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코드(decode): 부호화된 데이터를 알기 쉽도록 풀어내는 것. 흩어져 있는 뉴스를 모아 세상 흐름의 안쪽을 연결해 봅니다.

그동안 전기차에 소극적이라는 평가였던 일본 도요타마저 전기차 중심으로 전략을 급선회하고 있습니다.

지난 14일 도요타는 2030년의 자사 전기차의 세계판매 대수를 (기존 200만대에서) 350만대로 대폭 늘리겠다고 발표했는데요. 2030년 도요타 판매를 1000만대로 봤을 때 전기차 판매비율은 35%입니다. 2030년에 이미 절반 혹은 그 이상을 전기차로 팔겠다고 발표한 경쟁사들보다 비율은 낮아 보이지만, 도요타로서는 어마어마한 변화이자 큰 도전입니다. 도요타는 기존 것을 개선하는 것은 세계제일이지만, 전기차처럼 완전히 새로운 무대에 뛰어드는 것에 능한 회사는 아니니까요.

도요타의 도요다 아키오(豊田章男) 사장도 “전체 판매에서의 전기차 비율보다 앞으로 9년 뒤에 연간 350만대의 전기차 판매라는 절대숫자에 주목해달라”고 했습니다. 아키오 사장은 또 “350만대라는 것은 독일 다임러(메르세데스벤츠가 속한 그룹)나 프랑스 PSA(푸조·시트로앵), 일본 스즈키가 각각 한해 만드는 모든 차량에 해당하는 엄청난 숫자”임을 강조했는데요. 이젠 도요타가 전기차에 소극적이라는 생각을 제발 접어달라는 의미였죠. 확실이 올해 초까지만 해도 도요타는 전기차를 ‘너무 비싸고 다수 소비자가 원하는 물건이 아니라’고 생각해왔고, 전기차로 가더라도 일단 상황을 지켜보며 천천히 간다는 쪽이었습니다.

도요타의 이번 발표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다만 기존 전략을 여러 차례 급히 수정하는 과정에서 내용의 혼란 혹은 정확한 메시지가 무엇인지 알기 어렵게 만들어 놓은 부분이 보입니다. 지난 14일 도요타 발표의 내용을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지를 5가지 관점으로 풀어보겠습니다.

도요타의 도요다 아키오 사장이 지난 14일 열린 '도요타 배터리·EV에 관한 설명회'에서 도요타의 2030년 전기차 판매를 연간 350만대로 늘리겠다고 발표하고 있다. /도요타 동영상 캡처

◇1. 2035년 렉서스 브랜드 100%를 전기차로 팔겠다는 것은 수소연료전지승용차 대량 보급 접겠다는 의미일 수도

도요타는 2030년 글로벌 전기차 판매 목표를 연간 350만대로 잡은 것과 동시에, 렉서스(도요타그룹의 고급차 브랜드) 신차 판매를 2035년까지 100% 전기차로 바꾸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2030년까지 렉서스 모든 라인업에 전기차를 도입하고, 특히 유럽·미국·중국 판매분을 2030년까지 100% 전기차로 바꾸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2030년 기준 렉서스 전기차를 100만대 팔겠다고 했지요.

이게 어떤 의미일까요?

도요타 설명은 이렇습니다. 시장조사를 해본 결과, 특히 럭셔리 소비자들이 전기차를 더 원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는 겁니다. 당연하겠죠. 그게 벤츠·아우디가 전기차 전환에 가장 적극적인 이유 중 하나이니까요. 현대자동차가 2025년부터 제네시스가 출시하는 모든 신차는 전기차 혹은 수소연료전지차가 될 것이라고 밝힌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2035년 렉서스 판매를 100% 전기차(BEV·배터리로 가는 전기차)로만 한다는 것이 중요한 또 다른 이유는 이것이 수소연료전지 승용차(세단·SUV 등) 대량보급을 사실상 포기한다고 말한 것이나 다름 없기 때문입니다. 수소연료전지시스템은 원가가 비싸기 때문에 대중·소형차 탑재가 쉽지 않습니다. 배(차량원가)보다 배꼽(연료전지시스템)이 더 커지기 때문이죠.

