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코드(decode): 부호화된 데이터를 알기 쉽도록 풀어내는 것. 흩어져 있는 뉴스를 모아 세상 흐름의 안쪽을 연결해 봅니다.

글로벌시장에서 활약하는 전자·게임회사와 자동차회사가 전기차사업에 힘을 합치는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3월4일 소니와 혼다가 전기차 사업을 위해 공동출자 회사를 만든다고 밝힌 것 말입니다.(작년에 중국에서 인터넷검색회사 바이두(百度)와 토종 자동차회사 지리(吉利)가 합작해 전기차회사를 만들긴 했지만, 바이두·지리가 중국 바깥에선 아직 존재감이 크지 않죠.)

◇소니와 혼다, 3월4일 전기차 사업을 위한 공동출자 회사 설립을 발표

테슬라가 자동차업계에 변혁을 가져온 이후 자동차·IT 업계에 합종연횡이 활발해지고 있지만, 아직까진 IT업체, 혹은 IT업체와 자동차부품업체, 자동차업체끼리의 연결이었습니다. IT와 완성차업계의 제휴가 많아질 것이라 예상은 했지만 일본 기업이 먼저 신호탄을 쏘아 올릴 것이라고는 예상치 못했습니다.

소니·혼다 전기차 조합에는 잠재력이 많습니다. 두 회사가 어떤 고민과 이유로 힘을 합치게 됐는지 살펴보면, 모빌리티 비즈니스의 상황과 나아갈 방향을 알 수 있을지 모릅니다.

국내에서도 많은 IT·플랫폼·서비스 기업, 완성차나 관련 기업이 모빌리티 사업에 뛰어들고 있죠. 하지만 사업 지속과 비즈니스모델 확립에 많은 기업이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소니·혼다의 CEO가 이번 합작사 설립 기자회견에서 밝힌 내용, 일본 기자들과의 질의응답, 일본 매체의 분석 등을 종합해 보면, 그런 어려움을 해결하고 방향을 잡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소니와 혼다는 올해 안에 모빌리티서비스와 전기차 개발을 위한 신규 회사를 공동 설립한다고 지난 3월 4일 발표했다. 발표가 끝난 뒤 소니의 요시다 겐이치로(吉田憲一郎·왼쪽) 사장과 혼다의 미베 도시히로(三部敏廣) 사장이 손을 잡고 있다. /닛케이아시아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 플랫폼 기업으로 변신한 소니, 자동차 제조기술의 강자인 혼다와 함께 모빌리티 시장 도전

본론에 앞서 소니·혼다의 전기차 합작 발표에 대해 간단히 정리하고 넘어가겠습니다.

<소니·혼다의 3월4일 공동 기자회견 요약>

1) 공동개발·공동출자 계약 등을 체결하기 위한 협의를 실시해 2022년 중에 신(新)회사를 설립한다.(양사의 출자비율이나 회사명, 개발의 구체적 내용 등은 미정)

2) 혼다는 모빌리티의 개발과 차체 제조, 애프터서비스 운영, 소니는 이미지센싱·통신·네트워크·엔터테인먼트 기술의 개발·운영을 맡는다.

3) 2025년에 공동출자회사에서 만든 첫 전기차를 판매한다.

4) 신회사는 전기차 기획·설계·개발·판매를 담당하며 제조설비는 보유하지 않는다. 초기 모델은 혼다가 제조한다. 모빌리티를 위한 서비스 플랫폼은 소니가 개발해 공동출자 회사에 공급한다.

5) 신회사는 혼다 본사의 전기차 전략과 별도이다. 다만 신회사에서 개발한 기술·서비스를 혼다 본사가 도입할 가능성은 있다.

6) 신회사는 소니·혼다 2개사의 공동출자로 시작하지만, 앞으로 타사의 참가를 받아들여 규모를 확대해 나갈 수도 있다.

7) 신회사의 상장 가능성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럼 소니와 혼다가 왜 지금 전기차 회사를 만들기로 했는지에 대한 궁금증을 3가지로 분석해 보겠습니다. 한국에 주는 시사점도 정리해 보겠습니다.

