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인공지능) 열풍이 거세지면서 전 세계적으로 전력 수요가 급격히 늘고 있다. 한국 전력기기 산업도 이 추세에 힘입어 차세대 성장 산업으로 각광받고 있다. 효성중공업, HD현대일렉트릭, LS일렉트릭 같은 대기업이 미국과 유럽 등지에 초고압 변압기를 공급해 굵직굵직한 수주 실적을 올리는가 하면, 국내 중소·중견 기업들도 탄탄한 기술력과 품질을 검증받은 중·고압 변압기를 생산·납품함으로써 해외 수출 시장을 확대하고 있다.
동미전기공업은 지난 52년 동안 변압기를 전문적으로 생산, 해외 수출 시장을 확대해온 작지만 강한 기업이다. 주상 변압기와 지상 설치형 변압기를 비롯한 76만V 이하의 중·고압 변압기를 주로 만들어왔다. 미국과 필리핀을 시작으로, 인도네시아·몽골·사우디·과테말라 등에 변압기 납품 수주 계약을 따내며 수출액을 키워왔다. 2019년엔 102억원 정도였던 매출은 매년 두 자릿수 성장을 거듭해 올해는 800억원을 돌파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5년 동안 매출이 8배가량 늘어났다. 수출 비율도 80%가 넘는다.
동미전기공업은 1972년 경기도 화성에서 형제인 고(故) 한두성, 한두석 전 공동대표가 함께 창업했다. 평안남도 출신인 이들은 6·25전쟁이 터지자 남한으로 피란을 왔고, 1960년대부터 모터 수리 일을 해왔다. 1970년대 초 한국 경제가 급성장하고 전력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자 두 창업자는 ‘동미기업주식회사’란 이름으로 회사를 열고 변압기를 비롯한 전력기기 수리·제조일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1976년 한국산업표준(KS) 인증을 받았고, 한국전력에 변압기를 납품하기 시작, 핵심 협력사로 자리 잡았다. 이후 코레일의 KTX 경부선 구간과 포스코, SK하이닉스 등에도 변압기를 납품하며 몸집을 키워나갔다.
수출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2000년대 중반부터다. 창업자 한두석 전 대표의 아들 한상욱(50)씨는 회사 해외영업팀장으로 일할 때부터 수출 확대를 위해 뛰어왔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를 겪으며 해외 시장을 뚫어야만 회사가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한 그가 필리핀과 미국령 괌, 해외 주둔 미군 기지, 인도네시아, 몽골, 사우디, 과테말라, 케냐 등지까지 직접 다니며 변압기 수출 계약을 따냈다는 것이다. 한 대표는 “당시 국내 중소기업들엔 생소한 아프리카 모잠비크까지 날아가 그 나라 전력청 관계자부터 현지 업체 대표들을 만나고 영업해 수출 계약서에 도장을 찍게 만들었다”고 했다. 그는 2015년 대표로 취임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전 세계적인 공급망 위기가 닥쳤을 때도 동미전기공업은 성장을 거듭했다. 물류 차질로 해외에서 들여오던 핵심 부품을 제때 공급받지 못해 납기일을 맞추기 어렵게 되자, 한 대표는 직원들을 독일 등으로 직접 파견해 배 대신 비행기로 변압기를 옮겨 실어가며 납기를 맞췄다. 이는 해외 거래처들로부터 큰 신뢰를 얻은 계기가 됐다. 한 대표는 “외국 변압기 시장에선 한번 신뢰를 얻으면 거래처들이 장기 계약을 맺고 일거리를 계속 주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했다.
최근 1~2년 동안엔 미국 4주(州) 전력청과도 변압기 공급 계약을 맺었다. 미국의 전력기기가 노후화해 교체 수요 시기가 도래했고, 이에 위스콘신을 비롯한 주에서 새 변압기 공급 업체를 찾았는데 동미전기공업이 낙찰된 것이다. 최근엔 유럽 시장에도 수출을 모색하고 있다.
동미전기공업은 매년 매출액의 최소 5%를 R&D에 투자하고 있다. 수년 내 미국 전력기기 규격이 이전보다 까다로워지는 데다 유럽 시장에서의 고효율·친환경 변압기 수요가 늘어날 것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겠다는 구상이다. 한 대표는 “앞으로 3년 안에 수출 1억달러(약 1460억원)를 넘어서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