따라서 수소연료전지차를 대량으로 보급하려면, 우선 고가(高價) 승용차 쪽에 먼저 보급돼야 합니다. 도요타로 치면 가격이 비싼 렉서스 모델들에 연료전지시스템을 탑재해야만 초기 대량 보급이 가능하다는 것이죠. 도요타가 내놓은 본격 수소연료전지차 ‘미라이’는 프리우스처럼 미래지향적인 형태를 하고 있었는데요. 이런 모양으로는 소비자들이 비싼 값에 사주지 않겠죠. 그래서 도요타가 올해 내놓은 2세대 모델 ‘미라이2′는 렉서스 LS 즉 렉서스의 최고급 차량과 모습이 꼭 닮아있죠. 즉 도요타가 최근까지만 해도 렉서스 등 고급차를 중심으로 수소차를 보급시켜보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는 겁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도요타가 수소연료전지 승용차 대량보급을 원한다면, 자사 차량군 가운데 먼저 주력해야 하는 브랜드가 렉서스여야 한다는 겁니다.

도요타가 2020년 12월 9일 출시한 신형 미라이. 2014년 출시된 수소차 1세대 미라이의 완전변경 모델이다.

하지만 이번에 도요타가 렉서스 브랜드는 2030년까지 미국·유럽·중국이라는 주요시장에서 100% 전기차로, 2035년까지 전 시장에서 100% 전기차로 간다고 못을 박은 겁니다. 이것은 안그래도 보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수소연료전지차가 도요타그룹의 승용 라인업에서 사실상 설 자리가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물론 도요타가 오랫동안 미래 파워트레인으로 밀어온 수소연료전지차와 시스템 자체를 포기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수소연료전지 모듈은 탈탄소가 점점 더 중요해지는 산업 전반에서 활용될 여지가 많고, 또 차량의 경우에도 대형 트럭·버스 등에서는 장기적 관점에서 연료전지 탑재의 전망이 있다고 보입니다. 다만 렉서스의 파워트레인에서 연료전지가 완전히 배제된 것은 수소승용차의 미래를 어둡게 만드는 일임에 분명합니다.

올해 1~10월 수소차 판매를 보면, 도요타가 5500대입니다. 참고로 현대차는 7900대를 팔아 세계시장 점유율 54%로 1위, 도요타가 점유율 38%로 2위였죠. 순위나 점유율을 논하는 것이 무의미할만큼 대수 자체가 너무 적습니다. 당초 도요타가 수소차 개발을 본격화하던 때의 계획대로라면, 올해쯤이면 연간 몇십만대는 팔았어야 합니다.

도요타마저 수소승용차 대량보급을 사실상 포기할 수 있다는 다른 정황으로는, 최근 도요타 발표에서 수소연료전지차 비중이 갈수록 줄고 있다는 것을 들 수 있습니다. 이전 목표치였던 ‘2030년 전기차 판매 200만대’엔 전기차 다음에 꼭 ‘수소연료전지차 포함’이라는 문구가 붙었는데요. 이번 발표에선 목표치를 350만대로 대폭 올리면서도 ‘수소연료전지차 포함’이라는 문구를 빼버렸습니다. 온전히 전기차(BEV)만 350만대를 팔겠다고 명언한 것이죠. 게다가 발표자도 점점 수소연료전지차 순위를 뒤로 미루고, 일본 기자들조차 전기차만 물어볼뿐, 수소연료전지차는 아예 관심을 두지 않는 것 같습니다.

도요타가 자사의 고급차 브랜드인 렉서스를 100% 전기차로 채우기로 했다는 것, 다시 말해 렉서스에 수소연료전지차를 넣는 것을 포기했다는 것은, 당장 현대자동차의 수소연료전지차 전략에도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현대차는 2025년부터 자사의 고급차 브랜드인 제네시스로 출시되는 모든 신차를 전기차나 수소연료전지차로 채우겠다고 선언했거든요. 현대가 제네시스 브랜드에 수소차를 넣겠다는 것도 기존에 도요타가 취했던 전략과 연결돼 있습니다. 연료전지시스템이 워낙 비싸기 때문에 판매가격이 아주 높은 차량 위주로 탑재해 보급을 늘려보겠다는 전략이죠.