소니가 공개한 전기차 4일(현지 시각) 소니는 미국 라스베이거스 컨벤션센터에서 CES 2022 키노트 행사를 열고 전기 SUV 콘셉트카 비전2를 공개하고 전기차 자회사를 설립한다고 밝혔다. /소니

◇1. 혼다는 왜 소니의 하청업체가 될 위험을 무릅쓰고 소니에 먼저 제휴를 요청했을까? : 혼다는 ‘2040년 탈(脫)엔진’을 선언하는 등 EV시프트에 적극 나섰지만 소프트웨어·서비스 역량 부족을 절감. 충격요법이 필요했기 때문에, 그 분야에 뛰어난 소니에 먼저 손 내밀어

여기서 중요한 것은 소니가 아니라 혼다가 먼저 소니에 손을 내밀었다는 겁니다. 소니도 차량 개발능력이 뛰어난 회사의 도움을 원하긴 했지만, 다급했던 쪽은 혼다였다는 겁니다. 혼다가 어떤 회사인가요. 최근에 실적이 좀 부진하긴 했지만, ‘기술의 혼다’라는 말이 있을 만큼 프라이드가 강한 회사입니다.

그런데 합작사 설립의 과정을 보면, 작년 8월 혼다가 소니에 ‘양사가 함께 모빌리티의 장래를 모색해 보자”며 먼저 제안했습니다. 이후 양사의 젊은 사원끼리 교류가 시작됐는데요. 결과를 보고받던 혼다의 미베 도시히로(三部敏廣) 사장이 협업 가능성에 고무됐다고 합니다. 교류가 시작된 지 몇 달만인 작년 말, 미베 사장이 먼저 소니의 요시다 겐이치로(吉田憲一郎) 사장에게 양사 CEO 미팅을 제안했고, 이후로 다시 몇 달만인 지난 3월4일 기자회견을 열고 제휴 발표를 한 것이죠.

일본에서 보기 어려운 초(超)스피드 진행이었습니다. 기자회견 내용을 봐도 ‘일단 저지르고 세부사항은 서로 맞춰나간다’는 식입니다. 얼마나 급했는지, 회사 이름조차 미정입니다.

소니는 그렇다 쳐도 말입니다. 2010년 회사가 망할 뻔 했다가 극적으로 부활했고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변신에 성공해 기업문화가 많이 유연해졌으니까요. 혼다처럼 큰 부침 없이 하드웨어 중심으로 성공해온 대기업이 이런 기민한 모습을 보였다는 게 충격이었습니다.

☞소니가 부활한다... 삼성전자의 미래는 (2021.11.11)

https://www.chosun.com/economy/int_economy/2021/11/11/DHWFPY6Q4JEVDDKOVCPY5UH6GU/

3월4일 기자회견 내용만 보면, 혼다가 소니의 하청업체가 되는 게 아닐까라는 의심이 들기도 했죠. 혼다 엔지니어 중에는 이번 합작사 설립을 반대하는 쪽도 있었다고 합니다. 이날 기자회견을 봐도 소니가 주도하는 듯 보였습니다. 사회도 소니 홍보부 여직원이 전담했고, 소니의 요시다 사장이 먼저, 그리고 좀 더 비중 있게 등장했고요, 혼다의 미베 사장이 나중에 상대적으로 짧게 발표했습니다. 로고의 노출 순서도 소니가 먼저, 혼다가 나중이었죠.

세계최고의 대중차회사 중 하나인 혼다는 왜 소니에 굽히고 들어가는 듯한 모습을 보였을까요?

만약 전기차라는 차량 자체만 만드는 것이라면 혼다 혼자 못할 게 없습니다. 도요타와 함께 20여 년 전부터 하이브리드카를 양산·보급해 왔기 때문에, 전동화의 핵심 기술은 대부분 갖고 있으니까요. 이를 활용해 전기차 라인업을 확대해 나가는 것은 기술적으로 어렵지 않습니다.

하지만 전기차는 하드웨어보다 소프트웨어가 더 중요해집니다. 테슬라가 무선업데이트로 차량의 소프트웨어를 갱신, 각종 기능이나 주행성능을 향상시키는 기술을 채용해 자동차 비즈니스를 바꾸고 있죠. 차를 판매하는 것에서 비즈니스가 끝나는 게 아니라, 소프트웨어 서비스 향상에 돈을 내게 만들거나 유료 구독서비스를 통해 이익을 올리는 구조를 만들어 냈습니다.

