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이 다가오면서 정·재계에서 ‘트럼프 인맥 찾기’가 한창이다. 전통적으로 대미(對美) 소통과 관련해 국내 재계에선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류진 풍산그룹 회장 등과 삼성, 현대차와 같은 굴지의 그룹이 언급됐다. 하지만 최근 재계 11위 신세계그룹의 정용진 회장이 주목받고 있다. 정 회장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장남인 트럼프 주니어와 끈끈한 관계를 이어오고 있기 때문이다.
정 회장은 지난 16일(현지 시각) 트럼프 당선인의 자택이 있는 미국 플로리다주 마러라고 리조트에 도착해 트럼프 주니어와 식사를 하는 등 함께 시간을 보냈다. 정 회장이 내년 1월 20일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그룹 규모에 비해 미국 사업 비중이 크다고 할 수 없는 신세계그룹의 정용진 회장이 어떻게 트럼프 주니어와 인맥을 쌓아왔는지 관심이 커지고 있다.
◇‘브로’라고 부르는 사이
정 회장 주변 인물들과 재계 인사들의 취재를 종합하면, 정 회장의 마러라고 리조트 방문은 지난 10월 트럼프 주니어의 초청을 받았기 때문이다. 정 회장은 2박 3일 동안 마러라고 리조트에 머무는데, 17~18일 이틀 동안 트럼프 주니어가 정 회장을 직접 챙길 정도로 각별한 사이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 회장과 트럼프 주니어는 지난 2015년 국내 한 언론의 행사장에서 처음 만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두 사람이 본격적으로 교분을 쌓은 건 5년 전부터다. 이름을 밝힐 수 없는 미국 유력 인사가 정 회장과 트럼프 주니어의 만남을 주선했다. 한인이 아닌 이 인사를 통해 두 사람은 미국 뉴욕에서 만남을 갖게 됐고, 급속도로 친해지게 됐다.
정 회장과 트럼프 주니어는 평소에도 보안 메신저인 시그널을 통해 수시로 연락을 주고받는다고 한다. 정 회장과 트럼프 주니어가 서로 편하게 YJ(정 회장 이름 이니셜), 형제를 뜻하는 브로(bro, brother의 준말)라고 부를 정도로 가까운 사이라고 지인들은 말한다.
1968년생인 정 회장과 1977년생인 트럼프 주니어가 국적, 나이 차이와 상관 없이 친해지게 된 건 종교적인 이유가 컸다고 한다. 두 사람이 독실한 개신교 신자라는 공통점을 갖고 서로에 대해 공감을 하게 됐다는 것이다.
트럼프 주니어는 올해 세 차례 한국을 찾았는데, 방한할 때마다 정 회장을 만났다고 한다. 트럼프 주니어는 지난 8월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제2회 빌드업코리아 행사에 참석하기도 했다. 기독교 세계관과 자유민주주의, 자유시장경제 등을 핵심 가치로 삼아 설립된 보수 청년 단체 빌드업코리아가 기획한 행사다. 이 행사에 연사로 참석한 트럼프 주니어는 “지난 4월에 한국에 왔을 때 김민아 빌드업코리아 대표가 수차례 요청을 해서 (참석을) 거절하기 힘들었다”며 “당시 김 대표와 YJ(정용진)가 환대해준 것을 잊을 수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트럼프 주니어는 이 행사 이후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간증을 했다.
◇정 회장, 트럼프 일가와 두루 친분
지난달 윤석열 대통령이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와 20국(G20)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페루와 브라질을 방문하면서 정부는 트럼프 당선인과의 회동을 추진했다. 이때 정부는 미국 정·재계와 인맥이 닿아있는 국내 주요 그룹에도 협조를 요청했는데, 신세계그룹도 그중 하나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정 회장은 트럼프 주니어뿐 아니라 트럼프 일가를 두루 대면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월 정 회장은 자기 인스타그램에 트럼프 주니어, 그의 약혼녀 킴벌리 길포일과 함께 찍은 사진을 올렸다. 사진 설명에는 “트럼프 주니어 만나서 이런저런 얘기하고 왔음”이라고 적었다. 폭스뉴스 앵커 출신 변호사인 길포일은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주그리스 미국 대사로 지명됐다.
정 회장은 비슷한 시기에 트럼프 당선인의 맏사위로 1기 행정부에서 백악관 선임고문으로 일했던 재러드 쿠슈너와 함께 찍은 사진을 올리고, “키가 엄청 크신 유명하신 분 만났음”이라고 썼다. 트럼프 당선인은 최근 프랑스 대사에 쿠슈너의 아버지이자 사돈인 찰스 쿠슈너를 인선했다. 재계 관계자는 “정 회장이 비슷한 시기에 트럼프 당선인(당시 전 대통령 신분)도 만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정 회장은 지난 2019년 트럼프 당시 대통령이 방한했을 때 신세계그룹 부회장 자격으로 재계 인사들과 간담회에 참석하기도 했다. 재계 관계자는 “어지러운 시기에 트럼프 2기 출범이 코앞에 다가오면서 트럼프 일가와 가까운 정 회장의 역할을 기대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