그런데 현대차보다 더 컴팩트하고 원가도 저렴한 연료전지시스템을 만드는 도요타조차 렉서스에 연료전지차를 넣는 것을 포기한 것이죠. 그렇다면 현대차가 제네시스에 수소연료전지차를 넣겠다는 전략은 어떨까요? 이제 도요타도 빠졌으니, 아마도 현대차가 세계에서 유일하게 고급차에 연료전지시스템을 대량 탑재하는 회사가 되는 것일까요? 이 부분에 대해 더 연구가 필요해 보입니다. 다만 명확한 것은 도요타는 렉서스에 수소차 안넣겠다고 못박았다는 겁니다.

도요타는 지난 14일 자사의 2030년 전기차 세계 판매 대수를 연간 350만대로 대폭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2030년까지 30개의 전기차 차종을 낼 예정이다. 도요다 아키오 도요타 사장이 발표회장에서 앞으로 공개할 전기차를 소개하고 있다. /도요타 동영상 캡처

◇2. 전기차에 부정적이었던 도요타 사장의 ‘자기고백’과 공수전환 선언

도요타가 전기차에 부정적이라는 이미지를 주는 데 큰 역할을 했던 인물이 도요다 아키오 사장입니다. 창업자 직계 손자이자 2008년 리먼쇼크 이후 위기에 빠졌던 도요타를 부활시킨 인물이지요. 그런데 이분이 전기차를 아주 싫어한다는 게 일본 자동차업계에선 공공연한 비밀이었습니다.

여기에 대해 지난 14일 발표에서 재밌는 내용이 두 가지 나왔습니다.

첫 번째는 돌발 질문에서 비롯됐습니다. 야마모토 신야라는 프리랜서 자동차저널리스트가 한 것이었는데요. 내용은 이랬습니다.

“당신(아키오 사장)의 혼네(本音·속마음)를 모르겠다. 수소연료전지차·하이브리드카 얘기할 때는 좋은 추억도 떠올리고 기분도 좋아 보이는데, 전기차 얘기할 때는 ‘우리도 이렇게 할거라고요(이제 됐습니까 여러분?)’라는 느낌이다. 그래서 묻겠다. 사장, 당신은 전기차를 좋아하나 싫어하나?”

이 돌직구 질문에 대한 아키오 사장, 배석한 3명(마에다 마사히코 CTO, 사토 고지 치프브랜딩오피서, 사이먼 험프리즈 디자인영역총괄부장)의 반응이 흥미로웠습니다.

일단 아키오 사장은 “아니 그런 대단한 질문을?”이라며 막 웃더군요.

더 중요한 것은 다른 3명의 반응이었습니다. 단상을 보는 입장에서 사장 오른쪽에 앉은 마에다 CTO는 막 웃다가 사장을 힐끗 쳐다보며 웃음을 참는듯한 모습이었고요. 사장 왼쪽에 앉았던 사토 치프브랜딩오피서와 사이먼 부장은 파안대소하더군요. 둘이 서로 얼굴까지 쳐다보며 마치 “올게 왔네. 그렇지?”라고 말하는 듯 여러 번 웃었습니다.

한 일본인 기자가 도요다 아키오 도요타 사장에게 "사장 당신은 전기차를 좋아하나요 싫어하나요?”라고 묻자, 아키오 사장을 비롯한 Q&A 세션에 참석한 도요타 관계자들이 전부 웃고 있다. /도요타 발표 동영상 캡처

아키오 사장은 질문에 이렇게 답했습니다.