☞소프트웨어가 지배하는 자동차의 7가지 미래 (2021.04.15)

https://www.chosun.com/economy/int_economy/2021/04/15/4I5YZDVB2BHHPK2MSGYF5YCFZ4/

게다가 혼다는 2040년부터 탈(脫)엔진한다고 이미 선언했거든요. 세상에서 4기통 엔진을 가장 잘 만드는 회사 중 하나인 혼다는 내연기관차 시대 우등생이었죠. 하지만 자신들이 만드는 차량이 전부 전기차(순수 전기차 이외에 일부는 수소연료전지를 탑재한 전기차일 가능성도 있음)로 바뀌었을 때, 혼다라는 브랜드가 어떤 강점을 가질 수 있을지에 대한 해답을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혼다가 어떻게 자동차 비즈니스의 변화에 빠르게 적응할 것인가가 과제일 텐데요. 혼다 조직은 큰 혼란을 겪고 있습니다. 내연기관 부문을 중심으로 대규모 정리해고가 진행되고 있죠. 올해만 2000명 이상의 직원이 퇴직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일단 55세 이상이 대상이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건 남은 직원, 특히 젊은 직원들이 혼다의 장래와 비전에 대해 동기부여를 받지 못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젊고 유능한 인재마저 타 업종으로 이탈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겁니다.

대표적인 것이 ‘2040년 신차판매를 모두 전기차(연료전지차 포함)로 한다’라는 목표를 실행하기 위해 다음 달 발족하는 신조직 ‘사업개발본부’의 혼란입니다. 혼다의 사업개발본부는 단품을 만들어 파는 비즈니스에서 제품 업데이트에 의한 성능 향상이나 모빌리티 서비스 제공으로 돈을 버는 비즈니스로 전환하고, 전기차를 주축으로 새로운 부가가치를 만들어내기 위한 사업 방안을 짜는 조직인데요. 혼다의 미래를 짊어질 사업개발본부가 출범 전부터 사내 평판이 안 좋다는 겁니다.

책임자로 발탁된 아오야마 신지(青山真二)상무(다음달부터 전무 승격)는 뛰어나다는 평입니다. 내부에서 ‘임원급 중에선 가장 머리가 좋다’ ‘이륜차사업, 북미사업, 전동화사업의 각 영역에서 실적을 올린 인물’이라는 평가죠. 그런데 문제는 이 사업개발본부에, 전부터 돈을 벌지 못했던, 특출한 아이디어나 기획·추진력을 보여주지 못했던 4륜차 개발진이 모여 ‘오합지졸’을 이룰 게 분명하다는 겁니다.

여기서 잠깐 짚고 넘어갈 것이 있는데요. 혼다에는 4륜차(일반적인 자동차) 외에 2륜차(오토바이·스쿠터) 사업이 있습니다. 혼다의 2륜차는 판매대수·수익력 면에서 세계 1위입니다. 반면 4륜차사업은 최근 판매도 정체돼 있고 특히 수익성이 좋지 않습니다. 매력적인 차를 만들어 부가가치를 올리는 대신, 일본시장을 중심으로 경차·소형차만 많이 팔고 있기 때문이죠. 혼다 하면 떠오르는 ‘대중차 중에서는 프리미엄’이라는 이미지도 퇴색되고 있습니다. 4륜차 사업이 까먹는 돈을 2륜차 사업이 벌충하고 있다는 얘기도 많이 하죠.

즉 혼다 내부, 특히 젊은 직원들 사이에 도는 불만은 ‘혼다가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는데, 그것을 기존의 오합지졸로 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 제기입니다. 게다가 혼다가 신사업 조직을 여기 넣었다 저기 넣었다 하는 식으로 작은 변화만 줬을 뿐, 본질을 건드리지 않았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다시 말해 이번 소니와의 제휴는 혼다의 조직을 뒤덮은 이런 열패감을 부수기 위한 일종의 쇼크 요법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혼다의 인간형 보행 로봇 '아시모'. /phys.org

◇2. 소니에 가장 큰 효과는 무엇일까? : 혼다는 세상에서 양산차를 가장 잘 만드는 회사 중 한 곳. 모빌리티 서비스를 위한 디바이스(전기차)를 빨리 제대로 만들고 싶다면 혼다 같은 일류 회사의 도움이 필수

