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김하경·midjourney

서울 마포구에 사는 이모(40)씨는 지난달 온라인 쇼핑몰에서 4차례 옷을 주문했다. 이씨는 “구입할 때 어울릴지 확신이 없었는데, 무료 반품이 가능하다고 해서 일단 주문하고, 절반은 반품했다”고 말했다. 서울 도심 지역에서 일하는 택배 기사 A씨는 지난 9일 350건의 택배 물량을 처리했다. 이 중 30건은 반품 택배 수거였다.

작년 우리나라 연간 택배 물량은 2020년보다 52.9% 늘어난 51억5785만개였다. 1인당 연간 100.4건의 택배를 이용한 ‘1인 100택배 시대’가 된 것이다. 1인 100택배 시대의 뒤에는 반품의 증가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내 대형 택배사 관계자는 “전체 택배 물량의 10%가 반품 택배”라고 말했다. 작년 택배 물량에 대입해보면 한 해 5억건이 넘는 반품 택배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패션 업체 관계자는 “특히 연말 모임이 많은 12월은 옷을 구입한 뒤 반품하는 사람이 많은 ‘반품 성수기’”라며 “실적이 안 좋은 상황에서 반품률이 높아지지 않기만을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반품 물량이 늘어나면서 반품 처리 전문 대행 업체, 판매자의 반품 비용을 보상해주는 보험 상품 등 ‘반품 비즈니스’도 등장했다.

그래픽=김하경

◇반품이 늘고 있다

반품 자체는 새로운 게 아니다. 달라진 건 이전에는 반품을 할 경우 왕복 택배비를 소비자가 내야 하는 등 ‘장벽’이 있었지만, 최근 업체들이 소비자를 의식해 앞다퉈 무료 반품 서비스를 도입하고 있는 것이다. 네이버 쇼핑은 배송 유형에서 ‘무료 교환 반품’을 택할 수 있도록 해놨다. 이 항목을 선택하자 의류, 식품, 문구용품 등 종류를 불문하고 무료 교환 반품 가능 상품이 끝도 없이 나왔다. 포기김치 상품도 “맛없으면 1회에 한해 무료 반품”이라고 홍보하고 있었다.

무료 반품 서비스를 일찌감치 도입한 홈쇼핑 업계에서는 반품률이 늘고 있다. 국민의힘 김소희 의원이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현대홈쇼핑의 반품률은 2020년 10.3%에서 2021년 10.7%, 2022년 13%로 늘었고, 작년에는 14%로 집계됐다. GS샵, CJ온스타일, 홈앤쇼핑 등도 2021~2023년 3년 동안 매년 반품률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0월 대한상의는 국내 택배 산업 현황 및 성장 요인 보고서에서 “반품 증가가 택배 물동량 증가에 영향을 미쳤다”며 “쿠팡, 네이버 등 대형 이커머스 업체 외에도 무료 반품 서비스를 시행하는 업체가 늘어나면서 반품 규모도 함께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이커머스 업체 관계자는 “무료 반품 서비스가 일반화하면서 ‘일단 주문하고 반품하면 된다’는 인식이 자리 잡게 됐다”며 “전체 주문량의 20~30%는 반품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반품 증가는 한국에서만 벌어지는 현상은 아니다. 지난 6일 전미소매협회(NRF)는 올해 미국 소매시장에서 반품되는 제품이 8900억달러(약 1275조원)에 달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체 상품의 17%가 반품된다는 것이다. 작년에는 반품률이 15%였고, 총액은 7430억달러(약 1064조원)였는데 모두 늘어났다. 미국 반품 관리 업체 옵토로는 “한달에 2회 이상 반품하는 소비자가 작년에는 전체의 29%였는데 올해는 46%로 늘었다”고 밝혔다.

◇반품 비즈니스도 등장

반품이 늘면서 업체들은 비용 부담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소비자가 반품을 신청하면 업체는 회수해 검수하는 작업을 거쳐야 한다. 이후 반품 물품의 상태를 등급별로 분류한다. 이커머스 업체 관계자는 “반품을 수거하고 검수하는 데 사람의 손이 많이 간다”며 “배송비가 5000원이라면 반품 처리 비용은 1.5배가 든다”고 말했다. 쿠팡은 지난 4월 월 회원비를 4990원에서 7890원으로 인상했는데, 업계에서는 그 이유 중 하나로 반품 비용의 증가를 꼽는다. 당시 쿠팡 측은 1인당 연간 반품 횟수가 32회, 1회당 반품 비용 5000원을 적용하면 연간 16만원 비용이 발생하고 있어 무료 반품을 지속하려면 불가피한 회비 인상 요인이 있다는 설명을 내놓기도 했다. 최근 쿠팡은 내년 1월 6일부터는 오픈 마켓(판매자로 등록만 하면 제품을 팔 수 있는 플랫폼)에서 로켓 배송 시 매달 반품이 20건을 초과할 경우, 초과 물량에 대해 판매자에게 비용을 부과하기로 했다.

반품 시장이 커지면서 반품 비즈니스도 잇따라 등장하고 있다. 쿠팡, 11번가, 롯데홈쇼핑 등은 반품 상품을 판매하는 ‘반품 마켓’을 운영하고 있다. 홈플러스는 전국 30개 점포에서 반품, 전시 제품을 할인해 판매하는 매장을 운영 중이다. 네이버페이는 반품 보험 서비스 ‘반품 안심 케어’를 도입했다. 판매자가 주문 건당 40~490원을 내면 반품 배송비 7000원을 보상해주는 보험 상품이다. 2022년 5월 서비스 시작 후 반품 안심 케어가 적용된 상품의 누적 판매 건수는 1억건을 넘었다.

판매자를 대신해 반품 제품을 수거하고 검수한 뒤 폐기하거나 판매자나 중고 판매점으로 보내주는 전문 업체도 국내외에서 등장하고 있다. 코트라 미국 애틀랜타 무역관에 따르면 미국의 반품 관리 업체 매출은 최근 5년 동안 연평균 9.7% 성장했다. 미국의 대표적인 반품 관리 서비스 회사 ‘해피 리턴’은 시장에서 가치를 인정받아 2021년 페이팔에 인수됐다, 작년에는 UPS에 재인수되기도 했다. 이커머스 업계 관계자는 “울며 겨자 먹기로 업체들이 무료 반품 서비스를 도입하고 있지만, 비용 부담에 결국은 소비자가격에 반품 비용이 녹아들 수밖에 없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