“굉장한 질문이네요. 굳이 얘기하자면, 지금까지의 도요타 전기차는 흥미가 없었어요. 하지만 지금부터 만드는 전기차엔 흥미가 있다는 게 제 답입니다. 야마모토씨가 얘기한 것처럼 비즈니스적으로는 응원하지만, 모리조(아키오 사장이 레이서로 활동할 때 쓰는 이름)로서는 어떠냐고 묻는다면, 저의 혼네를 간파당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은 드는군요.”

두 번째는 전기SUV로 출시 예정인 렉서스 ‘RZ’를 아키오 사장이 운전하는 동영상이었는데요. (도요타의 신차 주행성능을 최종 평가하는 마스터 드라이버로도 활동하는) 아키오 사장이 처음엔 “음, 차가 좀 무겁네! ‘라고 부정적인 코멘트를 하다가, 풀가속하면서 ‘에~!(일본인 특유의 하이톤으로) 이거 완전히 별세계잖아?”라고 말하며 RZ 성능에 감탄합니다.

저는 이걸 보면서 아키오 사장이 그동안 전기차에 부정적이었던 자신에 대한 ‘자기고백(혹은 약간의 반성)’도 하면서, ‘시대 흐름을 외면한다. 전기차를 싫어한다’는 세간의 자신에 대한 인식을 불식하겠다는 의도로 읽혔습니다.

전기 SUV로 출시 예정인 렉서스 ‘RZ’를 아키오 사장이 운전하는 동영상. (도요타의 신차 주행성능을 최종 평가하는 마스터 드라이버로도 활동하는) 아키오 사장이 처음엔 “음, 차가 좀 무겁네! ’라고 부정적인 코멘트를 하다가, 풀가속하면서 ‘에~!(일본인 특유의 하이톤으로) 이거 완전히 별세계잖아?”라고 말하며 RZ 성능에 감탄하고 있다. /도요타 동영상 캡처

◇3. 도요타는 전기차 중심이 아니라 풀라인업 전략이라 말하지만, 배터리 투자계획과 규모가 모든 것을 말해

이번 발표에서 도요타는 그들 입장에서는 매우 급진적인 EV시프트 전략을 밝혔습니다만, 여전히 풀라인업 전략을 고수하고 있죠. 전기차만으론 고객 요구에 모두 대응할 수 없기 때문에, 시장·고객 사정에 맞춰 내연기관·하이브리드·플러그인·수소연료전지·전기·바이오연료차 등 다양한 파워트레인을 제공한다는 것이죠.

물론 이 전략에 진정성이 있다는 것은 인정합니다. 당장 전부 전기차로 바뀔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도요타 말대로 시장에 따라 EV시프트가 빨리 일어나기 어려운 곳도 있고, 각 지역 에너지사정에 따라 달리 봐야 할 부분도 분명히 존재하니까요. 도요타 뿐 아니라 다른 회사들도 풀라인업 전략이라고 봐야겠죠. 당장의 전기차 비중은 그리 높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도요타가 아무리 ‘풀라인업이다, 모든 가능성에 대응한다’라고 말하더라도 시간이 흐를수록 주력이 어디로 갈지는 투자처를 보면 알 수 있죠. 돈·인력이 어디로 들어가는지 보는 것입니다. 올해 초까지도 도요타에는 2030년 전기차 판매 목표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지난 5월 자사의 2030년 전기차(수소연료전지차 포함) 판매 목표 200만대를 처음 공표했죠. 더 놀라운 건 지난 9월에 도요타가 배터리에 1조5000억엔을 투입해 2030년까지 연간 200GWh 배터리를 자체생산하겠다고 밝힌 것이었습니다. 2030년 기준 자체 배터리 조달만으로 연 300만대 이상의 전기차를 생산할 수 있게 된다는 뜻이었으니까요. 도요타가 단일부품군 중 역대 최대 투자비를 쏟아부어 2030년에 연 200GWh 배터리를 생산한다는 것 자체가 모든 것을 얘기해주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분들은 그래도 ‘나머지 대부분은 하이브리드카를 파는 거니까, 여전히 하이브리드카 중심 아니냐’고 할 수도 있을 겁니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하이브리드는 도요타가 지난 20여년간 계속 사업을 벌여온 것이고, 투자도 이미 많이 진행돼 성숙한 분야라 할 수 있거든요. 게다가 도요타는 작년에 191만대의 하이브리드카를 팔아, 전세계 하이브리드카 판매의 71%를 차지했습니다. 좋게 말해 압도적 1등이고, 나쁘게 말하면 아무도 따라와주지 않는다는 얘기죠. 그리고 도요타의 하이브리드카 판매는 세계적인 친환경차 열풍에도 불구하고, 최근 몇 년간 판매가 횡보 상태입니다. 급격히 늘고 있는 전기차와는 다른 상황이죠.

