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테슬라는 작년 전기차 판매량이 약 179만대로 전년 대비 1.1% 감소했다고 발표했다. 전기차 산업의 아이콘인 테슬라마저도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으로 타격을 받았다는 평가가 나왔다. 하지만 테슬라에는 전기차 외에 매년 2배씩 성장하는 사업이 있다. ESS(Energy Storage System·에너지 저장 장치)다. ESS는 생산된 전력이 남을 경우 저장해 두고, 필요할 때 꺼내 쓸 수 있게 하는 장치다. 수요에 맞춰 전력을 쓸 수 있어 에너지 효율을 높일 수 있다. 일종의 대용량 배터리라고 생각하면 된다.
테슬라의 작년 글로벌 ESS 공급량은 31.4GWh(기가와트시)였다. 1GWh는 우리 나라 기준 약 3300가구가 한 달간 사용하는 전력량이다. 테슬라의 작년 ESS 공급량은 2023년(14.7GWh)의 2배가 넘고, 2022년(6.5 GWh)과 비교하면 5배 가까이로 증가했다. 일론 머스크 CEO가 작년 10월 “ESS 사업이 들불(wildfire) 퍼지듯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고 말했을 정도다.
테슬라뿐만 아니다. 글로벌 배터리 기업에 ESS는 전기차 캐즘이란 혹한기를 버텨내기 위한 일종의 피난처가 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 삼성SDI 같은 우리 배터리 기업은 물론, 중국 CATL이나 일본 파나소닉 등이 차세대 신사업으로 ESS를 지목하고 있다. 이들의 주력 사업인 전기차 배터리는 작년 1~11월 기준 중국을 제외한 글로벌 시장에서 사용량이 전년 동기 대비 13% 늘어나는 데 그쳤다. 2022년과 2023년 각각 40% 이상 사용량이 늘었던 것을 감안하면 성장세가 확연하게 꺾인 것이다.
반면 ESS는 글로벌 에너지 전환과 AI(인공지능) 개발 바람 속에 사용량이 빠르게 늘고 있다. 작년 2월 시장조사 업체 SNE리서치는 ESS 시장 규모가 2023년 185GWh에서 2027년 379GWh로 2배로 커지고, 2033년에는 지금의 3배가 될 것이라 전망했다.
◇ESS용 자회사·브랜드 등 잇따라
대부분 ESS는 기본 구조가 리튬 이온 배터리라, 전기차용 배터리와 개발·제조 공정에 큰 차이가 없다. 용도에 따라 양극재, 음극재 등 각종 재료의 비율만 달라지게 하면 돼, 배터리 기업들이 전기차 배터리 기술력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어 새로 다각화하기가 상대적으로 쉽다. 한 배터리 기업 관계자는 “사용하는 소재가 비슷한 만큼 전기차 배터리와 ESS를 함께 하면 규모의 경제를 유지할 수 있어 공급망 관리도 편하다”고 했다.
국내 배터리 3사 중에선 LG에너지솔루션이 2022년 아예 미국에 ESS 전문 자회사 버테크를 만들며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캐즘으로 가동률이 떨어진 유럽과 미국 전기차 배터리 생산 라인 일부를 ESS용으로 전환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캐즘이 본격화한 지난해부터 일부 성과도 나고 있다. 지난해 12월 신재생에너지 전문 사모 펀드 ‘엑셀시오 에너지 캐피털’에 2026년부터 7.5GWh 규모의 ESS를 공급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작년 10월 미국 재생에너지 기업 테라젠과도 약 2조원 규모 ESS 공급 계약을 맺었다.
SK온 역시 작년 말 조직 개편에서 ESS 사업부를 대표이사 직속으로 두며 사업 속도를 높이고 있다. 미국 IHI테라선솔루션과 북미 ESS 사업에 협력하기로 MOU도 맺었다. 삼성SDI는 2023년 ESS에 별도 삼성배터리박스(SBB)라는 브랜드를 만들어 해외 판매를 확대하고 있다. 2026년부터는 LFP(리튬인산철) 배터리 ESS도 추가한다.
◇친환경·AI 바람 타고 글로벌로
해외 배터리 기업도 비슷한 상황이다. 일본 파나소닉도 작년 3분기 배터리 부문 전체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8% 줄었지만, ESS는 매출이 2028년까지 연평균 17% 증가할 것이라고 했다. 중국 CATL 역시 ESS 판매량이 지난해 1~3분기 35.73GWh로, 전년 대비 110%로 늘었다. 해외 ESS 공장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적인 친환경과 AI 바람이 불면서 ESS 경쟁은 더 치열해질 전망이다. 태양광이나 풍력 등은 날씨에 따라 전력 생산량이 들쭉날쭉하기 때문에 ESS를 설치해 생산한 전력을 저장해 뒀다 필요할 때 사용하는 게 필수다. AI 산업 역시 데이터센터가 핵심인데, 24시간 대규모 전력이 안정적으로 필요해 비상 상황에 대비해 ESS가 필요하다.
☞ESS(에너지 저장 장치)
ESS(Energy Storage System)는 생산된 전력이 남을 경우 저장해두고, 필요할 때 꺼내 쓸 수 있게 하는 장치다. 수요에 맞춰 전력을 쓸 수 있어 에너지 효율을 높일 수 있다. 기본적인 구조와 소재가 전기차에 들어가는 리튬이온 배터리와 유사하다. 배터리 기업 입장에선 전기차용 배터리와 개발·제조 공정에 큰 차이가 없어 사업 다각화가 쉽다는 것도 장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