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를 1% 저성장의 늪에 빠져들게 한 또 하나의 핵심 요소는 쏟아지는 규제다. 노무현 정부부터 문재인 정부까지 지난 19년간 네 정부는 보수·진보를 가리지 않고 집권 기간 내내 규제를 쌓아왔다.

그래픽=양인성

3일 본지가 대통령 소속 규제개혁위원회가 매년 발간하는 규제 개혁 백서를 분석해 보니, 2003년 출범한 노무현 정부부터 2021년 문재인 정부까지 네 정부가 정부 주도 입법이나 시행령, 규칙 등으로 새로 도입하거나 강화한 규제가 총 2만2196건에 달했다. 평균적으로 매년 1168건, 하루 3.2건꼴이다.

연평균 가장 많은 규제가 나온 것은 박근혜 정부(1215건) 때였고, 문재인 정부와 이명박 정부(각 1158건)가 그다음, 노무현 정부(1152건) 순이었다. 현 정권인 윤석열 정부는 작년까지 2년간 연평균 716건의 규제를 새로 도입하거나 강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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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에서도 규제 법안을 매년 수백 건씩 쏟아내고 있다. 법제처가 분석해 정보 포털에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16~2021년 6년간 국회의원이 발의한 규제 법안은 5414건으로, 연평균 902건에 달했다. 특히 일정 규모 이상의 대기업을 집중적으로 옥죄는 차별 규제가 더 늘어나는 추세다.

역대 정부는 출범 초기 미사여구를 동원해 규제와의 전쟁을 선포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정권 후반으로 갈수록, ‘규제 본능’을 억누르지 못했다. 노무현 정부의 경우 집권 첫해인 2003년에는 947건의 규제를 새로 만들거나 강화했지만, 2007년에는 1259건까지 늘었다. 이명박 정부도 출범 초기 도입 규제 수가 935건에서 2012년에는 1598건으로 증가했다. 박근혜 정부와 문재인 정부도 비슷한 패턴을 보였다.

◇신산업 혁신 막는 규제들

역대 정권과 국회가 여야를 가리지 않고 내놓은 규제는 오롯이 기업의 부담이 되고 있다. 신산업이 대표적이다. 지난 2013년 3월 해킹으로 국내 주요 은행 시스템이 마비되자 금융 당국은 금융기관의 내부망과 외부망을 분리하는 이른바 ‘망 분리’ 규제를 2014년 도입했다. 금융기관 안에서 외부 서버나 클라우드 서비스를 제한적으로만 이용할 수밖에 없어 챗GPT 같은 생성형 AI(인공지능)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빅데이터 기반 서비스도 도입이 어렵다.

그래픽=양인성

바이오 산업에서는 법차손 규정에 대한 논란이 크다. 회계상 법인세 비용 차감 전 계속사업 손실이 자본의 50%를 초과한 경우를 가리키는데, 3년간 2회 이상 법차손이 발생하면 상장사를 ‘관리 종목’으로 지정한다. 길면 10년씩 신약 개발에 투자해야 하는 바이오 산업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대표적 규제로 꼽힌다.

자율 주행의 경우 정부가 일정 구역에서만 테스트를 할 수 있도록 지나치게 규제하는 것이 문제로 꼽힌다. 도로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상황에 대한 데이터 수집이 어려워 기업들은 글로벌 경쟁사들에 비해 기술력을 키우는 데 한계가 있다는 말이 나온다. 방산에선 무기 수출을 하려면 기술, 부품을 세부 항목으로 나눠 건건이 담당 부서의 검토를 받아야 해 경쟁국 대비 ‘속도전’에서 뒤처질 우려가 크다.

◇정권마다 추가되는 ‘대기업 차별 규제’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하는 대기업들의 발목을 잡는 차별 규제도 문제다. 이사회 구성, 출자 제한부터 사업 인수 금지, 지분 취득 제한, 의무 휴업 등 일정 규모 이상의 기업들에만 차등 적용하는 규제들이다. 중소기업이 성장해 자산 총액 5000억원을 넘으면 기존에 57개였던 규제가 3배 이상인 183개로 늘어나고, 상호 출자 제한 기업 집단이 되면 최대 159개의 규제가 다시 추가된다. 재계 관계자는 “중소기업이 성장하면 더 많은 규제를 맞닥뜨리다 보니, 회사 규모 키우기를 꺼리는 ‘피터팬 증후군’ 같은 문제가 발생한다”고 했다.

본지가 정권마다 신설된 ‘대기업 차별 규제’를 조사한 결과, 전두환 정부(6개)를 시작으로 노태우 정부(21개), 김영삼 정부(7개), 김대중 정부(56개), 노무현 정부(37개), 이명박 정부(58개), 박근혜 정부(33개) 등 차별 규제가 지속적으로 신설돼 왔다. 특히 지난 2017년 출범한 문재인 정부 때는 대기업 차별 규제가 122개 신설돼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