그리고 전기차에서 투자가 제일 많이 드는 것이 배터리인데요. 하이브리드카의 배터리 사용량은 전기차의 거의 100분의 1에 지나지 않습니다. 따라서 대규모 배터리 투자를 한다면 그것은 전기차 위주일 수 밖에 없습니다. 도요타는 지난 14일 발표에서 배터리 투자를 1조5000억엔에서 2조엔으로 늘린다고 했죠. 그리고 2030년의 연간 배터리 생산량도 기존 200GWh에서 280GWh로 대폭 늘렸습니다. 일부는 하이브리드용일 수 있지만 대세에 지장 없습니다. 거의 100% 전기차를 위한 것이라 봐도 되고, 이 배터리 생산투자계획이야말로 도요타도 전기차로 간다는 것을 보여주는 확실한 증거라 말할 수 있습니다. 이 정도 분량이면 현재 기술로 1회 충전 400km 이상 달릴 수 있는 전기차를 연간 400만대 이상 만들 수 있죠. 미래에는 기술 발전으로 더 적은 배터리로 같은 거리를 달릴 수 있게 될 테니, 이 정도 배터리 생산량이면 500만대 이상, 즉 2030년 기준으로 도요타 전체 판매의 절반을 전기차로 바꿔도 될 만큼의 배터리를 자체 확보한다는 의미입니다.

도요타가 자체생산하겠다는 배터리 규모는, 전기차에 올인하고 있는 독일 폴크스바겐이 2030년에 세계 판매의 50%(500만대)를 전기차로 채우기 위해 자체생산하겠다는 배터리 규모 240GWh보다도 많은 것입니다. 도요타의 2030년 전기차 판매목표(350만대)는 폴크스바겐보다 적지만, 자체생산하겠다는 배터리 규모는 오히려 폴크스바겐보다도 더 많은 것이죠.

거듭 말씀드리지만, 도요타가 하이브리드카 위주에 머물거나 수소연료전지차 대량보급에 자신 있다면, 이런 엄청난 양의 배터리 자체생산은 불필요합니다. 이런 차종의 배터리 탑재량은 전기차의 100분의 1 수준이니까요. 즉 도요타가 전기차로의 대전환이라고 말은 하고 있지 않지만, 그들의 배터리 투자액수와 생산계획이 모든 방향을 얘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도요타는 2030년까지 전동화 차량에 8조엔을 투자하는데, 그 가운데 4조엔을 전기차 투자에만 쓸 예정이다. 2030년의 연간 전기차 판매는 기존 200만대(수소연료전지자 포함)에서 350만대(전기차만)로 대폭 확대 수정했다. 2030년까지 배터리 내재화를 위한 투자액도 종전의 1.5조엔을 2조엔으로 대폭 늘렸다.

◇4. 그럼에도 여전히 모호한 전략... 소프트웨어·IT 중심 전기차의 미래에 대한 기대감 모자라

자동차업계를 잘 아는 사람 중에 도요타의 저력을 무시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겁니다. 그런데 도요다 아키오 도요타 사장의 이번 발표 내용·분위기에서 약간의 불편함이 느껴지더군요. 그 느낌은 아키오 사장의 발표 뒤에 이어진 Q&A 세션 마지막 질문에서 더 강해졌습니다.

일본의 한 기자가 “전기차에 여전히 진심전력이 아니라는 느낌이다. 도요타에 있어 전기차는 어떤 위치인가. 엔진 개발은 앞으로 어떻게 되는 것인가”라고 물었습니다.

