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는 한번 만들면 사라지기는커녕, 세부 조항에 달린 ‘~를’ ‘~가’ 같은 조사 하나 바꾸는 것조차 어렵습니다. 규제를 완화했다가 일이 터지면 모두 자기 책임이 되니까 아무도 총대 메지 않는거죠.”(한 경제단체 담당자)
경영계에선 매 정부와 국회마다 기업을 옥죄는 규제가 계속 신설되지만, 정작 기업이 요구하는 규제 완화나 지원 법안은 감감무소식이라고 말한다. 미국 등 주요 경쟁국들이 ‘법인세 인하 경쟁’을 하는 동안, 한국은 법인세 최고세율을 낮추는 데 무려 14년이 걸렸다. 지난 2009년 최고세율을 25%에서 22%로 낮췄지만, 문재인 정부 시절 이를 25%로 다시 인상했고, 지난해 간신히 1%포인트 낮춰 24%가 됐다.
2000년 이후 줄곧 유지되고 있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최고 수준의 상속세율을 인하해달라는 경영계 요구도 여태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한국의 직계비속에 대한 상속세 최고세율은 50%로 OECD 38국 중 2위 수준이다. 최대 주주 주식 할증(20%)까지 포함하면 60%로 1위다. 과도한 상속세 때문에 가업 승계를 포기하거나, 싱가포르 등 해외 이전을 검토하는 기업인들이 속출하고 있지만 꿈쩍도 않는 것이다.
적대적 M&A(인수합병) 등 경영권 공격에 대응할 수 있도록 최대 주주나 경영진에게 더 많은 의결권을 주는 ‘차등의결권’, 기존 주주가 시세보다 싸게 주식을 매입할 수 있는 ‘포이즌 필(Poison pill·신주인수선택권)’ 등 재계가 20년 넘게 꾸준히 도입을 요구해온 현안들도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한국 경제의 핵심 산업인 반도체 분야만 해도 직접 보조금, 송전망 부족과 같은 시급한 법안들이 산적해 있지만 제대로 논의되지 않고, 상법 개정안처럼 기업들의 운신 폭을 좁히는 법안들만 계속 화두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