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세안 10개국, 한국·중국·일본·호주·뉴질랜드 등 총 15개국이 15일 제4차 RCEP 정상회의를 온라인으로 열고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Regional Comprehensive Economic Partnership)에 최종 서명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이날 회의에 참석해 RCEP에 서명했다. 아세안 10개국은 브루나이, 캄보디아, 인도네시아, 라오스, 말레이시아, 미얀마, 필리핀, 싱가포르, 태국, 베트남 등이다. 협상 초반에 참여했던 인도는 중국과 갈등을 겪다가 결국 불참했다.

RCEP은 참여국들의 무역규모, GDP, 인구 등이 전세계의 약 30%를 차지해 ‘세계 최대 FTA’로 불려왔다. 지난 2012년 협상 개시 선언 후 8년만으로, 그간 31차례 공식 협상, 19차례 장관회의를 거쳤다.

그러나 기존에 한국이 RCEP 참여국 대다수 국가들과 개별적으로 FTA를 맺고 있고, 개방 수준에서 큰 차이가 없어 우리 산업에 미치는 파급 효과는 크지 않을 것이라는게 전문가들 의견이다. 반면, 중국 및 한국과 FTA를 맺고 있지 않던 일본은, 이번 RCEP 협정으로 제일 득을 볼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RCEP은 미국과 무역 갈등을 빚어온 중국이 전세계에서 고립을 피하기 위해 주도해온 측면이 큰데, RCEP을 성사시키기 위해 중국이 양보를 한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안덕근 서울대 교수는 “RCEP은 낮은 수준의 FTA로 대다수 국가들에 실익이나 피해가 크지 않을 것”이라며 “다만 그동안 중국, 한국과 FTA가 없었던 일본이 상대적으로 수혜를 볼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한류 콘텐츠는 수혜... 중국선 일본과 경쟁 심화

유명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지난 8월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제8차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장관회의에 참석해 발언하는 모습이 화면에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RCEP 참여국들의 경제 규모는 미국·캐나다·멕시코의 USMCA(북미자유무역협정)나 일본이 주도한 CPTPP(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11개국)보다 크다. 우리나라의 대(對) RCEP 수출액은 2690억달러(우리 전체 수출액의 50%)로 대USMCA(898억달러), 대 CPTPP(1260억달러)보다 크다.

이번 협정으로 한국은 아세안에 한류 콘텐츠 수출을 확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필리핀·태국·인니 등이 기존에 맺은 한-아세안 FTA 협정 내용에 포함돼있지 않던 온라인게임, 애니메이션, 음반 녹음, 영화제작·배급·상영 등을 추가 개방했기 때문이다.

다만 기존 농산물 및 공산품 등은 한-아세안 협정이 이미 맺어져 있어 추가 혜택은 크지 않다. 기존 한-아세안 FTA 관세 철폐율은 79.1~89.4%로, 이번 RCEP 협정으로 관세철폐율이 국별로 91.9~94.5%까지 늘어나는 정도다.

특히 한국은 RCEP에 참여한 15개국 중 14개국과 FTA가 체결돼있어 기존 시장 개방 수준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 전문가들 의견이다.

다만 이번 협정으로 일본과 첫 FTA를 맺는 효과가 생긴다. 한국은 이에 따라 세계 경제대국 1∼5위(美·中·日·獨·印)와 모두 FTA를 체결하게 되며, 10위 경제대국(브라질 제외)과도 모두 FTA를 보유하게 된다. .

정부는 “일본과는 우리의 민감성을 최대 반영해 전체 이익균형을 도모했다”면서 “일본과는 자동차·기계 등 민감 품목은 관세철폐 대상에서 제외했다”고 밝혔다.

다만 자동차 부품은 관세 철폐 대상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이날 “한국에 대한 수출에서, 에어백과 전자계 부품 등 자동차 관련 품목 중 80% 가까이는 관세가 철폐된다”며 “일본의 대(對)한국 수출 공산품의 관세 철폐율이 현재 19%에서 92%까지 단계적으로 상승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일본이 최대 수혜 입을 것

문재인 대통령이 작년 11월 4일 방콕 임팩트 포럼에서 열린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에서 아베 당시 일본 총리 등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 아베 일본 총리, 문 대통령, 하사날 볼키아 브루나이 국왕,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연합뉴스

또한 일본은 한국과 달리 중국과 FTA를 맺지 않고 있어, 이번에 중국 시장 개방 효과를 누릴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일본 제품의 중국 수출이 유리해지면, 한국은 오히려 중국에서 일본산과 경쟁해야할 것으로 보인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미국과 대립을 계속해온 중국이 아시아에서 고립을 피하고 무역을 촉진하려고 양보한 모양새”라고 분석했다. 그동안 미국의 관세폭탄과 화웨이 등 기업 제재로 코너에 몰린 중국이 자국민 홍보용으로 RCEP을 체결했다는 해석도 나온다.

정부는 이번 협정으로 역내 통일된 무역규범을 마련했다는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기존에는 중국, 아세안, 호주에 세탁기 수출시 원산지 기준이 각각 달랐으나, RCEP으로 하나로 통일했다는 것이다.

정인교 인하대 교수는 “향후 미국이 다른 경제 동맹체에 참여를 요구할텐데, 여기에도 결국 참여를 해야할 것"이라고 말했다.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