여기에 대해 아키오 사장은 우선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이 질문은 동석한 3명의 대답을 전부 들어보겠다. 나도 궁금하다.”

우선 마에다 CTO가 수소엔진 얘기를 꺼내더군요. 인류 본성까지 꺼내면서, 엔진이라는 폭발력을 통해 피스톤과 크랭크축을 돌려 차를 움직이는 그런 기존 파워트레인 형식을 수소엔진을 통해서라도 계속 가져가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마에다 CTO가 순간 많은 고민을 한 뒤 사장의 입장과 눈치를 보며 답한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최근 아키오 사장이 수소엔진 차량 타는 것을 좋아한다고 들었는데, 마에다 CTO가 본심을 얘기한 것인지 사장 비위를 맞춰주려고 그렇게 말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수소연료전지 승용차가 잘 안 되니 아예 기존엔진처럼 실린더 내부에 가솔린 대신 수소를 분사해 폭발시키는 수소엔진차를 보급시키겠다는 것일까요? 어떻게든 내연기관 차량을 타고 싶으니,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는 수소엔진차라도 꼭 타고 싶어하는 고객이 많을 것이라 도요타는 예상하는 것일까요? 물론 수소엔진 보급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승용차에서 대량보급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생각됩니다. 내연기관의 느낌을 갈구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에까지 해당되는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마에다 CTO는 사장 얼굴을 보면서 수소엔진을 얘기했습니다.

반면 다른 2명, 사토 치프브랜딩오피서와 사이먼 디자인영역총괄부장은 ‘사장 취향’과 다른 얘기를 했습니다. 아키오 사장의 기존 입장은 ‘전기차는 내연기관차에서 느낄 수 있는 두근거림, 기름냄새, 감동 그런 것이 부족하다’는 것이었는데요. 그것을 정면 반박했습니다.

이들 2명의 얘기는 이랬습니다. ‘인간이 자동차에서 느끼는 두근거림이 꼭 내연기관차에 해당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전기차가 IT 와 연결됨으로써, 더 많은 두근거림, 전에는 잘 몰랐던 더 많은 기회와 만나게 될 것이다. 특히 전기차는 주행 리스펀스와 가속성능이 매우 좋다. 과거 10년간 자동차에 대한 소비자 관심이 줄어드는 경향을 보여왔는데, (IT 와 결합하는) 전기차로 인해 소비자의 관심이 다시 자동차로 돌아오고 있다. 그리고 그 미래는 전기차에 있다.’

마지막으로 아키오 사장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도요타가 전기차에 전향적이지 않다고 자꾸 말하는데, 2030년에 350만대의 전기차를 팔겠다고 오늘 발표했다. 그리고 30개 풀라인업 전기차를 도입할 것이다. 이래도 전향적이지 않다고 한다면, 어떻게 하면 도요타가 전기차에 전향적인 회사가 될 수 있는지 거꾸로 나에게 알려달라.”

여기서 드는 생각은 도요타 내부에서도 사장과 몇몇 임원, 또 다른 임원(주로 젊은 층이나 외국인) 사이에 의견차이가 클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아키오 사장의 EV시프트에 대한 스탠스는 ‘언론이나 투자자들이 자꾸 뭐라고 하니까 한번 보여줄게, 못하는 게 아니라 안 했던 거라고, 이런 걸 원한 거야? 원한다면 할거라고!’라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아키오 사장의 발언에서 의아했던 게 2가지 있었는데요.

아키오 사장은 내연기관차가 운전자를 더 두근거리게 하거나 감동을 줄 수 있고, 전기차는 그렇지 않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는 겁니다. 정말 그럴까요? 이미 Q&A에서도 얘기가 나왔듯,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내연기관의 추억이라는 것도 장기적으로 보면 인류 역사의 짧은 순간에 지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뛰어난 전기차를 몰아보면, 운동·제어성능은 물론, ‘펀투드라이브’ 측면에서도 내연기관차와는 또 다른 맛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굳이 기술적으로 따지자면, 내연기관차보다는 전기차 쪽의 구동제어가 더 매끄럽고 섬세할 수 있고요. 폭발적인 가속력을 내면서도 안정적인 제어를 하는데 전기차가 더 유리합니다.