사실 소니로서는 모빌리티로 돈을 벌 수 있는 서비스 플랫폼을 만들고 싶을 뿐입니다. 꼭 자동차를 만들고 싶다는 건 아닐 겁니다. 하지만 자신들의 서비스 플랫폼을 얹을 디바이스, 즉 전기차(좀 더 구체적으로는 소프트웨어를 운용할 수 있는 차량인 SDV·Software Defined Vehicle)가 있어야겠죠. 그 서비스 플랫폼을 소니·혼다의 조인트벤처가 써줘야 할 겁니다. 그리고 혼다 본사, 나아가 다른 자동차회사에까지 탑재할 수 있도록 해 플랫폼의 네트워크 효과를 노리겠죠.

☞소니의 자율주행 전기차가 유망한 5가지 이유 (2021.01.07)

https://www.chosun.com/economy/int_economy/2021/01/07/ENYQZIYVY5H7HM2TQSHKDK7UG4/

그런데 문제는 소니 혼자 힘으로 완성도 높은 자동차를 만들어내는 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겁니다. 물론 자동차의 주류가 차츰 전기차로 바뀔 것이고, 전기차는 내연기관차보다 진입장벽이 낮은 것도 사실입니다. 그렇다 해도 사람의 생명과 직결되는 자동차의 제조는 ‘구력’을 절대 무시할 수 없죠. 좀더 시간이 지나면 애플이 대만의 홍하이(폭스콘의 모기업)에 위탁생산하듯, 전기차 제조도 전문 수탁생산업체를 활용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아직은 제대로 된 완성차회사와 협업하는 게 가장 확실하고 빠른 길입니다.

실제로 소니는 2020년에 전기차 프로토타입을 선보였지만, 양산으로 연결하는 계획에서는 큰 벽에 부딪혔습니다. ‘비전-S(Vision-S)’라는 콘셉트카를 개발한 소니 개발팀도 “(전기차를 만들어낼 수는 있지만) 완성도가 높은 자동차를 만들어 내기는 절대 쉽지 않다는 것은 지난 2년간 개발과정을 통해 깨달았다”고 말하고 있죠.

이 와중에 혼다가 먼저 적극적으로 제안을 해왔고, 실무진 사이에 몇 달의 협의 후에 혼다의 CEO가 직접 제휴를 타진해 온 것이죠.

소니도 여유 부릴 상황은 아니었을 겁니다. 자동차는 가전제품보다 개발 사이클이 더 깁니다. 테슬라는 말할 것도 없고, 폴크스바겐·벤츠·GM·도요타 등이 2025년쯤이면 거의 완성된 SDV(Software Defined Vehicle)를 내놓고 모빌리티 서비스를 본격화할 것으로 보이는데요. 소니가 당장 차량의 하드·소프트를 개발한다 해도, 2025년까지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죠. 혼다가 함께 해준다면, 차량 개발에 걸리는 시간과 시행착오를 크게 덜 수 있습니다.

소니의 요시다 사장은 올해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 ‘CES 2022′에서 자체 개발한 전기 콘셉트카(VISION-S)의 시장 투입을 본격 검토한다고 선언했는데요. 요시다 사장이 이렇게 말한 시점에서 이미 혼다와의 제휴가 급진전하고 있었던 겁니다. 소니로선 전기차 제조·유지보수 등을 혼다에 의지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일 테고요. VISION-S의 양산형 제조를 단순히 혼다에 위탁하는 게 아니라, 명성이 높은 자동차기업 혼다와 제휴해 신제품·서비스를 내놓는다는 스토리가 강력한 마케팅 요소로 작용할 수도 있겠죠.

혼다 창업자인 혼다 소이치로(本田宗一郎·왼쪽)와 소니 공동창업자인 이부카 마사루(井深大). 둘은 생전에 친한 친구이자 서로의 응원자였다. /소니 동영상 캡처

◇3. 소니와 혼다의 자율주행 전기차 협업은 어떤 시너지를 낼까? : 전기차는 기본적으로 AI로보틱스. 소니의 ‘아이보’, 혼다의 ‘아시모’도 결국 AI로봇. 모빌리티 사업 확장에 소니의 게임 플랫폼, 혼다의 항공기술이 큰 효과 발휘할 수도

소니와 혼다의 협업은 스토리가 쉽게 그려지기 때문에, 업계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이들의 협업에서 뭔가를 기대하게 합니다. 복잡하게 설명하지 않아도 의미나 방향이 전달된다는 게 큰 강점이죠.

