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반도체 업체는 제품을 출하하기 전 반드시 테스트를 통해 불량품을 걸러낸다. 품질 낮은 제품을 납품하면 고객사 신뢰를 잃게 되는 만큼 가장 중요한 공정 중 하나다. 1978년 부산에서 창업한 리노공업은 이 공정에서 사용하는 가느다란 테스트 핀과, 이 핀을 장착하는 소켓을 만드는 회사다. 핀이 반도체와 직접 접촉해 전기신호를 주고받으며 성능을 검사한다.
리노공업은 일명 ‘리노핀’을 앞세워 작년에만 2500억원 넘는 매출을 올렸다. 반도체가 소형화하면서 테스트 핀도 작아지는 추세인데 리노공업은 현재 머리카락보다 가는 0.075㎜ 크기의 테스트 핀을 만들 수 있다. 이는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으로, 삼성전자·SK하이닉스·퀄컴 등 내로라하는 반도체 기업 1000여 사를 고객으로 둔 비결이다.
부산에서 공고를 졸업한 이채윤(74) 대표는 1978년 단돈 30만원을 들고 리노공업을 창업했다. 처음 차린 건 비닐봉지 회사. 이후 헤드폰 부품, 카메라 케이스 등 변신을 거듭했다. 그러다 마산수출자유지역을 오가다 눈에 들어온 게 인쇄회로기판(PCB) 테스트 핀이었다. 처음엔 일본 업체에서 PCB 테스트 핀을 떼다 팔다 자체 생산에 성공했다. 그는 “일본 공장에 갈 때마다 곁눈질로 무슨 기계를 쓰는지, 어떻게 만드는지 익히고 직원들에게 밥을 사며 넌지시 묻기도 했다”며 “다른 회사는 보통 물품 대금을 3개월 후에 주는데 우리는 일주일 만에 지급하면서 신뢰를 쌓은 게 효과가 좋았다”고 했다.
현재 리노공업의 주력인 반도체 테스트 핀 리노핀과 소켓은 삼성의 제안으로 시작해 1995년 국산화에 성공했다. 일본 제품을 뜯어보며 공부하고, 인근 대학 교수를 찾아가 설계 원리도 배웠다. 얇은 핀을 생산하는 데 필수적인 현미경도 수억원을 들여 사왔다. 이 대표는 “삼성에 시제품을 가져다 줬는데 처음엔 성능이 좋지 않았다”며 “우리 직원이 당시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핀이 어떤 식으로 쓰이는지 볼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했다”고 했다. 그렇게 직원을 6개월간 파견까지 보낸 끝에 지금의 리노핀이 탄생했다.
2000년대 들어선 해외 진출을 시작했다. 첫 도전지는 반도체 업체가 즐비한 대만. 당시 수출 계약을 따내려고 직원과 대만 곳곳을 돌던 이 대표는 한국으로 돌아와 설계 담당 직원을 유학 보냈다. 그는 “엔지니어가 영어를 못해 중간에 통역을 둬야 하니 고객사에 제품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더라”고 했다. 1년 후 돌아온 2명의 직원은 이후 수출 협상의 일등 공신이 됐고, 대만에 이어 미국으로까지 수출 문을 넓힐 수 있었다.
리노공업은 수출할 때 후발 업체가 주로 쓰는 ‘저가 전략’을 쓰지 않았다. 이 대표는 “가격은 우리가 비싸지만 대신 오래 쓰고 검사 성능도 좋다는 ‘품질’을 내세웠고 그게 세계시장에 통했다”고 했다. 각 기업이 원하는 형태의 맞춤형 핀과 소켓을 빠르게 생산해 납품하는 능력도 인정받고 있다. 이 대표는 “고대역폭 메모리(HBM) 등 새로운 유형의 반도체가 계속 나오는 만큼 꾸준히 신제품을 개발해 사업을 확대해 나가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