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그룹의 방산 기업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이하 한화에어로)의 3조6000억원 규모 유상증자와 김승연 그룹 회장이 지난달 31일 세 아들에게 ㈜한화 지분 11.32%를 증여한 것이 야당이 주도하는 상법 개정안과 맞물려 정치 논쟁에 휩싸이기까지 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31일 페이스북에서 사실상 한화 사례를 거론하면서 “‘자본시장을 현금인출기로 여긴다’는 비판에도 할 말이 없다. 기어이 (권한대행은) 거부권을 쓰실 것이냐”라고 ‘한화’를 정조준하기도 했다.

지난달 20일 한화 유상증자 발표 직후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경제 전체에 활력이 떨어져 있는 가운데 투자 결정을 한 것이라 의미가 있다”고 이례적으로 높이 평가했다. 하지만 시장 분위기는 달랐다. 발표 한 달쯤 전인 지난 2월 한화에어로가 1조3000억원을 주고 김승연 회장의 세 아들이 100% 지분을 갖고 있는 한화에너지와 그 자회사 한화임팩트로부터 한화오션 지분(7.3%)을 사들였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오너 일가 회사에는 1조3000억원을 몰아주면서, 미래 투자금 마련은 유상증자로 해결해 개미들 지분 가치만 떨어뜨린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한화에어로의 유상증자, 김승연 회장의 증여, 상법 개정안이 어떤 관련이 있는지 사실관계를 확인해 봤다.

그래픽=김현국
그래픽=김현국

1. 유상증자로 증여세를 아꼈나?

이재명 대표는 31일 “유상증자로 주가가 떨어진 회사의 지분을 그룹 총수가 자녀에게 증여하기로 해 증여세를 절감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실제 지난달 20일 한화에어로 유상증자 발표 이후 한화 지주사 역할을 하는 ㈜한화 주가는 약 15% 떨어졌다.

하지만 김승연 회장의 세 아들이 증여세를 아꼈다고 단정하긴 어렵다. 증여세 과세 기준 때문이다. 상장사 주식은 증여 공시 한 달 후를 기준으로 전후 각각 2개월의 주가를 평균해 증여세를 결정한다. 한화 사례의 경우 3~6월 주가가 반영된다. 그런데 최근 ㈜한화 주가는 4~5년 새 가장 높은 수준이다. 1년 새 약 57% 올랐다. 방산 계열사가 주목받은 덕분이다.

4~6월의 주가 흐름이 3월 수준을 유지한다면 김동관 부회장 등 세 아들이 내야 하는 증여세는 2200억원 안팎이다. 하지만 김승연 회장이 작년 3월 같은 양의 주식을 증여했다면 증여세는 약 1400억원 수준이다. 이 시점에 증여 결정을 하면서 증여세만 800억원을 더 내게 된 것이다.

또 일각에선 삼 형제가 한화에너지를 100% 보유한 만큼, 한화에너지를 상장시킨 뒤 지주사 격인 ㈜한화와 합병해 승계 작업이 이뤄질 것이란 예상도 나왔다. ㈜한화 주가를 떨어뜨려 합병 비용을 줄이려 한다는 의심이다. 하지만 지분 증여로 승계가 사실상 마무리되며 합병 필요성은 사실상 사라졌다는 관측이 유력한 실정이다.

2. 지분 매각대금으로 한화에너지 등이 확보한 1조3000억원은 증여세로 쓰이게 되나

이재명 대표는 또 “(위에서 언급한) 상장회사가 얼마 전 자녀 소유 회사에 지분 매매 대가로 지급한 돈이 증여세 재원이 될 것이란 추측까지 나온다”고 했다. 한화에어로가 1조3000억원을 주고 한화에너지와 한화임팩트로부터 한화오션 지분을 사온 사례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한화에너지는 김승연 회장 아들 셋이 100%를 보유한 회사고, 한화임팩트는 한화에너지가 지분 51%를 가진 회사다. 그래서 이 대표가 이런 언급을 한 것이다.

하지만 한화 측은 이 자금은 회삿돈이지 아들들에게 가지 않는다고 했다. 모두 한화에너지 관련 사업에 투자할 계획이라는 것이다. 한화 관계자는 “이번에 발생하는 증여세는 김동관 부회장 등이 대출 등 개인 자금으로 낼 예정이고, 현재 한화에너지 지분을 팔거나 배당을 받을 계획도 없다”고 했다.

3.상법 개정안이 있으면 유상증자로 인한 투자자 피해를 줄일 수 있나

이재명 대표는 또 “유상증자로 투자자들이 큰 손실을 입었다. 기어이 (상법 개정안) 거부권을 쓰실 것이냐”라며 한화의 유상증자 문제와 상법 개정안을 연계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유상증자 절차에 문제가 있다면 상법 개정 대신 기존 제도로 견제하는 방법이 있다고 지적한다. 주주 대표 소송, 증권 집단 소송과 같은 절차가 대표적이다. 주주 대표 소송은 소수 주주가 회사 이사진의 책임을 묻는 소송을 말하며, 증권 집단 소송은 허위 공시·시세조종과 같은 불법행위로 인해 다수의 소액 투자자가 입은 손해를 배상하라며 제기하는 소송이다. 만약 유상증자가 불공정하거나 절차상 하자가 있다면 금융감독원 선에서 걸러지는 경우도 있다.

☞유상증자(有償增資)

주식회사가 주식을 새로 발행해 자금을 조달하는 방식. 발행 주식 수가 늘어나고 자본금도 증가하지만, 기존 주주들 입장에선 전체 주식 수가 늘면서 지분 가치가 낮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