가져오는 ‘리쇼어링’의 중간 전략이다. 특히 멕시코는 트럼프 1기였던 2017~2018년 대중 무역 제재가 본격화면서 2020년 이후 니어쇼어링 최대 수혜국으로 떠올랐다. 북미, 중남미 중앙에 자리 잡은 지리적 장점과 더불어 미국·멕시코·캐나다무역협정(USMCA)에 따라 멕시코 제품은 대미 수출 때 관세 혜택까지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시기 삼성, LG, 현대차그룹, 포스코, CJ 등 대기업이 기존 멕시코 공장을 증설하거나 신규 공장을 추가하면서 투자를 확대했다. 2020년 1100만달러에 그쳤던 한국의 대(對) 멕시코 투자가 2022년 3억9600만달러로 급증했고, 현재 2000여 기업이 진출해 있다.
무(無)관세를 전제로 멕시코 투자를 확대한 기업들이 우선 비상이 걸렸다. 특히 대미 수출 거점으로 멕시코 투자를 확대한 자동차 업계가 타격이 클 것으로 예상한다. 현대차그룹에 따르면 작년 멕시코 기아 공장이 생산한 25만2000대 중 60%가 넘는 약 15만5000대가 미국으로 수출됐다. 기아는 멕시코 누에보레온주에서 연간 생산능력 40만대 규모 공장을 가동하고 있고, 부품 기업도 따라 진출했다. 이항구 자동차융합기술원장은 “관세 25%가 붙으면 사실상 미국으로 수출은 포기해야 한다고 봐야 한다”며 “북미 지역 자동차 공급망 전체가 바뀔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북미·중남미 생산 거점을 멕시코에 두고 미국 수출 기지로 삼고 있다. 포스코 멕시코 법인은 자동차용 철강재를 주로 멕시코에서 소화하지만 이 중 일부를 미국에도 수출하고 있다. 캐나다에 미국 기업과 합작 형태로 배터리 공장을 추진하는 한국 기업들도 영향권이다.
◇高관세 현실화 땐 韓 경제동맹 어필해야
트럼프의 관세 인상이 현실화하면 멕시코 대신 미국에서 생산 확대를 검토할 수 있다. 현대차그룹이 지난달부터 가동을 시작한 연산 30만대 규모 조지아 메타플랜트, LG전자 테네시 공장 등에서 멕시코 물량을 대체할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의 높은 인건비와 부족한 제조 인력이 발목을 잡을 수 있다.
관세를 한 번에 높이지 않고 1~4차에 나눠 부과하고 중간 협상을 통해 계속 조정한 트럼프 1기 사례를 감안해, 국내 산업계가 더 적극적으로 방어 전략을 짜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지난 7일 보고서를 통해 “트럼프 1기 사례를 감안하면 2기 행정부는 관세 부과 전후 협상 여지를 남기면서 조정할 가능성이 있다”며 “한국은 트럼프 행정부가 납득할 수 있는 논리를 개발하고, 다른 국가에 비해 돋보이는 수준의 대미 투자 실적을 레버리지로 삼아 트럼프 행정부의 태도 변화를 유도해야 한다”고 했다.
☞美·멕시코·캐나다 협정(USMCA)
트럼프 1기 당시 미국, 멕시코, 캐나다 3국이 1992년 체결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보완해 새로 맺은 자유무역협정. 무관세 혜택을 받기 위해 3국 내에서 생산한 부품과 재료를 더 많이 쓰도록 원산지 규정을 NAFTA 대비 강화했다. 2018년 타결됐으며, 2020년 7월부터 발효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