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이웅열 코오롱그룹 명예회장이 ‘인보사(골관절염 유전자 치료제 인보사케이주) 성분 조작 의혹’ 사건의 1심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스1

골관절염 유전자 치료제 ‘인보사케이주(인보사)’의 성분을 조작해 정부 허가를 받아 판매했다는 혐의로 기소된 코오롱그룹 이웅열(68) 명예회장 등 임직원 4명과 법인에 대해 법원이 29일 1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이 2020년 7월 7개 혐의를 적용해 기소한 지 4년 4개월 만이다. 비슷한 혐의로 먼저 기소돼 재판을 받은 코오롱생명과학 상무 조모씨 등 임원 2명도 작년 10월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무죄 선고를 받았다.

인보사는 코오롱그룹 계열사인 코오롱티슈진이 세계 최초로 개발한 골관절염 유전자 치료제다. 1999년부터 약 18년간 2000억원 이상을 투입해 2017년 11월 국내에서 세계 최초로 판매를 시작했다. 하지만 2019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3차 임상 중 이 약의 핵심 성분명이 코오롱 측이 신고한 것과 다르다는 게 알려지면서 문제가 생겼다. 국내 허가 과정에서 식약처에 주성분을 ‘연골 유래 세포’라고 보고했지만, 실제는 ‘신장 유래 세포’였던 것이다. 식약처는 허가를 취소하고 코오롱 측을 형사 고발했고, 이후 국내에서 판매·생산이 모두 중단되면서 법적 분쟁이 시작됐다.

4년 넘게 이 사건을 심리한 서울중앙지법 형사24부(재판장 최경서)는 이날 코오롱 측이 고의로 성분을 속이거나, 성분이 다르다는 것을 알면서도 은폐한 것이 아니라고 판단하며 주요 혐의에 대해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또 이 회장이 2015년 FDA의 ‘임상 중단 명령’ 등을 일부러 숨긴 채 상장을 하거나, 투자를 유치한 혐의도 인정하지 않았다. “인보사에 내려진 명령은 임상 중단이 아닌 ‘임상 보류 명령’이었고 개발에 차질을 주지도 않았다”고 했다.

그래픽=김하경

코오롱은 앞서 식약처의 허가 취소가 부당하다며 낸 행정소송에서는 주성분명이 허가를 받을 때와 달라졌다는 등의 이유로 1·2심에서 모두 패소했다. 또 사건 발생 초기 인보사를 구입해 투약한 환자와 투자자 등이 낸 700억원대 손해배상 청구 소송 등 민사 분쟁도 진행 중이다. 그러나 법원은 이 사건이 형사적인 책임을 물을 일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과학에 대한 사법의 통제’란 화두를 판결문을 통해 던졌다. 이 사건이 불거진 이후 5년 동안 미국과 한국의 대응이 확연하게 달랐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한국에서 식약처 고발 이후 코오롱그룹은 1년간의 검찰 수사와, 4년 4개월간의 재판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이웅열 명예회장과 30명 안팎의 코오롱 직원들은 피고인이나 참고인, 증인 등으로 검찰에서 조사받거나 법정에 서야 했다. 본안 재판만 83번 열렸다. 식약처의 허가 취소 이후 인보사는 한국에서 판매는 물론이고 생산·개발 절차는 모두 중단돼 지금까지 재개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미국 FDA는 달랐다. 당시 한국에서 문제가 불거진 직후인 2019년 5월 FDA는 3차 임상 진행을 보류했지만, 약 1년 만인 2020년 4월 다시 재개 결정을 내린 것이다. 3차 임상은 신약 개발의 최종 단계로, 실제 환자들을 대상으로 약효를 시험하는 절차가 포함돼 있다.

재판부는 이에 대해 “2019년 이후 미국 FDA는 주성분 착오 원인이 무엇이고, 사람에 미치는 영향이 어떠한 지를 과학적 관점에서 검토한 후 임상 3상 실험을 승인했다”며 “반면 한국은 식약처가 허가를 취소한 후 지금까지 행정 소송이 진행 중이고, 관련된 직원들에 대한 형사 재판도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재판부는 또 “만약 1심 법원과 (대법원의) 최종 판단이 같다면 수년에 걸쳐 막대한 인원이 투입된 이번 소송의 의미는 무엇인지, 과학에 대한 사법적 통제는 어떻게 진행돼야 하는지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재계 등에 따르면 수사와 재판이 이어지는 동안 코오롱그룹은 타격이 작지 않았다. 약의 핵심 성분을 고의로 조작한 혐의로 자기 나라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는 게 알려지면서, 외부 투자 유치에 어려움이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직원들은 장기간 이어진 수사와 재판으로 제품 개발 등 업무 전반에 차질이 컸고, 이웅열 명예회장에게 구속영장이 청구되고 징역 10년이 구형되면서 그룹 브랜드도 타격을 받았다고 한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사람 생명에 관한 문제인 만큼 신중해야 하고 엄격해야 하는 건 분명하지만, 이제 막 성장하기 시작한 바이오 산업에서 장기간 수사와 재판을 받게 하는 사례가 늘면 개발·투자 등이 위축돼 산업 전체가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인보사 사태

코오롱이 개발한 인보사는 2017년 7월 세계 최초로 판매 허가를 받은 무릎 관절염 대상 유전자 치료제다. 무릎 연골에 주사하면 연골이 자라고 통증을 줄일 수 있다. 연골세포를 담은 주사액(1액)과 연골세포 성장을 돕는 유전자(TGF-β1) 주사액(2액)을 섞어 투여한다.

하지만 2019년 미국에서 임상 3상 도중 2액의 성분이 코오롱 측이 제출한 연골 세포가 아니라, 신장에서 유래한 세포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어떤 과정에서 신장 유래 세포가 들어갔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코오롱 측은 연구개발 과정에서 착오가 있었지만, 동일한 성분으로 임상을 진행한 만큼 효능과 안전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한국 식약처는 종양 유발 가능성을 들어 판매 허가를 취소했다. 반면 미국 FDA는 안전성에 문제가 없다며 2020년 임상 재개를 허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