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엔터테인먼트 기업 월트디즈니(이하 디즈니)가 영화 ‘마블’ 시리즈를 제작사인 ‘마블 엔터테인먼트’(이하 마블) 회장 아이작 펄머터(80)를 해고했다. 펄머터 회장은 지난 2009년 디즈니에 마블을 매각한 이후에도 회장직을 유지했으나, 로버트 아이거 디즈니 최고경영자(CEO)와 불협화음을 보여주며 충돌했다. 디즈니는 펄머터 회장은 물론 그의 측근인 롭 스테펜스 마블 공동 회장, 존 트리트진 마블 수석 고문도 해고했다. 마블은 앞으로 디즈니 내 콘텐츠 제작 사업부인 ‘디즈니 엔터테인먼트’로 통합된다.

29일(현지 시각) 뉴욕타임스(NYT)는 소식통을 인용해 “디즈니가 비용 절감 차원의 일부로 펄머터 마블 회장을 해고했다”며 “디즈니 이사회를 뒤흔들려던 펄머터 회장의 노력이 실패로 끝난 것이 원인 중 하나”라고 전했다.

세계 최대 엔터테인먼트 기업 월트디즈니 본사. / 로이터=연합뉴스

펄머터 회장은 디즈니 내부에서 위험한 존재로 여겨져 왔다. 그는 지난해 행동주의 투자자인 그의 친구 넬슨 펠츠를 디즈니 이사회에 합류시키려고 애썼다. 펄머터 회장은 지난해 8월부터 11월까지 총 6차례 걸쳐 디즈니 이사회 구성원, 디즈니 고위 임원들에게 연락해 펠츠를 이사회에 합류시키도록 촉구했다. 하지만 그의 구상은 거부당했다. 이후 디즈니 내부에선 펄머터 회장이 얼마 지나지 않아 디즈니에서 해고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고 이는 현실이 됐다.

디즈니는 2009년, 마블을 40억 달러에 인수했다. 펄머터 회장이 1990년대 후반, 슈퍼히어로 영화 ‘마블’ 시리즈로 대성공을 거뒀고 ‘엑스맨’, ‘스파이더맨’ 등의 라이센스를 확보하며 사업을 확장한 영향이었다. 펄머터 회장은 디즈니에 마블을 매각한 이후에도 마블 경영에 참여했으나, 그의 역할은 점차 축소됐다. 2015년 ‘닥터 스트레인지’ 관련 비용 문제로 디즈니 경영진과 충돌한 뒤, 그는 더 이상 마블 영화에 관여하지 않았다. 결국 펄머터 회장은 업무는 만화 출판, 마블 게임 라이선스 등으로 제한됐고 연간 4000만~6000만 달러의 매출을 올렸다. 디즈니의 2022년 연간 매출이 약 830억 달러다.

아이거 CEO와 정치적 견해가 달랐던 것도 펄머터 회장 해고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펄머터 회장은 지난 2016년과 2020년 대선 당시 도널드 트럼프를 지원했다. 최근에는 2024년 대선에도 트럼프를 지원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반면 아이거 CEO는 민주 당원이다.

한편, 펄머터 회장은 이스라엘 방위군에서 특공대원으로 복무한 뒤 소매업과 제조업을 하며 재산을 쌓았다. 그는 검소하지만 화를 잘 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펄머터 회장이 마블 사무실 쓰레기통 속에서 종이에 꽂혀있는 종이 클립을 뽑고, 영화 시사회를 열 때 음식 비용을 아끼려고 감자칩을 제공한 것은 마블 내부에서 아직도 회자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플로리다 주 팜 비치와 뉴욕 시 지역에 주택을 소유하고 있는 펄머터 회장은 몇 년 동안 자신의 낡은 링컨 타운카 교체를 거부하고 일주일에 한 번 핫도그와 요거트로 구성된 간소한 점심 식사를 고집했다”고 전했다.