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판 테슬라’로 불리는 전기차 스타트업 패러데이퓨처가 올 2분기 미국 증시에 상장할 계획을 최근 밝혔다. 기업 가치는 45억달러(약 5조원)로 평가받고 있지만, 실제로는 양산 중인 차량이 없고 당연히 매출도 ‘제로’(0)인 회사다. 한때 자금난에 시달리던 창업자가 파산 신청을 하기도 했다.

패러데이퓨처 1인용 고성능 전기 스포츠카 ‘FF 제로1’

패러데이퓨처는 일반 기업공개(IPO) 방식과 다르게, 이미 나스닥에 상장돼 있는 스팩(SPAC·기업 인수 목적 회사) ‘프로퍼티설루션’(PSAC)과 합병하는 우회로를 택했다. IPO로는 2년 걸리는 상장 절차가 스팩으로는 단 6개월이면 되고 제출해야 할 서류도 비교적 간단하다. 유례없는 강세장이 지속하는 지금, 사업 자금을 빨리 조달할 수 있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패러데이퓨처 외에도 비전만 있고 제품은 없는 전기차 스타트업들이 너도나도 스팩을 활용한 증시 데뷔를 추진하면서 주식 시장에 ‘전기차 스팩 주의보’가 발령됐다. 실제 매출에 비해 기업가치가 지나치게 높게 책정된 기업이 너무 많아 투자금을 회수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경고다.

◇지금은 없지만 미래는 있다

작년 6월 미 수소전기차 기업 ‘니콜라’를 포함, 스팩을 통해 우회 상장했거나 상장 계획이 있는 전기차 스타트업은 10곳쯤 된다. 스팩은 비상장사와 합병해 증시에 데뷔시키는 것만을 목적으로 하는 서류상 회사다. 돈 들어갈 데가 많아 빨리 자금을 끌어모아야 하는 전기차 스타트업과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 테슬라 주가가 작년에만 7배 이상 오르는 등 고공행진하면서 전기차에 대한 시장의 기대감이 커진 것이 전기차 기업들의 스팩 상장 열풍에 한몫했다는 분석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테슬라 성공에 이어, 친환경 정책을 내건 조 바이든 행정부 출범에 따른 낙관론이 전기차 스팩 열풍을 이끌고 있다”고 분석했다.

테슬라의 성공 이후, 전기차 스타트업들이 잇따라 증시 상장을 준비하고 있다. 절차가 빠른 스팩(SPAC) 상장을 통해 자금을 모은 뒤 제품을 출시한다는 계획이지만, 충분한 자금이 모이지 않거나 양산 일정이 틀어질 가능성도 적지 않아 투자자들의 주의가 필요하다. 위 사진은 전기차 스타트업 패러데이퓨처가 공개한 전기 SUV ‘FF91’, 아래 사진은 루시드모터스가 개발한 전기 스포츠카 ‘루시드 에어’. /패러데이퓨처·루시드모터스

그러나 이들 대부분은 현재까진 이렇다 할 매출이 없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작년 이후 스팩 방식으로 상장했거나 상장 계획이 있는 전기차 스타트업 10곳의 기업 가치는 532억달러(약 59조원)에 달하지만, 이 기업들의 최근 1년 매출액은 4110만달러(약 455억원)에 불과하다. 이 중에서도 소형 전기버스 등을 개발 중인 어라이벌(Arrival), 럭셔리 전기 스포츠카를 만들 계획인 루시드(Lucid) 등 6곳은 아예 매출이 없다. 기업 가치가 너무 고평가됐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FT는 “테슬라 성공 이후, 전기차 스타트업들이 터무니없는 가치를 인정받으면서 증시에 뛰어들고 있다”며 “스팩으로 인해 상장이 간단해지면서 시장에 거품이 점점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블룸버그는 “전기차 혁명은 현실이지만, 기업 가치는 현실과 거리가 멀다”고 했다.

◇니콜라를 잊지 말아야

최근 국내 투자자들 사이에서 가장 뜨고 있는 스팩은 ‘처칠캐피털’이다. 루시드와 합병할 것이란 소문이 돌면서 올해 들어 주가가 10달러에서 40달러로 급등했다. 이 스팩은 지난달 국내 투자자가 매수한 해외 주식 4위(3억6400만 달러)에 오르기도 했다. 둘의 합병은 유력해 보이지만, 최종 결정되진 않았다. 만약 합병이 무산되면 주가가 급락할 가능성이 있다.

니콜라는 작년 6월 나스닥 상장 후 시가총액이 한때 300억달러(약 33조원)를 넘길 만큼 기대를 모았지만, 상장 3개월 뒤 ‘실제론 기술이 없었다’는 의혹이 쏟아졌고 제대로 반박하지 못하면서 추락했다. 작년 말 뉴욕 증권거래소에 상장한 전기 SUV 업체 피스커도 한때 주가가 24달러까지 올랐지만, 양산 계획이 늦어지면서 현재는 19달러대로 떨어졌다.

전문가들은 “‘넥스트 테슬라'를 찾고자 하는 마음은 이해하지만, ‘옥석 가리기’가 충분히 진행되고 나서 투자해도 늦지 않다”고 조언한다. 테슬라는 2010년 6월 상장 당시 이미 시판 차종이 있었고, 주력 차종인 ‘모델S’ 출시도 임박한 상황이었다.

미국 수소차 기업 니콜라 사례도 있다. 니콜라는 작년 6월 나스닥 상장 후 시가총액이 한때 300억달러(약 33조원)를 넘길 만큼 기대를 모았지만, 상장 3개월 뒤 ‘실제론 기술이 없었다’는 의혹이 쏟아졌고 제대로 반박하지 못하면서 추락했다. 니콜라 시가총액은 현재 84억달러(약 9조3000억원) 수준으로 24조원 가까이 증발했다. 작년 말 뉴욕 증권거래소에 상장한 전기 SUV 업체 피스커도 한때 주가가 24달러까지 올랐지만, 양산 계획이 늦어지면서 현재는 19달러대로 떨어졌다.

송선재 하나금융투자 팀장은 “자동차 산업은 기술뿐 아니라 생산 공장, 판매망, 유통망 등도 갖춰야 한다”며 “현재 상장을 추진 중인 전기차 스타트업들이 이런 여력을 가졌는지 의문인 상황에서 섣불리 큰돈을 투자하는 건 위험한 선택”이라고 경고했다.

☞스팩(SPAC)

기업 인수 목적 회사. 인수·합병(M&A)만을 위해 존재하는 페이퍼 컴퍼니다. 투자자에게서 자금을 모아 먼저 상장한 뒤, 정해둔 기한(보통 2~3년) 안에 비(非)상장 우량 기업을 인수·합병한다. 비상장사로선 정식 기업 공개(IPO)보다 빠르고 간편하게 상장 절차를 마무리할 수 있어 최근 관심을 모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