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인 이상 기업에 취직한 대졸 정규직 사원의 초임(初賃)이 2023년 처음으로 연간 5000만원을 넘어선 것으로 집계됐다. 꾸준한 임금 인상에 따라 대졸 정규직의 초임은 소기업부터 대기업까지 모든 규모의 사업장에서 일본보다 높았다. 특히 대기업 대졸 초임은 일본보다 약 60%나 높았다. 재계에선 “일본, 대만 등 이웃 국가에 비해 과도하게 높은 대기업 초임에 연공형 임금 체계, 정규직 강성 노조 영향까지 더해진 결과”라며 임금 체계 개편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12일 ‘우리나라 대졸 초임 분석 및 한·일 대졸 초임 비교’ 보고서를 통해 이같이 밝혔다. 비교가 가능한 최신 자료인 2023년 고용노동부 고용형태별 근로실태조사, 일본 후생노동성 임금구조 기본 통계조사를 통해 분석했다.
◇“높은 대졸 초임에 노조 프리미엄까지”
경총에 따르면, 최근 5년(2019~2023년) 정규직 대졸 초임은 매년 최소 1.7%에서 최대 5.6%까지 올랐다. 전체 평균은 2019년 3182만원에서 2023년 3675만원으로 올랐고, 300인 이상은 4571만원에서 5001만원까지 올랐다. 고용 규모에 따른 양극화 현상도 뚜렷했다. 5인 미만 사업체의 평균 초임은 2731만원으로 300인 이상(5001만원)의 54.6%에 불과했다.
한국 대기업의 높은 초임은 일본, 대만과 비교하면 더욱 뚜렷하다. 물가 수준 등을 반영한 구매력평가(PPP) 환율을 기준으로, 대졸 초임 전체 평균(10인 이상)은 한국이 4만5401달러(약 6670만원)로 일본(3만4794달러·약 5130만원)보다 약 30.5% 높았다. 특히 대기업 비교에서는 한국(500인 이상)이 5만7568달러, 일본(1000인 이상) 3만6466달러로 57.9%나 높았다. 대만은 대졸 초임 평균 연봉이 약 1600만원 수준이다. 초봉이 많은 업종인 의약·위생학 전공도 2000만원대에 그친다.
1990년 이후 한국 경제가 급성장하면서 대기업은 우수 인재 유치를 위해 경쟁적으로 높은 임금을 책정해왔다. ‘버블 경제’ 붕괴 이후 저성장 늪에 빠져 임금이 거의 오르지 않은 일본을 따라잡고 오히려 역전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최근 주요 기업의 마이너스 성장에도 연공형 임금 체계에 따라 인건비는 꾸준히 올라, 기업 부담은 더 심화되면서 경쟁력 악화의 요인이 된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직무·성과 임금 체계 두고 노사 이견
그러면서 급여 양극화도 커졌다. 한·일 간 규모별 대졸 초임 격차는 10~99인 상용직 대졸 초임을 100으로 볼 때, 일본 대기업(1000인 이상)은 114.4에 불과한 반면, 한국 대기업(500인 이상)은 149.3에 달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하상우 경총 경제조사본부장은 “일본보다 대·중소기업 간 대졸 초임 격차가 훨씬 큰 이유는 우리 대기업 초임이 일본보다 지나치게 높기 때문”이라면서 “노동시장 내 일자리 미스매치 심화, 대·중소기업 간 임금 격차 확대 등을 유발하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했다.
◇대기업의 초임… 중소기업의 倍
그러면서 “생산성에 비해 과도한 고임금은 지속 가능할 수 없으므로 고임금 대기업은 과도한 대졸 초임 인상을 자제할 필요가 있고, 합리적 임금 체계로 개편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했다. 현재 연공형은 직무, 성과에 따라 차등 보상이 어려운 구조이기 때문에 성과 기반으로 임금 체계를 대폭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노조는 직무·성과급제 도입은 임금 하향 평준화를 야기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직무·성과 체계는 ‘초임 삭감’ 등 방식으로 대기업의 임금 인상을 제어하는 효과는 낼 수 있지만, 중소기업의 임금 인상 유인은 없다는 지적이다. 노조에서는 직무, 성과급제 도입 이전에 먼저 중소기업, 비정규직 중심으로 ‘산별(産別) 임금 체계’를 만들고 이 노동시장에서 임금 하단을 올려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