그리고 일본인들에게는 소니와 혼다의 창업자와 기업 성향이 비슷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소니와 혼다는 전후(戰後) 일본을 이끈 2대 신흥 기업입니다. 혼다 창업자인 혼다 소이치로(本田宗一郎)와 소니 공동창업자인 이부카 마사루(井深大)는 둘 다 뼛속까지 엔지니어였고 도전을 즐겼습니다. 생전에 매우 친했고 서로를 존경하고 응원했죠. 소니의 ‘아이보’, 혼다의 ‘아시모’ 등 일찍부터 인간·동물형 로봇을 개발해 선보인 것도 공통점입니다. 비슷한 점이 많은데도 본격적인 협업을 한 적은 없었는데요. 모빌리티 업계의 격변에 맞서면서, 사업영역이 달랐던 두 회사가 마침내 손을 잡았다는 스토리 텔링이 가능합니다.

그리고 자율주행 전기차 개발자들 말에 따르면, 자율주행차나 소프트웨어 플랫폼의 개발은 전통적인 의미의 차량 개발과 크게 다르고, 실은 AI로보틱스나 컴퓨터게임과 닮았다고 말합니다.

소니의 첫 전기·자율주행 콘셉트카 ‘비전-S’는 소니의 어느 조직에서 누가 만들었을까요? 만든 곳은 소니의 AI로보틱스 사업부입니다. 개발을 주도한 가와니시 이즈미 AI로보틱스 담당 상무는 과거에 소니의 강아지형 로봇 ‘아이보’ 개발팀을 이끌었습니다. 이후에 소니컴퓨터엔터테인먼트(현 소니인터랙티브엔터테인먼트)에서 게임 사업을 담당했죠. 소니는 무려 23년 전인 1999년에 아이보를 시판했었는데요. 아이보(aibo)는 일본어 아이보(相棒) 즉 친구·짝꿍을 뜻하기도 하지만, 공식적으로는 인공지능 로봇(’A’rtificial ‘I’ntelligence Ro’bo’t)의 약칭입니다.

혼다도 인간형 로봇 개발로 유명합니다. 혼다는 36년 전인 1986년에 2족 보행 로봇 개발에 착수했고요. 2000년에 결과물인 ‘아시모’를 발표합니다. 최근에는 아시모의 추가 개발을 중지하고, 6족 로봇 등 좀 더 실용화에 근접한 로봇 개발에 집중하고 있죠.

컴퓨터 게임과의 연관성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소니가 모빌리티 사업에서 자사의 강점으로 어필하는 것이 센싱 기술이나 통신·네트워크 기술, 엔터테인먼트 기술 등인데요.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요소기술일 뿐이고, 소니가 목표로 하는 것은 모빌리티를 위한 서비스 플랫폼 제공입니다. 그런데 소니가 모빌리티 플랫폼을 얘기할 때 (소니의 게임기이자 게임 플랫폼인) ‘플레이스테이션’ 얘기를 자주 합니다.

소니 전기차 개발 담당인 가와니시 상무는 “자동차와 게임은 언뜻 보면 완전히 달라 보이지만, 플레이스테이션 사업의 노하우를 살릴 수 있는 부분이 많다”고 말합니다. 일단 게임 플랫폼 비즈니스의 경험을 모빌리티 서비스 플랫폼에도 활용할 수 있죠. 올해 1월 CES에서 가와니시 상무는 “우리는 어카운트 관리를 포함한 사용자 접점 구축에 강하다. 자동차의 제조·판매부터 애프터서비스까지를 클라우드로 관리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또 전기차는 차량 내부의 엔터테인먼트 요소 뿐 아니라 주행특성까지 개인 맞춤형으로 바뀌게 될텐데요. 이런 것은 혼다보다 소니가 훨씬 잘할 수 있는 부분이죠.