두 번째는 아키오 사장의 전기차에 대한 생각이 파워트레인 위주에 머물러 있다는 것입니다. 전기차의 진가는 파워트레인이 내연기관에서 배터리·모터로 바뀌는 것만이 아니라, 차량의 모든 기능을 소프트웨어로 통합제어할 수 있는 SDV(Software Defined Vehicle)로 바뀐다는 데 있지요. 마지막 Q&A 세션에서 비교적 젊은 도요타 임원과 외국인 부장이 ‘전기차에 더 많은 두근거림과 감동과 기회가 있다’고 말한 것은 미래 모빌리티 라이프와 서비스의 도구가 바로 전기 SDV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도요타가 내부적으로 자사 전기차에 탑재할 OS를 열심히 개발 중이고, 조직도 ‘소프트웨어 퍼스트’로 바꿔나가는 중이긴 합니다만, 아키오 사장이 하드·소프트웨어 융합을 통해 도요타의 미래를 만들어나가겠다고 말했다면 어땠을까요? 도요타를 더 마음으로 응원하고 싶은 기분이 들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도요타가 대단하다고 느낀 것은 사장이 다소 엇나가더라도, 조직이 워낙 탄탄하고, 참모진의 실력이 출중하기 때문에, 회사가 큰 방향에서 위험해질 일은 많지 않아 보인다는 것입니다. 아직 예상하긴 어렵지만, 도요타의 자동차 소프트웨어 전략, 도요타 차량의 SDV화에 대한 발표도 아마 내년쯤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올 연말에 엄청난 양의 배터리 내재화 계획을 밝히며, 전기차에 소극적이라는 도요타의 이미지를 불식하는데 힘썼으니 말입니다. 내년의 적당한 시기에 전기차(이면서 SDV) 발표 제 2탄으로, 하드·소프트웨어 통합의 차량 개발과 서비스 전략을 내놓을 수도 있을 겁니다.

◇5. 전기차 개발 능력은 충분하지만, 경쟁사 대비 투자·실행의 스피드가 느린게 걸림돌 될 수도

도요타는 이번 발표에서 2030년 전기차 350만대 판매를 얘기하면서, 2030년까지 배터리에만 2조엔을 투자해 연간 280GWh(연간 전기차 400만대 이상을 생산할 수 있는 분량)의 배터리를 자체생산한다고 했죠. 전기차 자체에만 따로 2조엔을 투자한다고도 했습니다. 전기차·배터리에 2030년까지 4조엔 투자입니다. 그리고 2030년까지 30개 차종의 전기차를 풀라인업으로, 즉 소형차부터 각 체급의 SUV, 크로스오버, 픽업트럭까지 다 제공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전략 자체는 훌륭합니다. 그런데 한가지 신경 쓰이는 점이 있습니다. 마에다 CTO에 따르면, 이 금액을 지금 어떻게 다 쓰겠다고 결정한 것이 아니라, 상황을 봐 가면서 그리고 개발과정을 봐가면서 조절해 나가겠다는 겁니다. 굉장히 합리적인 것 같지만, 어떻게 보면 대단히 위험한 일일 수도 있습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도요타가 EV시프트로 방향은 잡았지만, 여전히 속도 면에서 느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도요타 속내를 본다면, 이렇게 발표해 놓고 2025년까지는 하이브리드 위주로 가고, 하드·소프트웨어 양쪽으로 차량개발 플랫폼을 만든 뒤에, 2025년 이후부터 전기차를 확산시킨다는 생각일 수 있습니다.

