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가 수출선에 선적되고 있는 모습. 기사 내용과 무관한 사진. /신현종 기자

현재 국내 산업계는 대기업, 중견, 중소기업을 가릴 것 없이 위기감이 크다. 수출 중심의 대기업은 보호무역주의를 앞세운 미국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에 따른 급격한 정책 변화 가능성이 가장 큰 걱정이다. 트럼프 당선인은 후보 시절 모든 수입품에 10~20%의 보편 관세를, 중국산 제품에는 60%의 추가 관세를 매기겠다고 밝히는 등 대대적인 정책 변화를 예고한 상태다. 이미 석유화학, 철강, 자동차 등 주요 업종에서 경고등이 들어온 상황인데 트럼프의 ‘폭탄 정책’까지 더해질까 봐 긴장하고 있다. 내수 침체도 장기화하면서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 관련 각종 경제 수치는 올 들어 ‘역대 최악’을 경신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이런 현실에서 트럼프 쇼크마저 실현된다면 더 버틸 기업이 어디 있겠느냐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그래픽=이철원

◇위기에 빠진 주력 산업들

중국발 공급과잉과 고유가, 고환율 등은 국내 주력 산업들을 옥죄고 있는 핵심 요인으로 꼽힌다. 특히 국내 10대 수출 산업에 속하는 철강, 석유화학 업계가 심각하다.

철강은 글로벌 경기 불황 속에서 중국의 저가 제품 공세, 트럼프 2기의 관세 폭탄 우려, 전기료 인상까지 겹치며 이미 대대적인 구조 조정과 감산(減産)에 돌입한 상태다. 철강 업계는 정부 차원의 보조금 지원, 산업용 전기 요금 인하 등의 긴급 대책을 요구하고 있지만 과연 실현 될지는 미지수다.

구조 조정이 시급한 석유화학 업계는 정부 ‘공백’으로 자칫 체질 개선을 위한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오는 23일 정부가 산업경쟁력강화 관계장관회의를 열고 자율 구조 조정을 핵심으로 한 ‘석유화학업계 경쟁력 강화 방안’을 발표할 예정이지만 업계에선 기대가 크지 않다. 탄핵 정국에서 정부의 주도권이 크게 약화한 데다, 구조 조정의 핵심이 될 ‘빅딜’도 현실적인 어려움에 부딪힐 것이란 얘기다.

그래픽=이철원

그나마 선방해오던 자동차 산업마저 상승세가 확연하게 꺾이고 있다. 올해 자동차 내수는 약 164만대로 2013년 이후 11년 만에 최저치가 예상된다. 수출 역시 전년 대비 1% 증가하는 데 그치고, 내년엔 올해 대비 3.1% 줄어들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둔화)의 여파가 가장 큰 원인이다.

배터리 업계도 미국 정부의 보조금을 바라보고 조(兆) 단위 대규모 투자를 쏟아부었다가 트럼프 2기 정부가 전기차 보조금 삭감과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혜택 등을 축소할 것이란 불확실성에 시달리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정치권이 싸울 때 싸우더라도 경제를 살리기 위해 여야정 협의체 같은 뭔가는 해야 할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그래픽=이철원

◇”이대로면 생존 어렵다”

고물가로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으면서 내수 중심의 중소·중견기업, 소상공인들의 상황은 더욱 절박하다. 경남 양산에서 30년 넘게 완구 업체를 운영해 온 이모(63)씨는 “불황에다 환율까지 뛰면서 재료 수입 비용이 늘어나 창업 이래 최고의 위기”라며 “내년 생산량은 올해보다 30% 줄일 것”이라고 말했다.

각종 통계들은 일제히 ‘불경기’를 가리키고 있다. 도소매업 재고율은 올 1분기(1~3월)에 2020년 통계 작성 이후 최고치인 109.8(100이 기준)을 기록했다. 2분기와 3분기에도 이와 비슷한 109.7, 108.3을 각각 기록했다. 패션 업계 관계자는 “상당수 생산량을 백화점이 아닌 아웃렛으로 보내고, 할인 폭을 높이는 데도 좀처럼 재고가 줄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픽=송윤혜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올해 1~10월 전국 17개 시·도 중 12곳의 외식업 폐업 건수는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소상공인연합회가 최근 소상공인 163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서도, 응답자의 90.1%가 연말 경기 전망에 대해 ‘부정적’이라고 답하고 있다. 노민선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중소·중견 기업들이 겨우겨우 버텨온 체력이 크게 소진되면서, 이젠 탈진 상태로 가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