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이스탄불의 오르타크실라르 시장에서 한 여성이 식품을 구입하고 있다. 터키 통계 당국에 따르면 9월의 소비자 물가지수는 19.6% 상승했고 10월에도 19.9%나 치솟아 국민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연합뉴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치솟는 물가에도 불구하고 급격한 금리 인하라는 선거 공약 이행에 집착하면서 터키 리라화 가치가 자유 낙하하고 있다.

리라화는 올해 들어 가치가 47% 하락했고, 11월에만 약 30% 떨어졌다. 통화 가치는 한 나라의 경제 수준을 반영한다. 그만큼 터키 경제가 위기에 몰렸다는 뜻이다.

터키 국민들은 큰 폭의 자산 손실을 보고 있을 뿐 아니라 일부 수입 의약품을 사기 위해 쟁탈전을 벌여야 하는 상황으로까지 내몰렸다.

◇물가폭등에 국민 고통만 가중

에르도안 대통령의 거꾸로 경제 정책 집착에 치솟는 달러 대비 리라화 환율(리라화 가치 하락)

경제 전문가들은 리라화 가치가 하락해 수입품 가격이 뛰고 인플레이션이 더 악화될 것으로 본다. 터키는 에너지, 원자재를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고 있어 리라 가치 폭락은 수입 물가 급등과 이에 따른 물가 폭등으로 국민들 고통만 가중 시킨다는 것이다.

10월 터키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동월 대비 19.9% 폭등해 9월(19.6%)에 이어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11월은 20.7%로 3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 외국인 투자금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면서 터키 증시, 부동산 등 자산 가치 붕괴는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의 금리 인하 압력에 맞섰다가 해임된 세미 투멘 전 터키중앙은행(TCMB) 부총재는 “성공 가능성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비이성적인 실험을 폐기하라”고 촉구했다.

CNBC에서 블루베이에셋 매니지먼트의 팀 애쉬 선임 신흥시장 전략가는 “리라화 가치가 말도 안 되는(insane) 수준에 있지만, 이는 터키가 현재 운영하는 말도 안 되는 통화정책을 반영한 것이다”고 지적했다.

◇터키 대통령의 ‘거꾸로 경제’ 아집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23일(현지시간) 수도 앙카라에 있는 집권 정의개발당(AKP) 당사에서 연설하고 있다. 에르도안 대통령이 중앙은행에 금리 인하를 강요한 여파로 터키 리라화 가치가 연일 최저치를 경신하는 가운데 이날 사상 처음으로 1달러당 12리라 선이 깨졌다. /연합뉴스

그러나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에 아랑곳 하지 않고 지난 30일 국영방송인 TRT와의 인터뷰에서 대부분의 경제 전문가들이 무모하다고 비판하는 통화완화 정책을 옹호했다. 그는 “거꾸로 돌릴 수 없다”고 강조했다.

에르도안이 통화 완화를 옹호하고 나선 것은 최근 채 2주가 안 되는 기간에 벌써 5번이나 된다.

그는 인플레이션 잡으려면 금리 인하해야 한다는 신조를 갖고 있다. 금리를 인하하면 수입은 줄고, 수출이 늘어서 리라화 가치가 올라가고 수입 물가가 안정된다는 논리인데 현실은 하이퍼(초)인플레이션이 우려될 뿐이다.

에르도안은 “신의 도움과 우리 인민들의 지지로 우리는 이번 경제 독립 전쟁을 승리로 끝낼 것”이라고 오히려 큰 소리를 쳤다. 1차 대전 뒤 터키를 점령한 외세에 맞서 현대 터키 공화국 기초를 세운 1923년과 다르지 않다며 독립 운동 애국자 이미지를 강조한 것이다. 그는 금리인상을 요구하는 이코노미스트들, ‘기회주의자들,’ ‘글로벌 금융 서커스단’에게 굴복하지 않겠다고 호언장담했다.

금리 인하 뜻에 반대하는 중앙은행 책임자들을 가차 없이 해임했다. 대통령의 압력에 터키중앙은행(TCMB)은 지난 달 19일 기준금리를 1%포인트 인하했다. 19%이던 기준금리는 9월 후 세 차례 연속 인하해 15%까지 내려갔다.

에르도안은 22일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인하해 기뻤다. 터키를 예속시키려는 국제적 음모에 맞서겠다”며 음모론을 제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