물론 도요타는 전동차량 개발에 대한 오랜 기술축적이 있습니다. 1997년 세계최초의 양산 하이브리드카 프리우스를 시판했고, 1992년 전기차 개발부를 설치, 1996년 RAV4 EV를 시장에 도입했죠. 1996년 프라임어스EV에너지라는 배터리회사를 설립, 니켈수소배터리 기술을 갈고닦으면서 2003년부터 리튬이온배터리도 취급해 왔습니다. 2008년엔 전지연구부를 설립하고 전고체배터리 등을 차세대배터리 연구도 본격적으로 해왔지요. 도요타는 지난 26년간 1조엔 가까이 투자해서 누계 1900만대 이상의 배터리를 생산했습니다.

이렇게 보면 도요타가 금방 전기차로 밀어붙일 수 있을 것 같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전기차와 하이브리드카는 배터리 사용량부터 차체 구조까지 아주 많이 다르거든요. 우선 배터리 용량을 본다면, 전기차는 대개 60~100KWh 용량의 배터리가 들어가지만, 하이브리드카는 1KWh 이내의 배터리가 들어갈 뿐입니다. 즉 도요타가 지금까지 1900만대의 배터리를 생산해왔다고는 하지만, 대부분 하이브리드카이기 때문에 배터리 총량으로 보면 다른 회사들이 전기차용 배터리 공장 한 곳에서 1년간 생산하는 분량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그리고 다른 회사의 투자를 보면, 예를 들어 폴크스바겐 한 곳만 2025년까지 전기차에 350억 유로(약 47조원)를 투자합니다. 2030년까지가 아니라 2025년까지라는 것이 중요합니다. GM 등 다른 회사들도 2025년까지 전기차 배터리(하드웨어) 플랫폼과 소프트웨어 플랫폼 동시 구축에 한국 돈으로 도요타가 2030년까지 투자한다는 액수 이상을 쏟아부을 계획입니다. 미국 컨설팅 회사 앨릭스파트너스에 따르면, 2025년까지의 5년간 자동차대기업들의 전기차 투자액만 3300억 달러(391조원)입니다. 게다가 한국·중국 배터리 전문기업들의 예정 투자비 합계만 해도 100조원 단위로 올라가죠. 다시 말해 도요타가 2030년까지 전기차에 4조엔을 투자한다는 게 커 보이긴 하지만, 현재 업계에서 벌어지는 EV 시프트 투자규모에 비하면 그리 큰 것도 아니라는 겁니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스피드인데요. 경쟁사들이 이미 맹렬한 투자를 진행 중인데 비해, 도요타의 EV 투자는 2025년 무렵부터 본격화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시기적으로 많이 늦습니다. 일부에서는 도요타가 전고체 배터리 기술에서 앞서 있으니, 2025년 이후에 전고체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를 내놓아 시장을 압도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보기도 하는데요. 그럴 가능성이 제로(0)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확률이 높아 보이지는 않습니다. 전고체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해 볼 때, 감당 가능한 가격과 적정한 성능의 전고체배터리를 전기차에 대량 탑재하는 것이 2030년 이전에는 쉽지 않다는 의견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도요타가 2030년까지 자체생산하겠다는 280GWh의 배터리는 거의 100% 리튬이온 중심이며, 전고체배터리는 아직 예정돼 있지 않습니다.

일단 도요타가 내년에 내놓을 bZ4X라는 전기차가 시금석이 될 텐데요. 이 차량이 업계 최고수준의 전비(전기차 배터리의 전력사용 효율)와 가격경쟁력을 보여줄 수 있을지 지켜볼 일입니다. 도요타처럼 기본기가 튼튼한 회사에서 얼마나 뛰어난 제품을 내놓을지 궁금한데요. 매력적인 전기차를 합리적인 가격에 대량으로 판다는 것은 역시 전기차를 대량으로 먼저 판매해 시장에서 부딪쳐보지 않고는 달성하기 어렵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천하의 도요타라도 내년부터 전기차를 내놓고 테슬라를 압도한다는 식의 결과를 기대하긴 이르다는 겁니다. 도요타가 대담한 EV시프트 전략을 발표했고, 내년에 다른 전기차 선도업체와 맞붙을 신형 전기차를 내놓기로 했으니, 내년 초 등장할 bZ4X의 실력을 한번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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