게임 사업은 플랫폼 사업 구축뿐 아니라, 자동차 개발에 직접 활용할 수도 있습니다. 일례가 자율주행 AI 개발입니다. 올해 2월10일 소니 AI(소니에서 전기차 개발 담당), 소니인터랙티브엔터테인먼트(게임사업부), 폴리포니디지털(플레이스테션의 인기 드라이빙시뮬레이션 게임인 ‘그란투리스모’ 시리즈 제작사)이 개발한 드라이빙 AI ‘GT 소피(Gran Turismo Sophy)’를 발표했습니다. 이날 발행된 네이처지(誌)에 이 게임용 자율주행 AI에 관한 논문이 실리고 표지를 장식하기도 했었죠.

GT소피는 게임 내 AI 에이전트(대전 상대)가 인간 플레이어의 게임 체험을 어떻게 강화할 수 있을지를 연구할 목적으로 개발됐지만, 이 성과가 게임에 머무르지 않고 자율주행차 레이스나 자율주행 기술의 개발, 고속으로 동작하는 로봇 개발 등에도 활용될 수 있다고 합니다.

전기차를 넘어 ‘하늘을 나는 차’까지 생각한다면, 혼다의 기술이 더 큰 힘이 될 겁니다. 소니의 모빌리티 전략은 전기차라는 제품 하나에 특정되지 않습니다. ‘하늘을 나는 자동차’라고 불리는 전동 수직이착륙기(eVTOL)도 염두에 두고 있죠. 소니는 이미 드론을 제품화하고 있는데요. eVTOL과 드론은 크기가 다르지만, 비행제어나 센싱 기술, 통신기술 등에서 응용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고 합니다.

다만 전기차와 마찬가지로, 소니는 기체 개발을 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제품화 벽이 높죠. 이를 혼다와 함께 개발하면 단번에 실현 가능성이 커질 겁니다. 혼다는 이미 ‘혼다 제트’라는 소형 비즈니스제트기를 개발해 판매하고 있죠. 개발을 시작한 지 20년이 넘었고, 작년 말까지 200대를 판매했습니다. 혼다 역시 2030년 상용화를 목표로 eVTOL을 개발 중입니다. 소니의 요시다 CEO는 3월4일 공동기자회견에서 혼다와 손잡은 이유의 하나로 “혼다가 ‘달린다’ 뿐 아니라 ‘난다’는 부분에서도 높은 기술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 말했습니다. 즉 eVTOL 분야에서도 소니가 센싱·통신 기술을, 혼다가 모터를 시작으로 하는 전동 추진계나 기체제조 기술을 맡을 수도 있겠죠. 그렇다면 이번에 소니·혼다가 만들기로 한 신회사가 전기차뿐 아니라 추후에 무인항공기까지 만들게 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소니의 강아지형 AI로봇 ‘아이보’. 첫 모델은 1999년 등장했다. /소니 유튜브 캡처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은? : 한국에도 소프트웨어 회사가 주도하는 전기차 합작사 탄생한다면, 모빌리티 서비스 발전 더 빨라질 수도

소니·혼다의 전기차 연합이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이미 테슬라가 전기차의 소프트·하드웨어를 통합해 완성해나가고 있고, 전기차 양산을 통해 규모의 경제와 수익성도 계속 키워나가고 있죠. 기존 자동차업체들도 소프트웨어 내재화에 집중하며 자체적인 모빌리티 서비스로 승부를 걸고 있고요.

☞돈 버는 능력도 1등 됐다, 테슬라의 3가지 비밀 (2022.03.03)

https://www.chosun.com/economy/int_economy/2022/03/03/RLW5ADH3ZRFJXFJYDIUN4M3NTI/

다만 소니·혼다 전기차 연합에서 인상적인 것은 양사 CEO의 과감한 결단과 사업의 스피드입니다. 작년 8월 혼다가 소니에 먼저 토의를 제안한 뒤, 양사 CEO 미팅을 거쳐 공동출자의 신회사 설립 발표까지 반년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소니와 혼다가 별도의 회사를 세운 이유도 생각해 봐야겠죠. 기존 조직에 갇히지 말고 양사 최고의 인재를 투입해 빠르게 추진해보겠다는 의지가 분명합니다. 합작의 신회사는 2025년에 첫 전기차 판매를 예정하고 있습니다. 겨우 3년 남았습니다. 자동차 개발에선 절대 긴 시간이 아니죠. 양쪽 모두 서둘러야 합니다.

