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가 루마니아에서 1조2000억원 규모 ‘원전 리모델링’ 계약을 따냈다. 지난 7월 24조원 규모 체코 두코바니 신규 원전 우선 협상 대상자 선정, 지난달 10조원 규모 불가리아 코즐로두이 원전 건설 계약에 이어 조(兆) 단위 수주가 이어지는 것이다.

리모델링 앞둔 루마니아 체르나보다 원전 한국수력원자력은 19일 루마니아 체르나보다 원전 1호기 설비 개선 사업에서 약 1조2000억원 규모의 최종 계약을 따냈다고 밝혔다. 사진은 체르나보다 원전 모습(오른쪽이 1호기). /한국수력원자력

한국수력원자력은 19일 루마니아 수도 부쿠레슈티 루마니아원자력공사(SNN)에서 ‘체르나보다 1호기 설비 개선 사업’ 최종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캐나다 캔두 에너지, 이탈리아 안살도 뉴클리어와 지난해 10월 해당 사업의 공동 수행을 위한 컨소시엄을 구성한 데 이어 1년여 만에 계약에 성공했다. 전체 사업비는 19억유로(약 2조8000억원)로 한수원 몫은 40% 수준인 약 1조2000억원이다.

한수원은 내년 2월 공사에 착수, 약 5년 5개월 동안 설비 개선 공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원전 유지 보수를 담당하는 한전KPS를 비롯해 설비 제작사인 두산에너빌리티와 원전 사업 경험이 많은 현대건설, 삼성물산 등 국내 기업들은 한수원의 협력 업체로 시공·건설에 참여한다. 문주현 단국대 교수는 “낙수 효과가 중소·중견 원전 업체까지 확산하며 원전 생태계 회복에 도움이 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그래픽=김하경

한수원 컨소시엄이 이날 계약한 원전 설비 개선 사업은 1996년 상업운전을 시작한 706MW(메가와트)급 중수로형 체르나보다 1호기를 앞으로 30년 더 운전하기 위한 프로젝트다. 오는 2027년 운전 허가 만료를 앞두고 사업자인 루마니아원자력공사(SNN)는 지난해 5월 규제 당국으로부터 30년 계속운전 허가를 받았다. 이에 2030년 재가동을 목표로 계약을 추진해왔다.

◇40년 넘게 쌓은 노하우 발판

한수원은 체르나보다 1호기 건설 당시 참여했던 캐나다 캔두 에너지(옛 AECL), 이탈리아 안살도 뉴클리어와 지난해 10월 컨소시엄을 구성하며 사실상 수주를 예약했다. 이른바 캔두형이라 불리는 중수로의 원천기술을 가진 캔두 에너지는 원자로(압력관) 설계, 안살도 뉴클리어는 터빈 설계와 기자재 공급을 담당한다. 한수원은 압력관 등 주기기와 보조기기 교체를 비롯해 방사성 폐기물 저장시설과 같은 인프라 건설을 맡는다. 한수원 관계자는 “컨소시엄은 지난 1년여간 SNN측과 사업비, 계약 조건, 공정 등에 대해 매월 대면회의를 가지며 협상을 진행했다”고 했다.

1983년부터 가동에 들어간 월성 1호기를 시작으로 현재 가동 중인 2·3·4호기까지 한수원이 경북 경주 월성원전에서 40년 이상 쌓은 중수로형 원전 건설·운영 경험이 이번 수주의 바탕이 됐다는 평가다. 문주현 교수는 “중수로 설비 개선 사업은 기존 설비를 제거하고 신규 설비로 교체해야 해 신규 원전 건설보다 더 까다롭다”며 “우리나라는 월성 1호기 때 이 같은 작업을 성공적으로 마치며 실력을 인정받았다”고 말했다.

‘원전 리모델링’의 핵심인 압력관 교체 작업에 캔두형 원전의 원조인 캐나다는 46개월(2008~2012년), 아르헨티나는 37개월(2015~2019년)이 걸린 것과 달리 한수원은 2009년 월성 1호기 설비 개선 작업 당시 27개월 만에 마무리했다. 노동석 에너지정보문화재단 센터장은 “이번 루마니아 설비 개선 사업에 참여한 경험은 월성 2~4호기 등 국내 중수로 원전의 계속운전 추진에도 기술적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추가 원전 사업 수주 기대

체코 원전 2기 건설과 같은 신규 원전 사업은 물론 원전 정비 분야에서 수천억~수조원 규모 수주가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AI(인공지능) 확산과 전기차 보급 등에 따라 세계 각국이 발전 능력 확보에 나서는 상황에서 기존 원전의 정비 수요도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계약을 통해 해외 원전 ‘리모델링’ 프로젝트에 처음으로 참여하게 되면서 원전 수출 방식이 다각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루마니아는 1호기에 이어 2007년부터 가동을 시작한 2호기도 최초 가동 연한이 끝난 뒤, 재가동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한수원은 지난해 6월엔 2600억원 규모 체르나보다 1·2호기의 삼중수소제거설비 건설 사업을 수주했고, 2022년엔 러시아가 수주한 이집트 엘다바 원전의 시공·기자재 공급을 위한 25억달러 규모 계약을 맺기도 했다.

정동욱 중앙대 교수는 “루마니아, 아르헨티나 등 중수로 원전 운영국에서 추가 수주가 기대된다”며 “아랍에미리트(UAE)와 체코에 수출하며 실력을 입증 받은 경수로는 물론, 중수로에서도 원조인 캐나다까지 우리에게 손을 내밀 정도로 뛰어난 우리의 실력을 입증한 것”이라고 말했다.

☞중수로

경수(輕水·보통의 물)보다 질량이 무거운 중수(重水)를 감속재와 냉각재로 사용하는 원자로. 저농축 우라늄을 연료로 쓰는 경수로와 달리 천연 우라늄을 사용한다. 원전 가동 중에도 연료를 교체할 수 있다. 원조인 캐나다를 비롯해 우리나라, 루마니아, 아르헨티나, 중국, 인도, 파키스탄이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