테슬라는 소프트·하드 통합 구조에서만 강한 게 아닙니다. 온라인으로만 팔기 때문에 딜러망에 지불하는 수수료가 없습니다. 기존 자동차회사는 기존 딜러망을 챙겨야 하기 때문에 온라인 판매로 전면이행이 쉽지 않죠. 아예 새로운 회사를 만들어 온라인 판매로 곧바로 이행하는 게 훨씬 빠를 겁니다. 부품공급망도 마찬가지죠. 제로베이스에서 시작해 전기차에 맞게 공급망을 새로 짜는 게 더 효율적일 겁니다.

모든 것은 사람이 하는 것인데요. 젊은 인재들이 재미와 성취감을 느끼는 환경을 만드는 게 중요합니다. 소니·혼다의 신회사가 그런 환경이 되어준다면 성공 가능성이 한층 커지겠죠.

지난 3월4일 기자회견에서 소니와 혼다의 CEO는 이번 신회사의 사업이 소니와 혼다 2사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고, 타사로도 확대해나가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우선은 기업 문화가 가까운 소니와 혼다가 새로운 모빌리티 서비스의 청사진을 만들고, 이를 토대로 더 많은 파트너를 끌어들이겠다는 것입니다.

이미 혼다는 구글과 협력해 올해 말부터 신차에 탑재하는 커넥티드 서비스를 쇄신할 예정인데요. 스마트폰을 차량에 연결하는 ‘안드로이드 오토’ 수준이 아니라, 차량 내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에 깊숙이 연결돼 다양한 OTA를 제공할 예정입니다. 또 혼다는 자율주행차를 이용한 모빌리티서비스의 경우 GM의 자율주행 자회사인 GM크루즈와 협력하고 있죠. SDV 개발도 GM·GM크루즈·혼다 3사가 함께 합니다. 이미 레벨4의 자율주행차까지 GM 등과 개발이 진행 중입니다.

당장은 소니·혼다 합작의 신회사와 혼다·GM 협업이 따로 가게 되겠지만, 향후에 양쪽의 사업이 협업하게 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소니는 자사의 게임 플랫폼을 (자사 보유의 영화·음악을 포함한) 종합 콘텐츠 플랫폼으로 확대하고, 이를 모빌리티 플랫폼에 연결할 야심을 갖고 있을 텐데요. 이것은 GM이 갖고 있지 않고, 구글도 상대적으로 약한 부분이라 시너지를 기대할 수도 있습니다.

소니·혼다의 협업은, 한국으로 치면 네이버 혹은 카카오와 삼성전자의 성격을 동시에 가진 기업과 현대자동차가 공동으로 모빌리티회사를 만든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카카오 등 국내 플랫폼 기업도 자회사 등을 통해 모빌리티 사업에 진출하고 있지만, 사업화를 하거나 방향성을 찾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현대자동차도 모빌리티서비스 관련 내부 조직을 확충하고 있지만, 조직원의 동기부여와 방향설정, 수익화 가능성을 찾기 쉽지 않다고 합니다. 혼다의 사례와 마찬가지로 인력과 기업문화를 혁신하지 못하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외부로부터의 더 큰 자극과 충격이 필요할지도 모르죠.

☞현대차에 진짜 중요한 건 ‘OS 혁명’ (2020.11.12)

https://www.chosun.com/economy/int_economy/2020/11/12/QWCJBCINUJFMBIWGU5PQ4Q4OO4/

소니·혼다가 오랫동안 개발해온 분야 AI로보틱스의 가능성을 생각할 때, 현대차가 세계적 로봇기업 보스턴다이내믹스를 인수한 것도 사업 방향성에서는 맞는다고 볼 수 있을 겁니다. 다만 현대차가 보스턴다이내믹스의 기술을 얼마나 제대로 활용하고 사업화로 연결할 수 있는지에 달렸겠죠.

소니·혼다가 전기차 합작사를 새로 만들었다 해서 한국도 비슷한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한국이 전기차 하드웨어에 필요한 기술은 상대적으로 풍부한 편이지만, 전기차의 소프트웨어에 필요한 기술, 그리고 소프트웨어 기술로 전기차 시장을 주도할 수 있는 기업은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전기차·모빌리티서비스에 뒤처졌다는 일본도 소니·혼다가 힘을 합치고 있는데요. 한국에서도 소프트웨어 중심 전기차 회사, 소프트웨어 기업이 주도하는 전기차 합작사가 나와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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